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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 어웨이> 따라한 이 남자, 보통이 아니네요

[독서에세이] 이동진의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등록|2015.03.19 17:53 수정|2015.03.20 09:37
이상한 웃음 소리를 내는 남자.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적절히 조화된 남자. 농담 따먹기로 지적 수준을 드러내는 남자. 은근히 자기 비하를 하는, 나 잘난 줄 아는 남자. 글을 맛깔나게 읽는 남자. 섬세한 지력의 힘으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몽땅 파악하고 있을 것 같은 남자. 빨간 안경을 쓰는 남자.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남자. 글만 쓰며 살고 싶은 남자. 그럼에도 글쓰기에 매번 좌절하는 남자. 나를 팟캐스트의 세계로 초대한 남자. 이 남자는 바로 영화평론가 이동진이다. 그의 글을 처음 읽었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들으며 나름대로 그에 대한 '상'을 그려 봤다. 위와 같이. 그러면서 언제고 이 사람의 글을 읽어 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이동진은 글에선 웃지 않는구나, 였다. 팟캐스트에선 넘쳐 흐르던 유머와 위트가 글엔 없었다. 진지했다.

열 두 편의 영화, 열 두 곳의 장소

▲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표지 ⓒ 예담

그가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다(엄청 티 나니까). 그러니 그의 글도 깊을 거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글은 생각보다 더 깊었다. 흡연가가 담배를 비벼 끌 때 한 번 더 꾹 눌러 완벽한 마무리를 짓는 것처럼, 그의 글도 어떤 완성에 다다르려는 듯 끝에 가서 한 문장을 더 토해내고 있었다. 평소엔 드러내지 않던 침잠된 생각들이 마지막 한 문장에 모여들고 있는 듯했다. 그의 침잠된 생각엔 약간의 우울과 약간의 비애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꾹꾹 눌러쓴 글이기 때문인지 쉽게 쭉쭉 빨리 읽어나가지 못했다. 작가가 긴 호흡으로 써내려 간 문장이니 나도 길게 호흡하며 속도를 맞춰 나갔다. 숨을 후욱 내뱉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왜 영화를 볼까. 그는 왜 여행을 다닐까. 혹시 이 모든 게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어 영화를 보고, 여행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던 터라 책이 내게 남긴 인상은 책 속의 영화나 장소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문체나 문장도 아니었다. 그저 글을 쓰는 이동진 자체가 가장 인상 깊었다.

녹슬어버리는 것보다는 닳아버리는 게 낫다. 변치 않는 미래를 꿈꾸느라 녹슬어버리느니, 들끓는 현재를 겪어내느라 해져버리는 게 차라리 좋다.

책엔 열두 편의 영화 이야기와 영화의 배경이 된 열 두 곳의 장소가 나온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아일랜드, 튀니지, 스페인, 대만, 그리스, 피지, 이탈리아, 영국, 스웨덴에서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원스>,<스타워즈>,<내 어머니의 모든 것>,<말할 수 없는 비밀>,<맘마 미아>,<캐스트 어웨이>,<투스카니의 태양>,<폭풍의 언덕>,<침묵의 봉인>,<소나티네>,<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탄생했고, 이동진은 이 장소들을 직접 찾아가 필름을 머릿속에서 다시 되돌리며 생각의 잔상들을 기록한다.

책에 소개된 영화 중 반 이상이 이미 본 영화였다. 아무래도 이미 봤던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가 더 흥미로웠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특히 그랬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다시 한 번 봤다. 어린 시절 울고불고 하며 봤던 영화였던지라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이도 더 들었겠다, 고딩의 사랑이야기에 울 순 없지, 하며 나름 건조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으나...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입을 틀어막고 꺽꺽 울어야 했고 여자 주인공의 재가 흩뿌려지는 광경에서는 목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울룰루가 나온다. 이곳은 영화 주인공 아키가 죽기 전 꼭 와보고 싶어했던 장소였지만, 끝내 오지 못한 곳이다. 아키는 죽기 전 사쿠에게 말한다. '마지막 부탁이야. 내 재를 울룰루의 바람 속에 흩어줘. 그리고 넌 너의 시간을 살아줘' 아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서였던 걸까. 성인이 되어서도 사쿠는 여전히 아키를 잊지 못한다. 그런 그의 발걸음이 이제야 울루루로 향한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 사쿠는 사쿠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과거의 사랑도 과거일 뿐이니까. 과거의 꿈도 과거일 뿐이니까.

영화 속 두 어린 연인, 아키와 사쿠의 부서진 꿈만을 바라보며 떠났던 여정의 초입에서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 질문을 받자 잠시 당황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그려놓고 간절히 소망했던 게 언제였던가. 영화 속 남의 꿈을 나의 현실로 잠시 바꿔 체험하려는 게 목적인 영화 기행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맞닥뜨린 예기치 않은 물음이었다.

말은 위와 같이 했지만, 이동진은 비교적 '간절히 소망'했던 것 같은 일을 책에서 이루어 내기도 한다.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캐스트 어웨이> 편에서였다. 상대적으로 사색이 적고 체험 위주로 흘러간 <캐스트 어웨이> 편에서 이동진은 영화 속 톰 행크스를 따라 해보겠다며 피지의 모누리키 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혼자' 보낼 기대를 품고. 영화의 실제 무대였던 모누리키 섬은 작은 무인도로, 영화 속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로운 섬 하나였다.

한 남자가 조그마한 모터 보트를 타고 오더니 모터보트는 돌려 보내고 혼자만 섬에 남는다. 어정쩡한 자세로 코코넛을 따다 실패하고는 이내 물고기를 잡는 시늉을 한다.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하자 갑자기 손바닥에 붉은색 물감을 묻히더니 배구공에 시뻘건 손자국을 남긴다(배구공 윌슨을 만들기 위해).

그냥 그렇게 시간을 죽치고 있으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직접 잡는 것은 포기하고) 준비해 온 물고기를 구워 아낌없이 먹는다(불은 라이터로 붙인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신문지를 깔고 드러눕고는 별을 헤다 잠이 든다. 잠이 든 그를 보며 생각했다. 그처럼 영화를 좇아, 낭만을 좇아 이 곳으로 들어와 잠을 청한 이들은 지금까지 몇 명이었을까.

영원한 낭만은 불가능하듯이, 어느새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시작되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 이동진은 잠에서 깨어난다. 보이는 것은 바다와 태양뿐. 그는 그 순간 모든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 자연과 대면한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무인도에서 홀로 아침을 맞는 기분은.  

다가오는 새벽을 눈꺼풀로 느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모닥불은 불씨로만 남아 있었다. 5시 40분. 희뿌연 여명 속에서 어둠과 빛이 교대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을 걸었다. 바람과 파도뿐이었다.

이동진은 모래 위에 'MEMORY'라고 새긴 뒤 그곳을 떠난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랐던 걸까.

진짜 나를 위한 '한 문장'

12편의 영화를 돌아, 12곳을 장소를 돌아, 한 권의 책을 돌아, 이동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있다. 팟캐스트에서의 그는 언제나처럼 히히덕거리며 말장난을 주고 받는다. 그는 유쾌해 보인다. '사회화된 그'이다. 그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서의 그의 모습은 모두 그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가장 그다운 그는 아무래도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한 문장 때문이다. 사회 속에선 침묵해야 했던 한 문장.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드러낼 수 없어 꾹 삼켜버려야 했던 한 문장. 나는 바로 이 한 문장을 그의 책 속에서 만났다. 그를 만난 기분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닌 나로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서러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단 한 번도 나인 적이 없었던 것 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한치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내일. 삶이라 일컬어지지만 '내 삶'은 아닌 것 같은 그런 삶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한 문장만 더 토해내면 되리라.

한 문장은 글일 수도 있고, 말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고, 인라인 스케이트일 수도 있고, 사진일 수도 있고, 봉사일 수도 있다. 한 문장이 무엇이 될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안엔 모두 다른 것이 침잠해 있고, 표현 방법 또한 각기 다를 테니까.

내면 깊숙이 침잠해 있는 그 무언가를 끄집어낼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이야 많지 않을까. 퇴근길의 짧은 산책을 통해 끄집어낼 수도 있겠고,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읽어도 될 테고, 귀여운 토끼를 스케치해 보는 것 역시 좋을 것 같고, 가장 친한 친구와의 깊은 대화가 본연의 나를 찾게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이 국립 중앙 박물관을 다녀오는 길이라며 연락을 해온다. 그곳에서 만난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지 지금 내게 오고 있는 중이란다. 골뱅이를 사 들고. 한 문장을 내뱉으러.
덧붙이는 글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이동진/예담/2010년 03월 16일/1만 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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