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특별한 러브콜 "우리 같이 살아볼래요?"
[서평]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푸른 섬 나의 삶>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연봉 5천만 원의 멀쩡한 직장을 하루아침에 정리하고 무작정 제주도 '이민'을 감행한 그녀. 스트레스에 찌든 직장 생활에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훗날 40대를 맞이했을 때, 30대의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겠느냐고, 후회는 없겠느냐고.
답은 분명했다. 그녀는 '인생의 2막'을 열 보금자리로 남쪽의 푸른 섬, 제주도를 선택했다. 남들은 '미쳤다'고 할 만한 결정에 주저 없이 용기를 내고 혈혈단신 서울 탈출을 감행한 것은 그만큼 그녀가 제주도라는 섬에 '미쳤기' 때문이다.
서울 토박이 조남희씨의 제주도 정착 과정을 담은 책 <푸른 섬 나의 삶>(오마이북 펴냄)은 나에게 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동병상련이랄까. 나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일면식도 없는 전남 영광의 한 시골 마을로 귀농했던 터라, 저자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하며 단숨에 책을 읽어내렸다.
'제주살이'의 희로애락을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나간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리고 여행사가 정해준 바보 같은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인 관광만 하다 돌아온 옛날 제주도 신혼 여행을 후회하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 다시 제주도에 가고 싶다.'
제주는 당신이 아는 그 '제주'가 아니다
인기 스타 이효리의 제주 생활이 화제가 되면서 제주도가 '힐링 라이프'의 최적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조남희씨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당신이 아는 제주는 그 '제주'가 아니다'라고. 귀농 7년 차인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시골에 살아보니 시골은 정말 그런 곳이 아니었다.
전원 속에서의 힐링 라이프를 동경하며 귀농을 하는 사람에게 시골살이는 매스컴에 의해 멋지게 포장된 이효리의 일상처럼 판타지에 가깝다. 그러나 시골이 동경의 대상에서 삶의 전쟁터로 변모하는 순간,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것도 잠시, 이내 주저 앉아버리거나 도시로의 재탈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레알' 시골은 조남희씨가 살고 있는 서귀포시 대평리처럼 동네에 점빵 하나, 목욕탕 하나, 병원 약국 하나도 없는 깡촌이다. 앞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뒤에는 한라산 병풍을 둘렀어도 연세 170만 원의 단칸방은 도시의 원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한 법이다.
현대의 모든 병은 '넘침'과 '과함'에서 비롯된다고 하던가. 조금만 불편하게 살아보면 내가 이전에 얼마나 소비에 물들어 있었는지 단박에 알게 된다. 20~30분 넘게 차를 타고 읍에 나가 장을 봐야 하는 곳에 살면서 계획적인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각종 재화의 빈곤에 허덕이거나 매일 차를 쓰다가 기름값 폭탄을 맞을 것이다.
'유기농 라이프'는 또 어떤가. 텃밭에서 각종 채소를 가꿔 먹는다고 하면 금세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텃밭 하나 일궈보면 알게 된다. 농사,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을. 파종부터 수확까지 끊임없이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며칠만 방심해도 잡초가 작물을 덮어버리기 일쑤니 수시로 김매기를 해야 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보면 그제야 텃밭의 '매운맛'을 실감하게 된다.
의욕 넘치게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일명 '무관심 농법'으로 전환했다는 대목을 읽으니 격하게 공감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혹시 손바닥만한 땅에서 '뭐 그리 힘들다고 엄살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직접 해보시라. 땅을, 농사를, 농부를 왜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지 절로 알게 될 테니.
마을에는 겨우 흉내만 내는 '얼치기 귀농인'들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 따지고 보면 다 선생님들이다. 이웃집 어르신에게 부탁해 모종을 얻으며 길러 먹는 방법을 귀동냥으로 배운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고 점차 마을의 일원이 되어 나간다. 천천히 그렇게 가다 보면 내 집 앞마당 텃밭은 엉망이 될지언정, 예상 못한 수확을 얻는다.
양파철이 되면 엄청난 양의 양파가 대문 앞에 놓여 있고, 옥수수 철이 되면 감당 못할 만큼의 옥수수가 집으로 밀려든다. 시금치, 상추, 얼갈이, 배추, 부추와 같은 채소들은 수시로 마을 분들이 가져다주신다. 아이 출산 때문에 친정으로 가 있는 내내, 잡초로 뒤덮였을 텃밭 걱정이 끊이질 않았는데 막상 집에 와보니 마을 할매들이 김을 다 매 놓아서 깨끗하다.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조남희씨도 그랬나 보다. 셰어하우스를 만들면서 육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을 이웃집 어르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또 어르신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단다. 하지만 특별한 방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서로 가까워질 만한 시간과 한라산 소주 몇 병이면 됐다. 제주 생활 3년 차, 그녀는 그렇게 마을에 스며들면서 '삶의 터전'으로써 제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육지 것'에서 '제주도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자신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런 문제들은 별것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제주는 어쩌면 그 제주가 아니다. 제주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제주 정착의 장밋빛 생활기가 가득한 글에 현혹되지 말라는 소리다...(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로 와야겠다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제주로 이주한 이들이 가감 없이 전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철저한 사전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고 진정한 '비빌 언덕' 되어줄 현지인들과의 인맥도 중요하다. (213~215쪽)
'육지 것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준 '오월이네 집'
모든 게 불편한 낯선 시골살이를 위해서는 '맨땅에 헤딩' 정신도 중요하다. 하지만 조남희씨는 정말로 제주에 살고 싶다면 먼저 '비빌 언덕'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는 그녀 스스로 외지인들의 '비빌 언덕'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보기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제주에 오면서 가장 먼저 부닥치는 난관은 집을 구하는 것이다.
집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막상 구했더라도 시골살이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선 살아보고 나서'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방 한 칸씩 나눠쓰며 '제주'를 매개로 모여 살면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을 도모해 보자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다.
"우리, 같이 살아볼래요?"
농가 주택을 개조해 만든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키우던 고양이 이름을 따서 '오월이네 집'으로 지었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녀가 '셰어하우스'를 만들면서 같이 살 사람을 모집하는데 내세운 조건은 딱 두 가지다. '이런 나라도 괜찮겠니?'와 '이런 우리 집이라도 괜찮겠니?'.
비록 벌레와 동고동락하며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써야 하고 무엇이든 도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취지에 공감해 제주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사람, 불만을 늘어놓지 않을 사람, 육지 것이 아니라 제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대환영이란다. 오월이네 집은 제주에 정착하게 위해 모인 젊은이들의 공동체인 셈이다.
나는 직장인의 삶을, 유라는 예술가의 삶을 살아왔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자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만나 함께 살면 어느 정도 충돌과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서로 다른 상대를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건너온 지 한 달 만에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것은 왠지 모를 서러움이었으리라...(중략)...외로운 섬 속의 섬, 그것이 나였고 또 유라였다. (185쪽)
솔직히 '공동체'는 어렵고도 불편하다. '마을 공동체'가 유행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유형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공동체의 기본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기'다. 혼자 있을때는 별 문제가 아니었던 것도 같이 살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나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공동체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오랜 시간 나라는 존재를 단단하게 싸고 있던 습관의 껍질을 벗어나가는 수련장이 된다. 삶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공동체는 그 길의 도반이 되어준다. 어쩌면 오월이네 집에서 부대끼며 만들어가는 공동체는 단순히 제주 정착을 위한 관문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마을이자 자아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납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정신없이 맞고 서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섬은 그냥 여기에 있었고, 나도 그냥 여기 잠시 있었을 뿐이라고.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길 위에 있고, 그 길 위에서 때로 울고 때로 웃으며 내가 가진 자유의 크기를 조금씩 늘려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242쪽)
책의 말미, 이 대목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시골 생활이 버겁다고, 마을 살이가 불편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말을 기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길 위에 서 있다'는 것 자체다. 그럴싸한 포장이나 내세움 없이 시종일관 담담하게 제주 살이를 고백해 준 작가에게 마음으로 연대의 응원을 보낸다. 덕분에 나도 한 뼘 더 용기가 생겼다.
답은 분명했다. 그녀는 '인생의 2막'을 열 보금자리로 남쪽의 푸른 섬, 제주도를 선택했다. 남들은 '미쳤다'고 할 만한 결정에 주저 없이 용기를 내고 혈혈단신 서울 탈출을 감행한 것은 그만큼 그녀가 제주도라는 섬에 '미쳤기' 때문이다.
서울 토박이 조남희씨의 제주도 정착 과정을 담은 책 <푸른 섬 나의 삶>(오마이북 펴냄)은 나에게 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동병상련이랄까. 나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일면식도 없는 전남 영광의 한 시골 마을로 귀농했던 터라, 저자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하며 단숨에 책을 읽어내렸다.
'제주살이'의 희로애락을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나간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리고 여행사가 정해준 바보 같은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인 관광만 하다 돌아온 옛날 제주도 신혼 여행을 후회하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 다시 제주도에 가고 싶다.'
제주는 당신이 아는 그 '제주'가 아니다
▲ <푸른 섬 나의 삶> 책 표지. ⓒ 오마이북
전원 속에서의 힐링 라이프를 동경하며 귀농을 하는 사람에게 시골살이는 매스컴에 의해 멋지게 포장된 이효리의 일상처럼 판타지에 가깝다. 그러나 시골이 동경의 대상에서 삶의 전쟁터로 변모하는 순간,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것도 잠시, 이내 주저 앉아버리거나 도시로의 재탈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레알' 시골은 조남희씨가 살고 있는 서귀포시 대평리처럼 동네에 점빵 하나, 목욕탕 하나, 병원 약국 하나도 없는 깡촌이다. 앞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뒤에는 한라산 병풍을 둘렀어도 연세 170만 원의 단칸방은 도시의 원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한 법이다.
현대의 모든 병은 '넘침'과 '과함'에서 비롯된다고 하던가. 조금만 불편하게 살아보면 내가 이전에 얼마나 소비에 물들어 있었는지 단박에 알게 된다. 20~30분 넘게 차를 타고 읍에 나가 장을 봐야 하는 곳에 살면서 계획적인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각종 재화의 빈곤에 허덕이거나 매일 차를 쓰다가 기름값 폭탄을 맞을 것이다.
'유기농 라이프'는 또 어떤가. 텃밭에서 각종 채소를 가꿔 먹는다고 하면 금세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텃밭 하나 일궈보면 알게 된다. 농사,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을. 파종부터 수확까지 끊임없이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며칠만 방심해도 잡초가 작물을 덮어버리기 일쑤니 수시로 김매기를 해야 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보면 그제야 텃밭의 '매운맛'을 실감하게 된다.
의욕 넘치게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일명 '무관심 농법'으로 전환했다는 대목을 읽으니 격하게 공감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혹시 손바닥만한 땅에서 '뭐 그리 힘들다고 엄살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직접 해보시라. 땅을, 농사를, 농부를 왜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지 절로 알게 될 테니.
마을에는 겨우 흉내만 내는 '얼치기 귀농인'들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 따지고 보면 다 선생님들이다. 이웃집 어르신에게 부탁해 모종을 얻으며 길러 먹는 방법을 귀동냥으로 배운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고 점차 마을의 일원이 되어 나간다. 천천히 그렇게 가다 보면 내 집 앞마당 텃밭은 엉망이 될지언정, 예상 못한 수확을 얻는다.
양파철이 되면 엄청난 양의 양파가 대문 앞에 놓여 있고, 옥수수 철이 되면 감당 못할 만큼의 옥수수가 집으로 밀려든다. 시금치, 상추, 얼갈이, 배추, 부추와 같은 채소들은 수시로 마을 분들이 가져다주신다. 아이 출산 때문에 친정으로 가 있는 내내, 잡초로 뒤덮였을 텃밭 걱정이 끊이질 않았는데 막상 집에 와보니 마을 할매들이 김을 다 매 놓아서 깨끗하다.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조남희씨도 그랬나 보다. 셰어하우스를 만들면서 육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을 이웃집 어르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또 어르신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단다. 하지만 특별한 방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서로 가까워질 만한 시간과 한라산 소주 몇 병이면 됐다. 제주 생활 3년 차, 그녀는 그렇게 마을에 스며들면서 '삶의 터전'으로써 제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육지 것'에서 '제주도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자신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런 문제들은 별것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제주는 어쩌면 그 제주가 아니다. 제주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제주 정착의 장밋빛 생활기가 가득한 글에 현혹되지 말라는 소리다...(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로 와야겠다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제주로 이주한 이들이 가감 없이 전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철저한 사전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고 진정한 '비빌 언덕' 되어줄 현지인들과의 인맥도 중요하다. (213~215쪽)
'육지 것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준 '오월이네 집'
▲ '소길댁' 이효리 블로그. 메스컴과 인터넷 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효리의 제주 힐링 라이프. 하지만 현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 이효리
모든 게 불편한 낯선 시골살이를 위해서는 '맨땅에 헤딩' 정신도 중요하다. 하지만 조남희씨는 정말로 제주에 살고 싶다면 먼저 '비빌 언덕'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는 그녀 스스로 외지인들의 '비빌 언덕'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보기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제주에 오면서 가장 먼저 부닥치는 난관은 집을 구하는 것이다.
집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막상 구했더라도 시골살이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선 살아보고 나서'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방 한 칸씩 나눠쓰며 '제주'를 매개로 모여 살면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을 도모해 보자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다.
"우리, 같이 살아볼래요?"
농가 주택을 개조해 만든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키우던 고양이 이름을 따서 '오월이네 집'으로 지었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녀가 '셰어하우스'를 만들면서 같이 살 사람을 모집하는데 내세운 조건은 딱 두 가지다. '이런 나라도 괜찮겠니?'와 '이런 우리 집이라도 괜찮겠니?'.
비록 벌레와 동고동락하며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써야 하고 무엇이든 도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취지에 공감해 제주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사람, 불만을 늘어놓지 않을 사람, 육지 것이 아니라 제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대환영이란다. 오월이네 집은 제주에 정착하게 위해 모인 젊은이들의 공동체인 셈이다.
나는 직장인의 삶을, 유라는 예술가의 삶을 살아왔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자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만나 함께 살면 어느 정도 충돌과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서로 다른 상대를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건너온 지 한 달 만에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것은 왠지 모를 서러움이었으리라...(중략)...외로운 섬 속의 섬, 그것이 나였고 또 유라였다. (185쪽)
솔직히 '공동체'는 어렵고도 불편하다. '마을 공동체'가 유행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유형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공동체의 기본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기'다. 혼자 있을때는 별 문제가 아니었던 것도 같이 살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나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 <푸른 섬 나의 삶> 본문 속 제주도 모습. ⓒ 임종진
공동체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오랜 시간 나라는 존재를 단단하게 싸고 있던 습관의 껍질을 벗어나가는 수련장이 된다. 삶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공동체는 그 길의 도반이 되어준다. 어쩌면 오월이네 집에서 부대끼며 만들어가는 공동체는 단순히 제주 정착을 위한 관문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마을이자 자아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납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정신없이 맞고 서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섬은 그냥 여기에 있었고, 나도 그냥 여기 잠시 있었을 뿐이라고.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길 위에 있고, 그 길 위에서 때로 울고 때로 웃으며 내가 가진 자유의 크기를 조금씩 늘려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242쪽)
책의 말미, 이 대목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시골 생활이 버겁다고, 마을 살이가 불편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말을 기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길 위에 서 있다'는 것 자체다. 그럴싸한 포장이나 내세움 없이 시종일관 담담하게 제주 살이를 고백해 준 작가에게 마음으로 연대의 응원을 보낸다. 덕분에 나도 한 뼘 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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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