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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몸속으로 들어오다

길섶에서 만난 행운, 쑥

등록|2015.03.26 18:46 수정|2015.03.26 18:46

▲ 아내가 된장을 푸는 것만으로 끓어내 쑥국. 이른 봄 쑥과 함께 땅을 뚫고 순을 내는 명이나물(산마늘) 몇 잎이 봄차림 상에 함께했습니다. 이미 느티나무 아래에서 10여년을 자란 명이나물은 마늘향이 짙습니다. 주로 쌈채로 먹지만 고기가 없는 저희 밥상에서 홀로 밥에 올려 먹어도 좋았습니다. ⓒ 이안수


어제(3월 26일)는 아내의 휴무일이었습니다. 서재밖 봄볕에 몸을 맡긴 대지에서 갖은 생명들이 꿈틀대는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웃집 싱이볼 연주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 길섶에 푸지게 늘린 쑥을 보았습니다. 쑥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쑥쑥 자라서 저희들끼리 쑥덕대며 봄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 볕 좋은 곳에서는 쑥이 이미 어른 가운뎃손가락만큼이나 자랐습니다. ⓒ 이안수


늦은 점심식사를 무엇으로 할까 망설였던 우리 부부는 함께 쑥국을 생각했습니다. 길섶에 주저앉아 쑥 무더기 중에서 가운뎃손가락만큼 자란 녀석들을 한 움큼씩 뜯었습니다. 자랑거리 음식솜씨 하나 갖지 않은 아내도 쑥국에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씻은 쑥을 냄비에 넣고 옹기뜸골에서 익은 된장을 큰 술로 풀었습니다. 그리고 한 일이란 한소끔 끓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참으로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습니다. 한 숟가락 쑥국을 떠서 삼키자, 향기로운 봄이 몸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니체는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고 했지요. 어제 우리 부부가 길섶에서 찾은 행운은 쑥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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