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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벌금폭탄 불복, 세 번째 노역장 입감

김아무개씨, 부산 이주민과 함께 23일 부산지검 출두... 벌금 300만원 선고

등록|2015.03.22 17:16 수정|2015.03.22 17:16
밀양 송전탑 반대 활동에 나섰다가 검찰·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은 활동가가 또 노역장에 입감된다. 22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부산에 사는 여성 김아무개(38)씨가 세 번째 노역장 입감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부산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이주민과함께'의 상임활동가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2013년 10월 3일, 밀양 송전탑 금곡헬기장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한 농성과정에서 연행되어 2심에서 벌금 300만 원이 확정된 상태다.

▲ 밀양 송전탑 반대 활동에 나섰다가 벌금을 선고받은 부산지역 활동가 김아무개씨가 23일 '벌금 폭탄'에 항의하는 뜻으로 노역형을 선언하고 노역장에 입감된다. 사진은 지난 2월 26일 진주지역 활동가 김아무개씨가 첫 노역형을 선언하며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모습. ⓒ 윤성효


김씨의 노역형 선언은 진주·울산 출신 활동가 노역형 선언에 이어 세 번째다. 밀양 송전탑반대 활동을 벌이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활동가들은 '밀양 송전탑 벌금폭탄 사태'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노역형을 선언하고 있다.

김씨는 입감 하루 전날 낸 개인성명을 통해 "밀양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고마운 학교였고, 누가 찾아와도 손주들에게 하듯 따뜻한 밥과 음식을 내어주는 할머니들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배웠다"며 "부당한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어르신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의지로써 노역형을 선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23일 오후 부산지방검찰청에 출두해 이후 노역장에 수감될 예정이다. 다음은 김아무개씨가 낸 개인성명 전문이다.

<성명서> 밀양의 할매할배들로부터 배운다

밀양에 지어질 매우 위험한 송전탑 건설에 수년째 반대해온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밤에도 휘황찬란한 불빛들 속에서, 뜨건 여름엔 시원한 사무실에서, 집안에선 온갖 편리한 전자제품들 속에서 살아가던 '도시 것들' 중 한명인 저는 그래서 죄송스러웠던 거예요. 밀양의 주민들이 쓸 전기가 아니라 대도시 전력공급을 위해 밀양에 높고도 큰 송전탑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밀양주민의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행정대집행이 있을 것이라던 그날 금곡헬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송전탑 건설자재를 나르는 헬기소리를 뒤로하며 한 할머니께서 오열하시다 도로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부축하며 둘러쌌지만 오열하시던 할머니는 힘이 빠진 듯 도로위에 누워버리셨는데 그 와중에도 송전탑 건설이 부당함을 남은 온 힘으로 외치셨습니다.

그때, 마치 도미노가 하나씩 넘어지듯 열을 지어 서있던 우리들도 할머니 주변으로부터 한명씩, 또 한명씩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몸으로 마음으로 서로 연결된 채 공명하였지만, 검찰은 이를 '도로교통법 위반'이라 하였습니다.

밀양은 저에게,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고마운 학교입니다. 에너지정의와 환경의 문제, 고향과 터전 혹은 주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배움터였습니다. 무엇보다 큰 배움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싸움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자, 건강과 환경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싸움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것. 무엇보다 이 터전을 건강하게 지키는 일은 자신들의 몫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한국의 그 어떤 운동이 후손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요?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연대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농성장을 찾아가면 일단 먹여 주시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한 번씩 거쳐 가는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찌짐과 된장찌개, 손맛 깊은 밥상을 내셨습니다. "애들 왔는데 까자라도 주야지" 하시던 말씀도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도 부족하고, 연료도 재료도 모든 것이 부족한 곳이었는데 말이죠. 잠깐 들렀던 이들에겐 따스하게 기억되는 그 농성장은 사실 늘 긴장해야하는 공간이자 때로 목숨을 건 처절한 싸움터였습니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리하여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밀양은 우리 사회의 배움의 현장입니다. 밀양은 수많은 우리를 변화시켰고, 우리 후손들에게도 환경과 정의에 대한 학습장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간 밀양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국가의 부정부패와 폭력, 불의를 우리는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국가권력은 밀양에 765kV의 송전탑을 기어이 심었습니다.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밀양이라는 소중한 배움터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밀양을, 후손을 지키고자 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함께해온 활동가들, 연대해온 이들까지 형사재판의 무거운 판결로 옭아매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밀양주민들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연행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근 1년 만에 벌금형 판결을 받고 300만원을 납부하라는 독촉서가 날아왔습니다.

이에 밀양에 연대하다 기소된 이들이 함께 뜻을 모았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국가권력의 폭력과 부당한 판결에 불복하는 의미로 노역형을 살기로 하였습니다. 너무나 크나 큰 배움을 주신 밀양의 어르신들에게 내야하는 수업료라면 기꺼이 내겠습니다. 하지만 부당한 공권력의 명령이기에 거부하려합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2015년 3월 22일. 이주민과함께 김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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