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수가 직접... "가곡 교실, 웃음 치료 같아요"
성악가 김세환과 소사본3동 주민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화음
▲ "소리는 이렇게 내는 거예요"소사본3동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가곡교실'에서 마을 주민과 노래로 소통하는 성악가 김세환 씨. ⓒ '마을 콕' 임민아
캄캄하게 어둠이 내린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3동 주민센터 건물 어딘가에서 '꿍꽝 꿍꽝'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주민센터 2층에 올라갔더니 대회의실 문틈으로 노랫소리가 새어나온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가곡 교실'이 매주 화요일,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고 해서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참에 나도 한 번 배워볼까 해서
지난달 27일 찾아갔다. 부천 36개 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중 '유일한' 가곡 교실이란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고집불통 옹>, <쉰 살의 남자>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관객을 사로잡던 성악가 김세환씨, 그가 마을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김세환씨는 부천 소사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부천오페라단이 선보인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제작 과정을 기록하면서다. 약장수 둘카마라를 연기하던 그는 한눈에 봐도 매력적인 가수였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입을 삐죽거리고, 특유의 유쾌한 몸짓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는 '가곡교실' ⓒ '마을 콕' 임민아
"가곡 배운 덕에 모임에서 인기 최고예요"
가곡 교실 '봄날처럼' 회장인 유의제씨(61)는 시종일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사춘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김세환씨를 바라봤다.
"나이가 들면서 동창모임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모임을 많이 나가게 돼요. 자연스럽게 노래도 한 곡 뽑아야 할 일이 생기죠. 목소리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누가 노래 시킬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그런데 가곡교실에서 노래를 배우고선 자신감이 생겼어요. 어색했던 분위기를 노래로 깨고 나가니까 친구들과 관계도 좋아지더군요. 이젠 노래가 제 삶의 활력소가 됐어요. 참 행복합니다."
유의제씨는 아내가 가곡 교실에 나가보라고 등 떠밀어준 덕분에 노래도 배우게 되고, 인기도 많아졌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제가 관리하는 카카오톡 친구가 500명 정도 되는데, 대화를 주고받을 때 가곡 가사를 응용해요. 상호 간에 격조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아요. 그리고 우리 가곡 연습할 때 찍은 사진이랑 발표회 나갔던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굉장히 부러워해요. 요즘 인기 관리를 그렇게 하죠. 하하하~"
▲ "음치라도 상관 없어요. 자신감만 있으면 돼요" ⓒ '마을 콕' 임민아
"한 시간 반 동안 웃음 치료 받는 느낌"
지난해 가을 가곡교실 회원이 되었다는 장경숙씨(47)는 중학교 3학년인 아들과 함께 노래를 배우고 싶었다. 여러 차례 설득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혼자 배우게 됐다면서 아쉬워했다.
"저는 사실 아들이 노래를 배워서 나를 위해 불러줬음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아휴~ 그런데 배우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섭섭해도 어쩌겠어요. 그럼 나라도 한 번 배워보자 하고 도전했어요.
목소리가 크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꾸준히 배웠더니 이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김세환 선생님 노래하는 모습에 반해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김순애씨(59)는 오랫동안 성가를 불러왔다고 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가곡 교실 문을 두드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강의에 마음을 뺏겼다.
"김세환 선생님 열정이 대단해요. 한 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강의하시는데, 재미있기까지 해요. 마치 웃음 치료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오랫동안 성가를 부르긴 했지만, 호흡과 발성에 있어서 잘못된 버릇이 많았어요. 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 건지 아주 쉽게 알려주셨어요. 대학에서 강의 듣는 기분으로 가곡교실을 찾아요."
▲ 소사본3동 주민자체센터 '가곡교실'매주 화,목 저녁 7시 소사본3동 주민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노래하는 주민들. ⓒ 임민아
이웃과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화음'
김세환씨는 독일에서 10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면서 현지에서 오페라 극단 단원으로 무대에 오르는 등 전문 연주자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국내에서도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크고 작은 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최근엔 유럽 현지 국립극장 오페라 가수로 활동해온 정상급 성악가들로 구성된 '펠리체싱어즈'라는 보컬 그룹에서 활동하며 방송을 타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이들 성악가들이 만든 트로트 싱글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을'로 왔다. 음악 전공자를 가르치는 것도 힘이 들 텐데, 여긴 음치도 있고, 70대 어르신도 세 분이나 계신다. 함께 유학을 다녀온 아내에게 재능 기부를 부탁하며 가곡 교실을 시작했다.
"유학 마치고 돌아와서 우연히 서울에서 가곡교실 강사 요청을 받고 몇 군데 강의를 나갔어요. 반응이 정말 좋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서울은 인적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잖아요.
내가 아니더라도 강의할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굳이 나까지 서울에서 이런 활동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어린 아이부터 연세 많은 어르신까지 숨 쉬고, 말 할 줄 알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게 문턱을 낮추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노래를 배울 때 외국인인 자신을 배려해 쉬운 단어로 가르쳐주던 선생님을 보면서 교육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음악에 관심이 있고, 자신감만 갖게 된다면 누구든지 노래를 잘할 수 있어요. 매주 이렇게 모여서 함께 노래하면서 이웃들과 함께 만드는 화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컨셉 사진 찰칵~! "어색하네요. ㅎㅎㅎ" ⓒ '마을 콕' 임민아
덧붙이는 글
'마을'과 '사람'을 주제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마을 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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