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봉 있었으면 모르는 사이로 남았을텐데...
[중국에서의 추억⑪] 헤어짐은 늘 아쉽다
▲ 주자이거우와 황롱을 여행하는 내내 썼던 일기장. ⓒ 최하나
11월 12일
다시 여기는 숙소다. 오늘은 꽤 피곤하고 힘들었던 하루였다. 황롱은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고산병이 참 무서운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오차이츠에는 가지도 못했다.
그래도 혼자 다녔으면 지금의 투어비로는 주자이거우 밖에 구경 못 했을 테니 잘 온 것 같다. 오늘 하루는 속도 많이 좋아졌고 가이드 아저씨가 투어비 중에 100위안도 돌려줘서 꽤 만족스러웠다. 사실 숙소는 갈수록 안 좋아진다. 마지막인 오늘은 최악이다. 뜨거운 물조차 없다니. 첫 날 정말 좋은 데서 잤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난 어제 숙소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전기장판 덕분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오늘은 투어팀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첫날부터 친절하게 대해준 아주머니 일행은 신장에서 온 회사 동료들이란다. 나는 여태껏 부부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같이 방을 쓰는 언니 일행도 회사 동료들이란다. 빨간 옷 입은 나이 많은 아줌마가 상사인데 호주랑 미국에 놀러 가봤다고 자랑을 많이 하시긴 하시더라.
게다가 중국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고 하셔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일행 중 빨간색 옷 입은 오빠가 제일 재밌는데 북경이 고향이라고 어찌나 자부심이 큰지. 아무튼 재밌는 사람이다. 그리고 계속 내 사진을 찍어준 부부 아저씨, 아줌마는 친절하고 착하고 재밌고 너무나 감사한 분들이다.
투어 이제 하루 남았다. 막상 마지막 날이 다가오니까 아쉽다. 좋은사람들과 여행할 수 있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중국 사람들과 함께한 3박4일 여행. 나를 '한궈슈에셩(한국학생)' 혹은 '샤오꾸냥(꼬마아가씨)'이라 불러주며 친근하게 대해준 그분들 너무 고맙다. 내일 헤어지면 아쉬울 것 같다.
나와 주자이거우는 어떤 인연인 걸까? 갑자기 짐을 꾸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나저나 빨리 숙소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싶다.
셀카봉이 있었다면 우리는 말도 섞지 않았을 텐데
밥도 굶고 속이 불편한 상태로 주자이거우 관광을 나섰다. 11월이라 날씨가 제법 쌀쌀하긴 했어도 물이 얼지 않아 구경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숲과 총천연색의 호수들은 너무 아름다워 눈이 멀 지경이었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곳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동행이 없어 사진을 찍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오피엔(사진)'을 얼마나 외쳤는지. 그때 내 자리 근처에 앉았던 중국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두 분은 부부였다)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줬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여행자들 사이에 껴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는데 거기서 또 한 번 마주쳤고 이번에는 먼저 사진을 찍어준단다.
▲ 황롱의 물은 얼어 있었다... 너무 추웠던 고산지대. ⓒ 최하나
결국 우리는 이날 동행하다시피 했다. 두 분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어 고맙다는 마음이 컸다. 요즘처럼 셀카봉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말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낯선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전기장판 좀 구해주세요."
아름다웠던 주자이거우를 뒤로 하고 우리는 그 다음 숙소로 이동했다. 추위 때문에 고생했던 악몽 같던 어젯밤이 떠올라 가이드 아저씨를 붙잡고 사정을 했다. 귀찮아하던 아저씨는 결국 낡은 전기장판을 내 침대 위에 던져주고 갔다. 점점 열악해지는 숙소 사정에도 불구하고 위안이 되는 밤이었다.
그 다음날 투어를 하게 된 황롱은 날씨 때문에 물이 많이 얼어있었다. 게다가 고도가 높아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결국 중간에 내려와 버스 안에서 얼은 몸을 녹이며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다. 여행의 막바지에는 기념품 가게를 몇 군데나 돌았다. 실적이 시원치 않았는지 가이드 아저씨는 자꾸만 마지막이라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나도 사야 하나?'
물가가 싼 중국이기는 했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물건은 제법 가격이 나갔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사정 때문에 나는 불안해졌다. 하지만 중국 아주머니들은 한국에서 온 아가씨는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보호해줬다. 덕분에 나는 불편한 권유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 팀에 껴서 오기를 잘했어.'
아프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니 그들이 꼭 내 가족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찡했다. 청두로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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