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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깨지고 손가락 부러지고, 하늘이 도왔다

복수초 보러 모후산에 올랐다가 추락... "형님, 액땜했다 생각하세요"

등록|2015.03.16 10:22 수정|2015.03.16 10:22
"형님, 액땜했다 생각하세요."
"……."
"이 정도 다친 게 참 운이 좋아서요."
"……."

덜렁거린 가운뎃손가락을 손수건으로 싸매고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달 27일 오후 7시. 얼굴은 괴물처럼 퉁퉁 부었고 피는 여기저기 엉겨 붙어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다. 전혀 아프지가 않다. 3m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머리가 깨지거나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할 정도의 큰 사고였다.

사진가인 후배와 촬영을 나선 시각이 오후 3시, 그날따라 날씨가 고르지 못했다. 겨울의 마지막 버티기인양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졌다. 오랜만에 출사일뿐 아니라 약속을 어기기가 싫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항해하다 보면 슬픈 일, 기쁜 일 그리고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수습할 수 없는 사고를 접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게 된다. 혹시, 남에게 원망 받을 일을 저지르지나 않았을까. 그렇지만 잘못한 적이 없는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곤 한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도 복수초이니 누군가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삭막한 산등성이의 나무 밑에 노랗게 피어나 원망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꽃말을 만들어 버렸다. 부모님, 친척, 친구 등 주위를 살펴보지 못한 채 바쁘다는 핑계로 앞만 보며 달려왔다.

복수초 군락을 만난 뒤 뛰다시피 내려오다가...

모후산은 이곳 광주에서 한 시간 거리다. 등반할 것도 아니고 2월의 야생화인 복수초를 접사로 몇 컷 찍을 양으로 간단한 옷차림으로 나섰다. 어머니 품속 같은 산이라 하여 붙여진 모후산은 919 m로 산세가 험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주변 및 등산로를 정비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복수초복수초는 우리나라 각처의 숲 속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키는 10~15㎝이고, 잎은 3갈래로 갈라지며 끝이 둔하고 털이 없다.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면 꽃 뒤쪽으로 잎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꽃은 4~6㎝이고 줄기 끝에 한 송이가 달리고 노란색이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복수초 (야생화도감(봄), 2010.4.10, 푸른행복) ⓒ 문운주


그런데 산등성이에 피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나리과에 속하고 나무그늘 밑에서 자라는 야생화. 생각과는 달리 40분 정도 오른 정상 가까이 가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복수초 군락지였다. 나뭇잎도 없고 풀도 자라지 않는 회색의 땅에서 노란 꽃잎의 순을 내고 봄이 왔음을 알린다. 봄의 전령사다.

"우와! 좋아요"
"아, 그래 좋네."
"이것 찍어보세요"
"……."

홀로 외롭게 서 있기도 했고 가시덤불 밑에 나란히 꽃대를 올리고 황금빛 자태를 뽐내고 있기도 했다. 후배는 약간 들떠 있었다. 하기야 오랜만에 나온 산행이고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으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거울 수밖에….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산속에서는 일교차가 더 심하다. 기온이 급강하, 영하로 내려갔다. 설상가상으로 어둑해지니 마음이 급해졌다. 하산을 서둘렀다. 앞선 후배 뒤를 뒤따라 뛰다시피 내려왔다.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현기증이 나고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3m 낭떠러지에서 중심을 잃고 계곡으로 곤두박질쳤다. 계곡의 뾰쪽뾰쪽한 바위들 틈에 풀썩 나자빠졌다. 죽었구나 생각했다. 무의식중에 손으로 무엇을 잡으려 했던 모양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굴이 깨지고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다. 수술이 끝난 후에 거울들 들여다보니 얼굴이 고무풍선처럼 붓고 피멍 투성이다. 사람이 아닌 괴물이다. 살아난 것이, 손가락만 부러진 것이, 괴물처럼 얼굴만 부은 것이 기적이었다.

복수초봅이 왔다. 황금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봄이 왔음을 알린다. ⓒ 문운주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 모후산에서 복수의 화신을 만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꽃' 장수초를 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1. 경사가 급할 수록 천천히 내려온다.
2. 내라막 길에서는 절대 뛰거나 빨리 내려오지 않는다.
3. 내려올 때 보폭을 안정감 있게 한다.
4. 발이 신발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신발끈을 단단히 맨다.
5. 산행은 아침 일찍 시작하고 해지기 1~2 시간 전에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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