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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향한 이중적 태도, 폭력을 키운다

[주장] 익산 폭발물 사건과 주미대사 피습... 폭력에 대한 다른 잣대, 괜찮은가

등록|2015.03.06 11:37 수정|2015.03.06 13:36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5일 아침, 마크 리퍼트 대사가 조찬강연장에서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주는 충격은 여전히 크다.

사안의 중대성이 컸던 만큼 안타까웠던 것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몇 시간이 넘도록 별다른 공식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후에 가까워서야 속보로 나온 정부의 성명도, 미국 국무부가 이번 사건을 두고 "돌출적인 개별 사건"이라 발표했던 것과 비교됐다.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란 표현은 새누리당이 먼저 발언한 것을 굳이 그대로 반복해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미국 정부는 개인에 대한 피습으로 받아들인 반면, 한국 정부는 피습을 한국과 미국의 연합을 깨트리려는 테러로 규정하는 분위기였다.

늦은 사고 대처능력, 이른 배후세력 언급

먼저 사고가 발생한 이유로는 보안상태의 허술함이 지적됐다. 흉기를 가지고 출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안전관리에 큰 구멍이 뚫린 셈이니까 말이다. 이미 리퍼트 대사가 차량을 타고 병원에 간 이후에는, 사고 수습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배후세력을 의심할 요소가 드러나기도 전에 먼저 여당대표와 정부가 이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개인의 일탈로 빚어진 일이라고 받아들인 것과 달리, 한국은 대대적인 수사가 필요한 상황으로 해석을 확대한 것이었다. 일각에선 뚜렷한 증거가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을 두고 공안정치를 작동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6일 가해자인 김기종씨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국보법 위반 사항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용의자의 과거 전력을 보았을 때, 그는 극단주의에 취한 불안정한 상태로 보인다. 2010년 일본대사를 향한 콘크리트 투척 미수사건이나, 블로그에 꾸준히 써온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개인을 건너뛰고 배후세력을 의심하고,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미 전체를 향한 전쟁으로 인식하는 모양새다.

사고 대처능력은 느렸던 반면, 배후세력 언급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전자를 만회하고자 후자를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관성에 따라 그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근거로 종북세력을 먼저 떠올려야만 했는지도 의문이다.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 이중잣대를 치워야

지난 12월에 벌어진 신은미씨 토크콘서트 인화물질 투척사건을 돌이켜보자. 대통령은 '종북콘서트'만 지적하면서 논란을 키웠고, 현장에서 붙잡힌 A군의 범행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루퍼트 대사 피습 사건에서 그랬듯이, 개인을 보지 못하고 이념을 사안의 중심으로 인지했다. 게다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판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당시의 A군과 미국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씨의 범행 동기는 '애국심으로 포장한 극단적 민족주의'였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행동은 모두 비판을 받아야 했고, 그리하여 물리적 폭력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비뚤어진 애국을 위한 나름의 방식이라도, 모든 행위가 정당하지는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보수진영은 전자에게 관대했고, 후자에게만 비난을 쏟고 있다.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야흐로 야만의 시대였던, 해방 이후의 정치폭력이 되살아나지 않게 하려면 더욱 그렇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을 중심으로 한 이중잣대를 치워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이 휘두르는 폭력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정치적 올바름과 애국심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무력사용은 안 된다고 선을 그어야 한다. 무슨 사안에서 벌어졌는지와 별개로, 폭력은 결코 묵인해서는 안 될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번 피습 사건은, 내용 자체보다 이후의 대응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한일 과거사 덮자'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으로 박근혜 정부의 외교력이 시험에 놓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허술한 보안망을 정비하여 안전사회를 만들고, 사고의 재발방지를 확실히 이룰 시스템을 다져야 한다.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것은 그 이후에도 늦지 않다. 다만 이 모든 것은, 공안몰이로 사태를 만회할 여지는 없다는 점을 정부와 보수진영이 깨달아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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