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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구들목에 앉아 맛보는 따끈한 녹두 빈대떡

[포토에세이] 강원도 물골 김씨 할머니

등록|2015.03.05 10:24 수정|2015.03.05 13:59

강원도 갑천면 하대리 물골몇 년전까지만 해도 외딴집이었는데 몇몇 가구가 새로 집을 짓고 물골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물골 할머니는 덜 외롭단다. ⓒ 김민수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지난 4일, 하늘은 맑고 햇살은 좋았지만, 지난 밤 내린 싸락눈이 아직도 음지에 남아있었다. 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는 한겨울 추위에 길을 나선듯 하였다. 바람을 피해 숨을 수 있는 햇살 바른 곳이라면 스르르 낮잠이라도 깜박들 것 같이 하늘 맑고 햇살 좋은 날이었다.

따뜻한 아랫목, 뜨끈한 정

강원도 갑천 물골. 개인적으로 30년 이상 인연을 갖고 드나든 곳이다. 앞으로도 계속 드나들 수밖에 없는 곳. 몇 년 전 바깥 분이 돌아가시 후, 지금은 홀로 사시는 김영자 할머니(82)의 집 맞은 편 산에 지난 겨울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셨기 때문이다.

15살 새색시가 꽃가마를 탔을 때, 그를 맞이한 새신랑은 17살이었다. 그렇게 만나 함께 산 세월이 67년, 최씨 할아버지는 84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최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 전에 만났을 때에만 해도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면 이곳을 떠날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물골을 지키며 살아가고 계신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아 이전 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고, 평생 살아온 그 곳이 가장 편안하시단다.

그렇게 산골엔 봄이 느릿느릿 오고 있었다. 처마에 달린 고드름이 녹을 즈음이면 완연한 봄이 올까? 아직 얼어있는 땅에는 냉이며 망초대가 방사형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양지 바른 곳은 질퍽거리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봄 나물을 캘 수도 있겠다.

물골 할머니의 집어제 내린 눈이 녹으면서 처마에 고드름을 만들었다. 반짝 꽃샘추위가 제법 기승을 부린다. ⓒ 김민수


어머니 49제를 맞이해 찾은 물골. 할머니는 오랜만에 손님이 온다며 큰며느리를 불러 음식을 조금 장만하라고 하셨단다. 가마솥에서 뭔가 끓고 있었다.

큰며느리가 떡국을 끓일 사골국물을 푸고 있다. 어젯밤부터 장작불에 푹 고아서 국물맛이 좋을 거란다. 국물을 떠서 떡과 만두만 넣어 다시 한 번 끓이면 천상의 떡국이 될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떡국은 너무 맛났다.

물골 할머니의 부엌오랜만에 시내에 사는 며느리가 와서 식사를 차리고 있다. ⓒ 김민수


지난 밤부터 장작불을 지폈으니 아랫목은 얼마나 따스할까? 이미 등을 지지고 있는 손님이 한 분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고, 큰며느리는 녹두전을 지지고 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터라 고픈 배는 녹두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녹두전은 뜨거울 때 먹으면 더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
"그럼..."


녹두전푸짐한 녹두전, 가마솥에서는 사골국물에 떡국이 익어가고 있었다. ⓒ 김민수


순식간에 녹두전 네 장을 먹었다. 뜨거워 호호 불어가며 맨손으로 먹는 맛, 구들은 잘 데워져 엉덩이도 따스하고, 여기가 천국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싶다.

할머니는 물골 외딴집에서 할아버지와 70년 가까이 사셨다. 그래서 사람이 제일 반갑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물골에서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물골에 집 짓고 들어와 사는 외지인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 모두 가장 먼저 물골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할머니와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서로서로 챙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덜 외로워요. 사람들이 있으니까. 시내 나가면 되레 불편하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저냥 이웃이 있으니까 혼자라도 살만해요."

방 한 편에 놓인 꽃버선.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꽃무늬를 좋아하시던 어머니도 저런 꽃버선은 하나쯤 갖고 계셨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49제를 지내러 왔으면서도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잦다.

꽃버선꽃버선을 보는 순간 어머니의 꽃버선이 떠올랐다. ⓒ 김민수


삶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저렇게 살아도 한 평생이고, 그냥저냥 살아간들 의미 없지 않은 삶인데, 자기 욕심을 채우느라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해치는 일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골 김씨 할머니, 산골 마을로 시집와 평생 농사 짓고 자식들 낳아 출가보내고 남편과 70평생을 살았다. 지금은 자신이 먹을 만큼의 농사를 짓고, 할아버지 산소를 돌보고, 할아버지와 평생을 살던 집을 지키고 살아간다.

무명씨의 삶이며 범부필부의 삶이라 의미 없는 삶인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마음에 비수를 꼽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희생시키고, 행여라도 권력의 끄나플이라도 있으면 오로지 자신의 영화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의미있는 삶이 아닌가?

따스한 봄날,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그때는 할머니 곱게 옷 차려 입으시라 하고 예쁜 사진 많이 담아드려야겠다.

할머니의 방따듯한 아랫목에 손님이 몸을 지지고 있고 며느리는 뭔가를 만들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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