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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박근혜 능가하는 리퍼트 현상

등록|2015.03.11 16:57 수정|2015.03.11 16:57
"저도 지난 2006년에 비슷한 일을 당해 바로 이 병원에서 두 시간 반 수술을 받았는데 대사님도 같은 일을 당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중동순방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리퍼트 주한미대사의 병실부터 들렀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은 9년 전 자신이 당했던 '커터칼 피습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사건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력 인사가 칼로 공격당했다는 점, 똑같이 오른쪽 뺨을 다쳤다는 점, 성형수술 받은 병원이 같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피습을 당한 사람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병상에서 모든 것 해결한 두 '능력자'

우선 9년 전 박근혜 커터칼 피습사건 당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자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2006년 지방선거를 열흘 앞둔 5월 20일,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를 위해 신촌 현대백화점으로 갔습니다. 박 대통령은 유세를 위해 단상에 오르는 순간 지충호씨에게 커터칼로 공격당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오른쪽 뺨에 11cm 길이의 자상을 입어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돼 봉합수술을 받았죠. 범인 지충호는 현장에서 유세를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즉시 인계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노무현 정부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을 완패의 늪에 빠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은 12곳의 지자체장 선거에서 이겼고, 열린우리당은 전라북도 한 곳에서 겨우 승리했습니다. 특히 박 대통령이 당시 병상에서 깨어나 했던 "대전은요?"라는 말 한마디는 한나라당의 대전광역시장 선거 승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결국 2006년 지방선거는 집권여당이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로 기록되었고, 박 대통령에게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안겨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리퍼트 대사는 김기종씨로부터 25㎝ 길이의 흉기로 공격당했습니다. 리퍼트 대사는 오른쪽 뺨과 왼쪽 손목에 자상을 입고 인근 강북삼성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가 다시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세브란스 병원 본관 5층 수술실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로부터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리퍼트 대사는 역대 주한미대사 중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대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입원한 병상에는 연일 국내 유력 정치인과 관료들이 찾아들며 '한미동맹 강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미동맹 강화'는 주한미대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일 텐데요. 리퍼트 대사 역시 2006년 당시 박 대통령처럼 병상에 누워서 중요 과제를 해결하고 있는 셈입니다.

박근혜 쾌유 빌었던 촛불집회

중요한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피습당한 인사의 쾌유를 바라는 국민들도 많다는 점인데요. 일단 두 인사의 건강을 걱정하는 일부 국민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박근혜씨는 당시 김대중 정부 출범 전까지 40년 넘는 장기 집권을 이어 왔던 보수 정당의 대표이자 그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입니다. 게다가 7만 명에 달하는 회원 수를 자랑하는 '박사모', 1만이 넘는 회원 수를 가진 '근혜사랑' 등 많은 팬클럽까지 거느린 유력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세브란스 병원 응급병동 앞에는 '박사모' 소속 회원과 일반 지지자 30여 명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고 박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했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정읍과 부산 등지에서도 이러한 쾌유 기원 행사가 이어졌는데요. <정읍시사>에 따르면, 2006년 5월 23일 정읍에서는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50여 명의 회원 및 가족들이 촛불집회를 열었다고 하며,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박사모'와 '근혜사랑' 소속 회원 등 20여 명이 24일 저녁 부산 남포동 피프(PIFF)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박 대통령의 빠른 쾌유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지방선거 유세 기간인 2006년 5월 30일 전까지 원주 등 지방 곳곳에서 유사한 촛불집회가 계속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형식'에서부터 발레공연, '석고대죄' 등장

그런데, 리퍼트는 누구입니까? 제 주변에는 리퍼트 대사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처음 보았다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국민들 중 상당수는 누군지도 모르는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염원하는 행사에 경찰 추산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화형식'에서부터 난타, 발레공연을 하는 일부 국민들의 모습에 당황할 법한 상황입니다.

심지어 거적을 깔고 엎드려서 '석고대죄'를 하는 사람까지 등장했습니다.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 신동욱씨입니다. 한 나라 대통령의 제부가 거적을 깔고 엎드려 미국 대사의 처분이나 명령을 기다리는 꼴이니, 그의 '팬심'을 쫓아갈 자는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리퍼트 대사 피습 다음 날인 3월 6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집회로 하루종일 북적였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이 김기종씨의 사진으로 '화형식'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주말인 7일에는 개신교인들의 기도회와 부채춤, 난타, 발레 등의 공연까지 등장했는데요.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서 여성 10여 명은 한복 차림으로 양손에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가 하면, 학생들의 발레 공연도 펼쳐졌다고 합니다.

한 70대 할아버지는 건강 회복에 좋다고 알려진 개고기와 미역을 들고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70대 '팬'의 '개고기 미역 세트'는 리퍼트 대사에게 전달되지 못했답니다. 리퍼트 대사가 서울의 거주지 근처에서 그의 애견 '그릭스비'와 함께 자주 산책을 하는 애견인이었거든요.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피습보다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더 안절부절 못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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