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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문제, 이사장 직접 나서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파업 273일, 여성계 "대화 피해선 안돼"

등록|2015.03.17 18:10 수정|2015.03.17 18:12
"시민 여러분, 생활 임금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 중인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들입니다. 정몽준 전 이사장과 정정길 이사장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단전, 단수까지 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도와 주십시오."

17일 오전 11시, 울산 중구에서 남구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는 방송 차량에서는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 김순자 지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방송차량에서 나오는 비슷한 호소를 접한 것이 벌써 수일 째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 시급 6000원, 상여금 100% 인상하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지 273일. 그동안 지역 여성계도 수 차례 호소했지만, 대학 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관련기사 : 이사장 없이 졸업식 치른 울산과학대, 왜?).

이에 울산지역 여성단체들은 17일 다시 한 번 "울산과학대 허정석 총장과 정정길 이사장이 청소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정길 이사장이 여성 단체들의 면담 요청에 '청소 노동자들의 문제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면서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대학 총장과 이사장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 누가 이해하겠나"

▲ 울산지역 여성들이 3·8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울산과학대 정문에서 가진 여성노동자대회 때 청소 용품을 들고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을 알리고 있다. 지역 여성들은 17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과 이사장이 직접 나설 것"을 촉구했다. ⓒ 박석철


여성단체들은 17일 오후 2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 총장과 학원의 이사장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냐"며 "총장과 이사장이 청소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라"고 거듭 촉구했다. 울산과학대가 속한 울산공업학원의 정정길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실장을 지낸 바 있다. 전임 이사장은 정몽준 전 의원이다.

앞서 울산 지역 각계 여성들은 지난 2월 10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생존권 투쟁'을 지지하는 100인 선언(참여자는 208명)을 했고, 3·8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에는 울산과학대 정문 앞에서 '울산 여성노동자 대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하면서 대학 측이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17일 기자회견에는 울산여성회, 울산여성의전화, YWCA, 상담소시설협의회, 전국여성노조울산지부, 민주노총울산투쟁본부여성위원회 등이 참석했다.

지역 여성 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성 단체 대표자들이 청소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울산과학대가 나서줄 것을 요청하며 허정석 총장과 정정길 이사장 면담을 추진해 왔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식으로 보낸 공문에도 울산과학대는 묵묵부답이었고, 여성 단체 대표자들이 학교를 직접 방문해 총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잡상인 취급당하며 내쫓겼다"며 "또한 정정길 이사장은 '과학대 청소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며, 여성 단체장들을 만날 이유도 없다'며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울산과학대학교 측은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역의 여성 단체와 울산과학대 총장, 이사장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울산본부 조이영장 국장은 "이사장이 면담을 거절해 이사장 비서실과 통화했는데 비서실에서 이 같은 정 이사장의 말을 전해줬다"고 전했다.

지역 여성 단체들은 또 "50~60대인 늙은 여성 노동자들이 매서운 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270일이 넘도록 천막에서 생활하고 하고 있지만, 울산과학대는 단전·단수에 화장실 이용조차 막고 있다"며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쓸고 닦으며 학교를 빛내 온 사람들로 '사람답게 살고 싶다, 시급 6000원, 100% 상여금 인상'이라는 소박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이 소박한 요구가 1년 가까이 천막 생활을 하게 할 정도로 학교 운영이 힘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과학대 측은 이에 대해 "단전, 단수의 경우, 법원으로부터 청소노동자들이 본관 사용을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을 받았기에 농성장에 굳이 물을 대고 전기선을 연결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임금 수준도 현재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연간 2000~2200만 원 수준으로 전국 타 대학에 비해 높은 편이며 농성 중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기자 회견을 마무리하며 지역 여성단체들은 "울산과학대는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학생들에게 인권을 가르치고 진리와 정의를 말할 수 있나"라고 되묻고 "학교 당국이 늙은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또 "청소노동자는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군소리 없이 일만 하는 노예가 아니며, 생활 가능한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권리고, 법으로 보장된 노동의 권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교 당국은 더 이상 뒤로 숨지만 말고 노동자들과 대화에 나서달라"며 "무능한 총장, 이사장이란 오명을 이번 기회에 말끔히 씻어내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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