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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정치적 간섭 말라"... 임권택 "부산의 수치"

[현장] 부산영화제 쇄신안 공청회 열려...영화인들 분노, 부산시 성토

등록|2015.03.12 09:32 수정|2015.03.12 10:17

▲ 지난 10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현장 ⓒ 성하훈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를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분노와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그 중심엔 부산시가 있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이하 공청회)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영화제 운영이 정치세력에 휘둘리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임권택 감독, 박찬욱 감독,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 명필름 심재명 대표, 민병록 동국대 명예교수, 이용관 부산영화제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영화인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공청회가 왜 열려야 하는지 강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지난 2월 9일 1차 공청회에 이어 부산시에 약속한 영화제 쇄신안과 미래비전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라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설명에 심재명 대표는 "명필름도 20주년을 맞이했고, 이런 성장은 영화제의 지원과 함께 모두가 노력한 결과"라며 "이제 와서 비전을 얘기하자는데 착잡하다. 그럼 그간 20년의 역사는 무엇이었나"라고 반문했다.

박찬욱 감독 역시 "한국 사회가 온통 엉망이 돼가는 때에 그나마 잘 굴러가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부산영화제라 생각한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다이빙벨>을 상영한 영화제가 이념성이 있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이념적인 면을 채색하는 건 부산시라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건드리는 건 이념 문제가 아닌 표현의 자유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시가 영화제 손본다면 다시는 부산에 가지 않을 것"

▲ 지난 10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박찬욱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 성하훈


영화인들의 불신은 서병수 부산시장,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정치·행정 세력이 영화제를 비롯해 독립예술영화 등 영화계를 전방위적으로 건드리는 것에 그 뿌리가 있었다. 지난 1월 29일 부산시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어 영진위가 영화제에 대한 면제 추천제도 수정과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 변경을 추진했다. 여기에 경찰까지 나서 영화인들의 반응을 수집했다.(관련 기사 : "사실상 영화계 사찰, 분명히 청와대 보고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을 향한 사퇴 권고에 대해 부산시는 "직접 사퇴 종용이 아니라 인적 쇄신을 포함한 쇄신 방안을 마련하자는 의도였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박찬욱 감독은 "해외영화제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보니 세계 유망한 젊은 감독들이 부산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 한다"면서 "정치세력의 간섭이 있는 영화제라는 평판이 난다면 앞으로 누가 오고 싶어 하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감독은 "그들이 문제시하는 영화들이 걸러진다면 영화제에 상영하는 작품은 온건한 작품들일 뿐"이라며 "도전적이고 문제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런 영화제의 초청을 받는 건 수치다. 나 같아도 다시는 부산영화제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찬욱 감독은 "영화제와 작품의 독립성은 마치 깨끗한 다이아몬드와 같다. 다이아몬드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그 가치가 떨어지듯 독립성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라며 "단 한 번의 간섭이 영화제의 20년 역사에 흠집이 된다. 건드려 버리면 이미 영화제는 의미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최근 102번째 영화를 발표한 임권택 감독은 "<길소뜸>이라는 작품을 들고 1980년대 베를린 영화제에 갔을 때 현지 기자들이 작품에 대한 질문은 안 하고 검열은 어떻게 하고 규제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면서 "그땐 중앙정보부 직원이 따라다니던 시절이라 무서워서 우리 실정을 그대로 얘기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누워서 침 뱉는 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임 감독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잘하고 있는 영화제를 부산시가 망치지 않게 그만둬야 한다. 영화인도 거기에 밀려서 자존심 상하는 일을 안 당하도록 잘 타협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한 걸 가지고 부산시가 이러는 거 같은데 영화제에서 이북 영화도 튼 적이 있다. 소재 제한을 두고 주최 측에 간섭하는 영화제가 된다면 누가 오겠나. 부산시가 간섭의 주체라면 영화제를 죽이는 거다. 영화제가 잘못되면 부산의 수치고, 영화인들의 수치고, 나라의 수치다." (임권택 감독)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언급에 전원 반발..."공동위원장 체제도 반대"

▲ 지난 10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 성하훈


또 다른 논쟁거리는 부산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 체제 여부였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공동위원장 체제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집행위원장은 "사퇴 권고 직후 왜 내가 물러나야 하느냐고 물으니 부산시 쪽에선 새로운 패러다임, 즉 새 인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면서 "부산시가 말하는 인적 쇄신, 조직 쇄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나보고 물러나라는 얘기니 그렇게 된다면 당분간 공동위원장 체제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인수인계를 위해 1년 반에서 2년 정도 공동위원장을 하다가 내가 빠지는 게 좋을 것이고, 책임자가 나니까 나 하나만 물러나는 거로 끝내달라고 했다"고 사실상 사퇴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이 집행위원장은 "부산시에서는 영화제가 부산시 경제에 이바지하길 원해서 도울 건 돕겠다고 했는데 시장님이 영화제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 같아 영화제 마켓 등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면서 "(시장의) 공동집행위원장 제안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그게 부산 내 일부 세력의 장난처럼 느껴져 그런 사람들이 거론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고 영화인 모두가 인정할만한 사람을 모시면 물러나겠다는 전제를 달았다"고 덧붙였다.

이 집행위원장이 언급한 부산 내 일부 세력은 지역 토착 인물로 그간 영화진흥위원장, 부산영상위원장 자리를 노려왔던 일부 인사들을 뜻한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진해 경성대 교수 등이 꾸준하게 공모에 참여하며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재명 대표는 "영화계와 상의 없이 언론을 통해 공동위원장 얘기가 나와서 혼란스러웠다"면서 "어떤 사람이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두 집행위원장이 어떻게 소통할지도 의문"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심 대표는 "이용관 위원장 개인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부산영화제에 대한 시대적 책임도 져야 하고 공적 판단도 해야 한다"면서 "부산시에서는 지난 2월 13일 영화인 대책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공개적으로 보장할 건지 답해 달라"고 촉구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던 민병록 교수 역시 "공동집행위원장은 좋은 생각이 아니고, 이런 선례를 남기면 다른 영화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 교수는 "차라리 시에서 지원하는 예산 60억 원(전체 영화제 예산의 절반 수준)을 받지 말고 1회 때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건 어떨지 제안한다"면서 "부산영화제는 부산시의 것도 아닌 전국, 세계의 영화팬들이 육성시킨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 교수는 "부산시에서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그렇게 강조하는데 사람들이 와서 놀고먹는 것 등을 환산하면 수백억 원의 이익이 있을 것"이라며 "'돈 주니 내 말 들어라' 하는 사람이 문제다. 차라리 부산시장을 탄핵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밝혔다.

부산시 측 "쇄신안 기대했으나 성토 발언밖에 없어"

이날 공청회에는 부산시 관계자도 참석했다. 11일 김광회 문화관광국장 등 책임자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해외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공청회에 직접 참석했다는 한 관계자는 "공청회를 처음부터 지켜봤으나 비전을 얘기하기보다는 부산시를 비판하고 성토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그 내용이 문화관광국장 선까지 보고는 됐다"고 전했다. 영화인들의 공개 질의 답변 요구에 이 관계자는 "답변 내용에 대해 결정된 건 없다. 다만 영화계에선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에 대해 직접 물었다. 11일 이 집행위원장은 "공청회 때 말했듯 분명히 사퇴 의사를 밝혔다"면서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사퇴 시기는 당장이 아니라 책임질 건 다 책임지고 마무리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이미 지난달에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 및 영화계 어른들 몇 분에게 뜻을 설명했다"면서 "처음엔 다 반대하셨지만 대안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이해해주셨다"고 전했다.

▲ ⓒ 정지욱


공청회에 참석한 방청객들도 부산영화제 사태에 대해 의견을 보탰다. 영화제 자문위원 출신의 한 시민은 "쇄신이라는 게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데 과연 영화제가 20년간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무것도 없더라"면서 "하나 잘못한 게 있다면 남의 돈을 많이 쓴 것뿐이다. 부산시가 돈으로 갑질하는 거라면 영화의 주인들이 나서서 막고, 그것이 안 된다면 다시 1회 때로 돌아가면 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대사관과 프랑스 문화원을 대신해 자리했다는 다니엘 까펠리앙씨는 "기관을 대표해 지난 20년간 좋은 협력 관계를 맺어온 부산영화제에 강한 지지를 보낸다"면서 "부산시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자꾸 강조하는데 영화제에는 오직 하나의 패러다임만 있으면 된다. 그게 바로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 좋은 사람과 좋은 영화"라고 생각을 밝혔다.

이창동 감독의 동생이자 영화 제작자인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20주년 영화제를 준비할 시간에) 정부와 부산시와 싸우는 데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다"며 "일 잘하고 있는 사람은 그냥 놔두는 게 가장 좋은 쇄신안"이라고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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