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린 아이가 있고, 부모가 있다. 물을 달라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물그릇을 내민다. 아이가 받아 들고 마시는 순간, 물이 뜨겁다는 사실을 몰랐던 아이는 놀라게 되고 이후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은 한 대목이다. 기원전부터 정해진 곳 없이 거친 광야를 헤매던 유대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신과 자신 뿐이었기에 행해진 교육이리다.
'수난과 방랑이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라는 부제를 달고 나타난 신간, <유대인의 초상>에 등장하는 각계에서 이름을 떨친 21명의 유대인들을 만나다 보면, 세계사 속 고단한 현장에는 늘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이스라엘이 걷고 있는 길이 올바르지만은 않다는 사실, 또 이들 유대인의 삶과 운명이 곧 우리 모두의 삶과 운명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유대인의 선택
"세계대전을 전후한 독일계 유대인은 넷 중의 하나 이상을 선택하기 마련이었는데, 독일-오스트리아를 위해 전쟁에 참전하기, 팔레스타인으로 이민가기,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기, 미국 또는 영국으로 망명하기였다."(p.154)
1917년 38세의 나이로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 레온 트로츠키는 이른바 '연속혁명론'을 주장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스탈린에 밀리지 않고 정권의 정점에 올라섰더라면 세계는 미국의 자본주의 일극체제로 발전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레닌이 만들어준 기회로 인민위원회 의장이 될 수도 있었던 트로츠키, 그 외에도 최고위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몇 번의 기회들을 그는 발로 차버렸다. 치사한 방법은 쓰지 않겠다며, 또 하나의 결정적인 핑계, 스스로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18년 보스턴 태생 레너드 번스타인은 진보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음악가였지만, 1950년대 불어 닥친 매카시즘의 회오리를 피하지 못했다. 언론과 FBI가 '빨갱이'로 만들고 '블랙리스트'에 올리자, 미국 영주권을 상실하고 추방된 찰리 채플린과는 달리 그는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행동을 했다.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자신의 처신에 대해 '잘 모르고 벌인 일', '젊은 시절의 치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을 뿐'등으로 변명했던 것이다.
진정한 삶은 '생각'하는 삶
"1906년 독일 태생, 해나 아렌트는 '스파르타쿠스단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의 주도자가 같은 유대인 여성이면서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임을 알았고, 이후 아렌트는 그녀를 우상으로 마음에 품었다."(p. 208)
해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설파했는데, 이는 악이란 뿔이 달린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라는 거다. 그녀는 '생각'하는 일만큼은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부르짖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하이데거식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상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해버린 <변신>, 주인공 K가 불가해한 상황에 내몰린 <성>, 어느 날 붙잡힌 K의 <심판> 등이 그렇다. 그러나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놀라고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상황에 담담히 적응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p. 305)
카프카를 이야기 하면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유대인 스스로를 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꿈의 해석>을 통해 정신분석학의 태두가 된 프로이트 또한 유대인이다.
주변인이고 방랑자였던 그래서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스스로가 의사나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가 되어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해야 했던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 또는 편부모에게서 자란 아이가 결핍을 자양분으로 어떤 면에서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로 가는 길
결국, 3천년전 신의 약속을 실현한다며 마치 부동산업자와의 계약이기라도 한 것처럼 20세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가나안 땅(이스라엘)을 차지한 유대인들에게 또 다른 유대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인류로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세상에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기원전 7세기경 활동했던 유대 예언자 예레미아는 '슬픔의 예언자'로 불린다. 그는 유다 왕국이 쇠퇴를 거듭하다가 끝내 멸망한 시기에 살았고, 자신도 재앙에 휘말려 이집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토록 오래 염원해온 국가를 세우고 나서,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부조리를 고스란히 되풀이 하고 있다."(p. 343)
이스라엘이 저지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야만적인 박해와 서유럽 출신 유대인들의 동유럽 출신자들에 대한 차별에 실망한 그가 던진 메시지다. 불과 100년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던 그들이 간과해서는 안될 충고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신과 자신 외엔 아무도 믿지 말라며 아이들에게 뜨거운 물그릇을 내밀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 <유대인의 초상>표지 ⓒ 인물과사상사
유대인의 선택
"세계대전을 전후한 독일계 유대인은 넷 중의 하나 이상을 선택하기 마련이었는데, 독일-오스트리아를 위해 전쟁에 참전하기, 팔레스타인으로 이민가기,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기, 미국 또는 영국으로 망명하기였다."(p.154)
1917년 38세의 나이로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 레온 트로츠키는 이른바 '연속혁명론'을 주장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스탈린에 밀리지 않고 정권의 정점에 올라섰더라면 세계는 미국의 자본주의 일극체제로 발전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레닌이 만들어준 기회로 인민위원회 의장이 될 수도 있었던 트로츠키, 그 외에도 최고위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몇 번의 기회들을 그는 발로 차버렸다. 치사한 방법은 쓰지 않겠다며, 또 하나의 결정적인 핑계, 스스로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18년 보스턴 태생 레너드 번스타인은 진보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음악가였지만, 1950년대 불어 닥친 매카시즘의 회오리를 피하지 못했다. 언론과 FBI가 '빨갱이'로 만들고 '블랙리스트'에 올리자, 미국 영주권을 상실하고 추방된 찰리 채플린과는 달리 그는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행동을 했다.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자신의 처신에 대해 '잘 모르고 벌인 일', '젊은 시절의 치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을 뿐'등으로 변명했던 것이다.
진정한 삶은 '생각'하는 삶
"1906년 독일 태생, 해나 아렌트는 '스파르타쿠스단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의 주도자가 같은 유대인 여성이면서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임을 알았고, 이후 아렌트는 그녀를 우상으로 마음에 품었다."(p. 208)
해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설파했는데, 이는 악이란 뿔이 달린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라는 거다. 그녀는 '생각'하는 일만큼은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부르짖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하이데거식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상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해버린 <변신>, 주인공 K가 불가해한 상황에 내몰린 <성>, 어느 날 붙잡힌 K의 <심판> 등이 그렇다. 그러나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놀라고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상황에 담담히 적응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p. 305)
카프카를 이야기 하면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유대인 스스로를 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꿈의 해석>을 통해 정신분석학의 태두가 된 프로이트 또한 유대인이다.
주변인이고 방랑자였던 그래서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스스로가 의사나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가 되어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해야 했던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 또는 편부모에게서 자란 아이가 결핍을 자양분으로 어떤 면에서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로 가는 길
결국, 3천년전 신의 약속을 실현한다며 마치 부동산업자와의 계약이기라도 한 것처럼 20세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가나안 땅(이스라엘)을 차지한 유대인들에게 또 다른 유대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인류로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세상에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기원전 7세기경 활동했던 유대 예언자 예레미아는 '슬픔의 예언자'로 불린다. 그는 유다 왕국이 쇠퇴를 거듭하다가 끝내 멸망한 시기에 살았고, 자신도 재앙에 휘말려 이집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토록 오래 염원해온 국가를 세우고 나서,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부조리를 고스란히 되풀이 하고 있다."(p. 343)
이스라엘이 저지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야만적인 박해와 서유럽 출신 유대인들의 동유럽 출신자들에 대한 차별에 실망한 그가 던진 메시지다. 불과 100년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던 그들이 간과해서는 안될 충고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신과 자신 외엔 아무도 믿지 말라며 아이들에게 뜨거운 물그릇을 내밀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유대인의 초상> 함규진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15년 2월 27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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