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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50만원으로 '개천의 용' 만드신다고요?

'1인시위' 경남도민이 홍준표 도지사께 드리는 글

등록|2015.04.04 09:37 수정|2015.04.04 10:22

▲ 경남도 무상급식 중단 이틀째인 2일 진주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은 '무상급식 정상화'를 바라며 자장밥을 직접 지어 아이들한테 나눠주었다. ⓒ 윤성효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요? 지금 경남의 학부모들은 잔인한 4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4월부터는 우리 아이가 눈칫밥을 먹지나 않을까, 혹은 급식비를 지원받는 친구들을 놀리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밤잠을 설칩니다.

지난해 11월 3일 경남도의 '무상급식비 지원 중단' 선언을 하실 때 저는 그것을 (지사님께서 즐겨 쓰시는 말씀인) '일과성 해프닝'이라 믿었습니다. 지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돈이 없어서 무상급식비 지원을 못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우리 아이들의 무상급식비 예산 643억 원이 고스란히 서민자녀교육지원비로 전용되었습니다. 서민자녀교육지원비 643억 원은 어디서 왔는지요?

연초 지사님께서는 경남의 시군을 돌면서 방문 인사말을 통해 '취임 후부터 매일 8억원씩 빚을 청산하기 시작해 경남도가 건전한 재정기반을 구축했다'자랑스럽게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빚을 내서 빚을 갚는 빈곤의 악순환으로 인해 선별급식으로 전환했다'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미 2년 3개월전에 무상급식을 포기하셨어야 하는게 아닌지요? 경남도 1년 예산의 0.5%도 되지 않는 급식비 예산이 경남도의 재정악화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까?

부잣집 아이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나?

지사님께서는 '부잣집 아이에게도 공짜 밥을 줘야 하나'라는 말씀을 종종 하십니다. 줘야 하지요. 소득이 높은 사람은 높은 만큼 세금을 더 내었을 것이고, 세금을 낸 사람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무상으로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혹시 지사님께서는 우리나라 부자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는지요? 흔히들 금융자산 10억 원에 좋은 집에 살면서 월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부자라고 한답니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경남의 학부모들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잣집 아이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나?'라는 지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리고 그 말을 받드는 시장, 군수, 도의원들을 보면서 이 분들은 지역구가 경남이 아니고 강남 3구인 줄 알았습니다. 경남의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별복지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때때로 무상급식을 진보좌파의 유산으로 이야기 합니다만, 이것은 사실관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이전인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무상급식 이야기가 일부 진보정당 후보들에 의해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낙선했고, 경남지역 자치단체의 장은 지사님이 속했던 당 소속 후보들이 완전히 장악했지요.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인 2008년경부터 무상급식이 시작되었으므로, 무상급식을 실시한 것이 죄라면 그 원죄는 지사님과 함께하는 당 소속 단체장들의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

▲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을 규탄하는 필자의 1인시위 ⓒ 최석봉


돈으로 용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셨다면 1년에 50만 원의 지원금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저희 집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수학 학원 한 곳만 다녀도 월 18만 원입니다. 초등학생도 한 과목에 10만 원은 우습게 낸다더군요.

한 아이 밑으로 한 해에 한 과목만 수강해도 12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로 교육비를 지출합니다. 자녀가 많아질수록 그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그런데 1년에 50만 원으로 개천의 용이 되어보라 하시다니요. 참으로 무심하십니다.    

무상급식에서 유상급식이 된다고 하니, 학부모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급식비 부담 때문에 학원수강을 줄여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급식비가 부담스러워 학원 수강을 줄이게 되면 아이들은 더 공부 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지사님의 기준대로라면 용이 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지사님은 개천에서 난 용입니까?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검사를 하다가 정치인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지사님이 말씀하시는 개천의 용입니까?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용이라면 저희 집 아이는 그런 용으로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화합하고, 주위 사람들을 위해 양보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 욕먹지 않고 올곧게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 아는 그런 사람으로 커주면 그것이 저에게는 참된 용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또 종북입니까?

예상은 했습니다. 상식과 정도를 이야기하면 종북 세력이라 손가락질 하는 일련의 상황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 빠르지 않나요?

등교거부를 단행했던 학교의 학부모들은, 등교거부행사에서 정치적 발언 자제를 수차례 당부했고, 학부모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 외에는 인터뷰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왜 학부모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할까요?

상식을 말하는 사람을 종북이라 말한다면, 저는 기꺼이 종북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종북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지난해 11월 11일부터 지금까지 1인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북이 아닙니다.

지사님께서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가진 지도자라면 이성을 갖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봐야 합니다"라고 SNS에 쓰셨습니다. 지사님께서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가진 지도자이시지요? 그렇다면 지금이 이성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일찍이 무상급식을 실시했던 지사님과 같은 당 소속이었던, 한 기초단체장은 퇴임 후 최근 "무상급식을 시작할 때 나는 진보나 보수를 보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들만 보고 시작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5월에는, 5월이 되기 전에 차별 없는 급식,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급식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을 규탄하는 필자의 1인시위 ⓒ 최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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