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초판 300부만 찍은 사진책 대단합니다

[서평]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등록|2015.03.11 17:14 수정|2015.03.11 17:14

▲ 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 안목

평생 동안 사진을 가르쳐온 작가의 <사진강의 노트>입니다. 필립 퍼키스는 프랫 인스티튜트 사진학과와 뉴욕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을 강의했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비롯한 여러 뮤지엄에 그의 사진이 소장된 저명한 사진가입니다.

누구나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작품이라고 할 만한 사진을 찍는 것은 여전히 전문 분야에 속합니다. 저자는 사진을 배우는 것은 운전이나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가 금방 드러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사진 초보자들과 사진을 막 가르치기 시작한 선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저자의 첫 번째 제안은 사진 보는 법입니다.

"전시장에 간다. 눈길을 끄는 사진앞에 선다. 그것을 5분 동안 바라본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어디 사진만 그럴까요? 그림을 비롯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모두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어떤 작품을 5분 이상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 기억이 없네요.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운동의 형태, 명암을 포함한 사물 그 자체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 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말고 그저 바라만 보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대상에 주목하라!

사진은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하는 것일 뿐이지만, 불과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며 그 존재를 느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사진을 찍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저자는 사진은 예술활동 중에서도 매우 까다로운 분야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사진이 가장 표현하기 힘든 매체 가운데 하나인 까닭은 시각 매체로서 사진이 독특하고 강렬한 묘사의 특성을 가진 동시에 바로 이 특성 때문에 사진의 내용은 객관적 사실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사진의 역설이다." - 본문 중에서

에컨대 사실과 추상의 조화를 깨달아야 사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예술은 추상과 사실 사이의 긴장감 속에 살아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한 번도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사진에서 추상을 경험한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선명하고 잘 나온 사진이 좋은 사진인 줄 아는 평범한 시각으로는 추상과 예술을 경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숙제를 던집니다. 바로 다음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라는 것입니다.

▲ 예술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 당신은 왜 예술 창작을 하는가?
▲ 왜 어떤 행위들(회화나 음악)은 예술로 여겨지고, 어떤 행위들(기계공학, 사회학)은 그렇지 않은가?
▲ '순수'예술과 '상업'이나 '응용' 예술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 살아있는 예술가들 가운데 친밀감을 느끼는 작가는 누구인가?
▲ 죽은 예술가들 가운데 친밀감을 느끼는 작가는 누구인가?
▲ 예술 작업을 할 때, '재능'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 예술과 정치, 경제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 예술과 종교(영)의 세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 예술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사진의 역할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직접 부딪치기 싫어하는 것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1839년에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 세상과 사람들이 변화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간접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되었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은 변화를 겪었다." - 본문 중에서

사진으로부터 비롯되어 영화, 비디오 등 확장된 세계를 보면 이런 주장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사진이라는 기술로 인해 사람들에게 간접경험의 기회가 확장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간접적인 방식이 삶의 여러 곳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사진으로 인해 직접경험 기회가 줄어들었다

한편 사진에 '의도'를 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의도를 담기 위해서는 철처하게 준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잠재된 것을 끌어내고 역동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쉽다는 것이지요.

"미리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일을 진행시키는 것보다 대략적인 계획 아래 구체적인 부분들을 자신의 본능, 직관, 감각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사진을 찍는 독자들에게 몇 가지 흥미로운 과제를 던집니다. 저는 이런 독특한 방식의 연습이 좋은 사진을 찍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늘 촬영하던 곳에 간다. 보통 때처럼 원하는 사진을 먼저 한 장 찍는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돌려 뒤에 무엇이 있건 신경쓰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이런 식으로 필름 한 통을 찍는다."

"한 가지 주제로 - 사람, 장소, 물건, 여러 가지 물건이 섞인 것- 필름 한 통을 찍는다."

또 '빛을 지켜보기' 연습에서는 빛에 따라 사물과 사람과 공간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어둑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한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시간이 흐르면 빛이 줄어들고 빛의 변화에 맞춰 그 곳에서 바라보는 세계가 모두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사진이 빛을 담는 예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사진, 축복일까 재앙일까?

한편 저자는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달라지는 사진세계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사진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일 수도 있고, 재앙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사진의 근간은 결코 바뀌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공간, 질감, 색, 전망, 시간, 예측의 순간, 표현, 다른 사람들과의 주체적 관계와 협동, 사진의 역사와 미학은 물론이려니와 사진이 창조되는 순간의 그 광대한 의미 세계를 우리는 배운다." - 본문 중에서

도구가 디지털이건 아날로그건 상관없이 3차원, 4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으로 생생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사진을 배우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겁니다. 대신에 디지털 사진에 대해선 기술에만 매몰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합니다. 특히 낚시꾼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낚시꾼이 죽었다. 깨어나자 눈앞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두 손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낚싯대가 들려 있었다. 들뜬 마음에 곧장 낚시바늘에 고기 밥을 꿰어 강물에 던졌다. 순식간에 길이 20인치의 완벽한 갈생 송어를 낚아 올렸다. 그는 탄성을 질렀다. 내가 천국에 와 있구나 ! 그는 다시 낚싯대를 강물에 던졌다. 똑같은 갈색 송어가 잡혔다. 던질 때마다 완벽한 최상의 고기가 걸려들었다. 우리들의 낚시꾼은 결국 그가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사진을 감쪽같이 고칠 수 있지만, 기술 사용이 반복될수록 사진가들의 작업은 점점 더 시시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힙니다. 빠르고 쉽게 작업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에 매몰되지 말고 도구로서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반 고기반 낚시가 짜릿할까?

순수 예술 사진과 기록 사진을 구분하는 추세에 대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진에서 순수예술 사진과 기록사진을 구분하는 것은 해악이라는 거지요.

"모든 사진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모든 사진은 사진가가 결정을 내린 순간 찍혀지기 때문에 얼마간 사진가의 의도가 표현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어느 한쪽으로만 완벽하게 치우친 사진은 없다는 거지요. 이분법적인 구분이 사진가들과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초월적 아름다움의 영역을 갈라놓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기계식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작가가 직접 현상, 인화하는 옛날 방식의 사진작업 경험은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곳에서 현상의 질이나 인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반복됩니다.

인물사진을 찍는 법, 풍경 사진을 찍는 법이 있긴 하지만 기술을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과 풍경을 바르게 보는 법'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인물과 풍경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법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다 읽었지만 그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진이라는 전문 영역의 강의를 모은 책이라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용어와 단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주는 울림은 컸습니다. 사진에 대한 여러 가지 철학적 고민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잘 찍는 법을 강의하는 책이 아니라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세상과 사물에 어떻게 바라보고,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을 시작하게 합니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는 소박한 책입니다. 표지와 내지 모두 사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비싼 종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책에 나오는 사진들은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책을 소개할 때 "초라한 책, 그러나 진실된 내용"이 담긴 책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소박함을 추구한 저자의 뜻에 따라 처음 출간될 때는 겨우 300부만 인쇄되었다고 합니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는 그의 제자인 박태희에 의해서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옮긴이의 해설이 필립 퍼키스의 글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