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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의자가 있는 마을... "미술교과서에도 실렸어요"

[우리마을을 찾아서⑦] 한경면 낙천리

등록|2015.03.23 21:13 수정|2015.03.24 14:23

▲ 낙천리에 위치한 연못 가운데 하나. (사진제공 낙천리) ⓒ 신용철


'설문대 할망이 섬 제주를 만드는 게 농사일처럼 힘들더니 오뉴월 땡볕에서 한경이라 낙천지경을 만들다가 땀방울을 떨어뜨렸다. 그 떨어진 자리마다 조화가 일어 아홉 연못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으로 낙천 의자마을을 검색하면 '아홉굿마을'이 대신 검색된다. 마을 벽화에 소개된 이 글을 보면 그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린다.

낙천리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불미업(대장간)이 시작된 곳이다. 고온을 견디고 이겨내야 할 흙들을 마을에서 파다보니 웅덩이가 생겼고, 그 웅덩이에 빗물이 고이면서 아홉개의 굿(구통=연못)이 생겼다는 것이 오원국 낙천리장의 설명이다. 연못은 이후로도 계속 만들어져 이 마을에는 현재 연못만 26개에 이른다.

예전에 낙천리는 샘을 뜻하는 사미(思味)나 천미(泉味)로 불렸으며 이후 낙세미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그만큼 물맛이 좋고 샘이 풍부한 마을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제주의 거의 모든 마을들이 바다·오름·곶자왈 이 세 가지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소유하고 있다. 낙천리는 그 어느 것도 없는 대신 '샘이 깊은 물'을 소유하고 있다.

▲ 낙천리 의자마을 전경. (사진제공 낙천리) ⓒ 신용철


현재 낙천리는 마을 주민이 208명(89가구)으로 한경면에서 금등, 조수 2리에 이어 주민수가 세 번째로 적다. 한경면 15개 마을 가운데 면적도 가장 작고 주민수도 적은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볼 마을이 아니다.

2003년 전통 테마마을 운영을 시작으로 마을 홍보 차원에서 천 개의 의자를 마을에 조성해 이제는 전국적으로 '의자마을'로 통하고 있다. 2009년 국제관현악 축제를 비롯해 로컬푸드 축제, 농림부선정 농촌문화축제 등을 개최했다. 의자마을 부지는 마을 명의로 모두 매입했다. 오 이장은 "아마도 전국에서 이런 사례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보리를 테마로 한 보리빵 만들기, 보리 수제비, 보리 피자 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남의 한 마을에서는 낙천리 보리빵을 벤치마킹해 옥수수빵을 만들기도 했다.

▲ 낙천 의자마을에 조성되어 있는 의자들. (사진제공 낙천리) ⓒ 낙천리


오 이장은 "제주에서는 잘 모르는 마을이지만 타지에서는 오히려 잘 알려진 마을"이라며 "우리 마을이 고등학교 한 미술교과서에도 소개됐다. 지난해에는 마을노래(리가)까지 만들어졌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 마을에서 또 흥미로운 점은 이주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제주에서 상대적으로 이주민들이 많지 않고, 외지인 소유 땅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는 마을이 중산간 깊숙이 위치해 있으며 면적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980년에 마을주민들이 경지정리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투리 땅을 모두 팔고 지금의 형태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기에, 외지인들이 살 땅이 거의 없단다.

오 이장은 "낙천리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땅을 팔면 나중에 그 땅을 사고 싶어도 값이 올라 절대 못 산다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거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는 낙천리. 이곳만은 제주 난개발의 붐 속에서도 이러한 전통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며 마을 탐방을 마쳤다.

천개의 의자로 구성된 의자마을
지난 2003년, 낙천리는 테마마을을 운영하며 마을 홍보 차원에서 무엇을 '킬러콘텐츠'로 키울까 고심하다 한 공공미술가의 제안을 받아들여 마을에 의자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낙천(樂泉)에서 샘 천(泉)을 일천 천(千)으로 구상, '즐거운 의자가 천개 있는 마을'로 만들고자 인터넷으로 의자 닉네임 전국공모를 실시했다. 그 결과 3000개의 의자 이름이 응모됐으며 이 가운데 1000개가 선정됐다. 1000개의 의자 이름을 공모한 1000명은 낙천리의 명예'리민'인 셈.

낙천리는 올레길 13코스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전임 김만용 이장의 유치 노력으로 의자마을이 올레길 13코스에 포함되면서 마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는 제주민은 둘째 치고 마을에서 관광객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이후 올레꾼들을 비롯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농산물 판매 등 현재 마을 경제에도 적잖이 도움을 주고 있다.

오 이장은 "지속성을 가져가기 위해 전국 의자공모를 조만간 다시 해볼 것을 구상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나무뿐만 아니라 철로 만든 의자 등 다른 의자들도 공모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원국 낙천리장 "낙천 마을지 준비하고 있어요"

▲ 오원국 낙천리장. ⓒ 신용철


지난 2013년 1월, 이장에 선임된 오원국(51) 낙천리장은 올해 다시 마을이장에 연임됐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오 이장은 마을 청년회장을 비롯해 새마을지도자, 한경면 농업경영인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대학생활 때를 제외하고는 이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50여 년을 지켰다.

농업에 대한 가치와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있던 오 이장은 1990년대 초 콩·보리밖에 수확하지 않던 마을에서 시설채소를 도입해 오이로 시작해서 현재는 파프리카, 토마토 등을 생산하고 있다.

오 이장은 그동안의 이장 활동을 묻는 질문에 "마을저류지 침수지역이 있어 지난해 도에 건의해 올해 배수개선사업으로 11억을 지원 받았다"며 "이로써 마을 침수지역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오 이장은 이번 임기 동안 '마을지'도 준비하고 있다. 오 이장은 "크지 않은 마을이지만 마을의 과거, 현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대 사람들이 자료를 참조하고 마을에 더욱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그는 "우리 마을 농산물이 신창에 있는 농협 유통센터에 보관 중인데, 농산물 마을 집하장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며 "마을 중간 지점에 한군데 모아 놓고 다양한 홍보를 통해 육지 소비자들과 직거래 판매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역일간지 <제주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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