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이 도착한 이곳, 이름도 특이합니다
[강원도 겨울풍경] 겨울과 봄 사이에 서 있는 춘천 봄내길
▲ 파란 하늘이 인상적인 문배마을 풍경. ⓒ 성낙선
남쪽에서 연일 봄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아침나절의 기온이 이전에 비해 한층 더 상승한 것은 알 수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매화꽃까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봄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 수 있다. 춘천도 예외는 아니다. 춘천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공지천에서도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 물깨말구구리길, 길가에 서 있는 작은 돌탑 하나. 그 모양이 부처를 닮았다. ⓒ 성낙선
낭만적인 도시로 알려진 춘천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곳이다. 춘천을 순 우리말로 풀어쓰면, '봄내'가 된다. '봄'이라는 단어에 '시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춘천에서는 봄이 오는 소식을 흐르는 시냇물에서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녹기 시작하고, 천변으로 파란 풀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비로소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춘천에는 북한강을 비롯해서, '공지천' 같이 크고 작은 시내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 시내들이 도시 곳곳을 적시며 흐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춘천을 대표하는 것 중에 하나로 '시내'를 꼽는 것도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시내'를, 지역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받아들인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중에 하나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겨운 말, 물깨말구구리길
▲ '자연이 살아 숨쉬는 구곡폭포 관광지' 입구. 이곳에서부터 물깨말구구리길 여행이 시작된다. ⓒ 성낙선
춘천에서는 봄이 시냇물을 따라 흐른다. '강촌'도 봄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 중에 하나다. 강촌은 북한강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동네다. 그러니, 다른 곳보다 좀 더 빨리 봄이 다가오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날이 풀리면서, 강촌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고 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봄내길'로 봄 산책을 나온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겨울잠에서 깨어나 세상 나들이에 나선 다람쥐 한 마리. ⓒ 성낙선
물깨말구구리길은 사실 사람들의 이목뿐만이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 사로잡는다. 전국에 별별 여행길이 다 있지만, 이처럼 독특한 어감의 이름을 가진 길도 드물다. 이상하다고 해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아니다. 순수한 우리말이 대개 그렇듯이 처음 듣는 말인데도 상당히 친숙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 산뜻한 문양의 봄내길 이정표. ⓒ 성낙선
물깨말구구리길이라는 이름이 꽤 인기를 얻자, 춘천시에서는 한때 춘천에 있는 지역 명 중 일부를 가능한 한 순우리말로 고쳐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순 우리말을 되살려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그 일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사실 물깨말구구리길처럼 정겨운 말을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 흐르는 계곡 물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얼음장. ⓒ 성낙선
한때 오지마을로 불렸던, 깊은 산 속 문배마을
물깨말구구리길은 봉화산 속 구곡폭포를 찾아가는 길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봄이 오는 길답게 길가로 작은 개천이 흐른다. 산 속을 흐르는 계곡물이다. 계곡으로 얼음물이 쉼 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수면이 반쯤은 얼음으로 덮여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밑으로 계곡물이 흘러 내려가는 속도로 봐서 지금 남아 있는 얼음 조각마저 조만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분명하다.
한겨울에 빙벽을 타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던 구곡폭포도 이제 서서히 녹아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겉보기에 이곳에서는 아직도 겨울왕국이 전혀 위세를 잃지 않은 것처럼 보이다. 그렇지만, 빙벽 안쪽에서는 그 왕국이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얼음으로 뒤덮인 절벽 높은 곳에서 계곡 물이 조용히 흘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남쪽에서는 봄꽃이 피고 있다는데 여전히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구곡폭포. ⓒ 성낙선
물깨말구구리길은 문배마을로 올라가는 산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 위로 갈지자로 꺾어지는 길이 수없이 나타난다. 문배마을은 옛날에는 오지 마을 중에 하나로 꼽혔다. 사람들이 잘 찾아가지 않고, 마을 밖에서는 마을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까닭에 한국전쟁 당시엔 전쟁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 문배마을, 낯선 방문객을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 한 마리. ⓒ 성낙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문배마을은 봄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 있는 듯하다. 문배마을은 국그릇 모양의 작은 분지 안에 형성돼 있다. 그 모양이 무척 포근해 보인다. 마침, 몇 안 되는 집들과 논밭 위로 강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마을 곳곳에 겨울 흔적이 남아 있는 게 보이지만, 차가운 느낌은 아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파란 하늘마저도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다.
맑고 투명한 계곡물 속에서 찾아낸 춘천의 봄
▲ 좁은 계곡물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한 마리. ⓒ 성낙선
그 속에서 피라미처럼 작은 물고기 세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놀고 있는 모습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물고기들이 겨우내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신기하지만, 이처럼 깊은 산 속에, 그것도 겨우 손바닥만한 물웅덩이에 의지해 살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이 작은 생명체들은 어떻게 그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것일까?
봄이 다가오면서 새 생명이 돋아나는 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산 속 계곡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광경은 들판에 피어나는 풀잎이나 버들강아지 같은 것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깊은 산 속, 좁은 물웅덩이 안에서 물고기들이 태평하게 헤엄치며 노는 모습이 지극히 평화롭다. 그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를 뜬다.
▲ 따뜻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내리는 물깨말구구리길. ⓒ 성낙선
물깨말구구리길은 처음 걷기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물깨말구구리길을 따라서 산 속 여행을 끝냈을 땐, 어느새 봄이 한결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춘천에서도 봄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춘천을 찾아온 봄은 맨 먼저 산 속 깊은 계곡, 작은 물웅덩이 속에 깃들어 있었다.
봄내길은 모두 여섯 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2코스인 물깨말구구리길은 길이가 약 8km다. 천천히 걸어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이 길을 걸을 때는 길 입구에서 주차료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강원도에서는 요즘 건조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 같은 사소한 행위가 대형 산불로 일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춘천 봄내길 2코스, 물깨말구구리길 안내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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