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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러운 안산시민이다

세월호 가족들의 삭발을 바라보며...

등록|2015.04.03 17:46 수정|2015.04.03 17:46
안산으로 이사온 지 불과 3년 6개월. 도시이지만 농촌 같고, 가까이에 대부도라는 섬까지 품고 있는 안산. 서울처럼 차가 막히지도 않고, 도시 어느 곳이든 차로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안산이 정말 좋았다. 서울 생활에만 익숙했던 아내도 "사방으로 온통 녹색이 넘쳐나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라며 "새소리에 아침잠을 깨는 안산은 참 좋다"라고 말한다. 집 주변으로 산과 공원, 운동장이 넘쳐나니 아이들도 즐거운 건 마찬가지.

특히, 4월의 안산은 더욱 아름답다. 도시 전체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벚꽃으로 물들고, 봄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라치면 세상은 온통 꽃눈으로 뒤덮인다. 동(洞) 별로 서로 '우리 동네 벚꽃이 최고'라며 의기양양 다툼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화사하고 아름답던 안산의 4월이 바뀌어가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역사상 가장 부끄럽고 치욕스러우며 남보기 부끄러운, 그만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슬픈'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육지와 아주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도 아닌 인근 바닷가에서, 방송용 헬기를 통해 침몰 현장이 생생히 중계되는 가운데 OECD 가입국이자 국민소득 3만 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선진국가 대한민국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해군이, 또 해경이 적극 나서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벌였다고는 하지만, 결국 단 한 명의 생명도 건져내지 못한, 말그대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사고 현장은 전남 진도였지만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안산 시민이었고 더구나 아직 다 피지 못한, 꽃다운 17세의 학생들이었다. 그날 이후 안산은 '슬픔의 도시'가 됐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그런 '안타까운' 도시가 돼버렸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나 또한, 안산 시민으로서 함께 슬퍼했고, 안산 시민이기 때문에 많은 위로와 격려도 받았다.

2015년 4월 1일. 어김없이 찾아온 아름답고 잔인한 계절 4월의 첫날. 노랑과 검정색을 바탕으로 제작된 유니폼에 '위 안산(We Ansan)'이라 적어놓고 '우리는 안산'임을 강조하면서 '위안'을 주고자 했던, 물에 빠진 아이를 살려내는 심정으로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 '기적을 일으키자'던 OK저축은행 배구단.

그들이 절대강자 삼성화재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해 우승컵을 안았다. 평소 야구팬으로서 배구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던 나조차, 안산을 연고지로 하는 OK저축은행의 선전을 기원했고, 결국 승리의 축포를 터트릴 때 그들과 함께 감동에 겨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인 4월 2일. 아침부터 문자메시지나 SNS를 통해 속속 들어오는 울림들은 심상치 않았고, 결국 오후1시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 어머니 아버지들의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우리들의 부끄러움만큼 쌓이고 또 쌓여갔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들은 또 다른 눈꽃이 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것은 아니라'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4월 3일. 안산을 좋아하고 안산에서의 삶을 사랑했던 나는, 아름답고 잔인한 신문 기사들을 읽으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름다움은 계속 이어지되 대신 잔인함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4월 4일 주말 토요일 아침.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위치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에 세월호 가족과 안산 시민이 모여 서울 광화문까지의 멀고 먼 여정을 떠난다. 그들이 힘겹게 옮기는 발걸음 걸음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그들이 삭발한 머리에 두른 '진상규명' '세월호 인양' '시행령 폐지'는 우리 모두가 함께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임을….

아프지만 정말 아프지만 결코 주저 않지 않고 다시 일어나, 보다 안전하고 정의롭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나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안산 시민이다.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안산지역 인터넷뉴스 데일리안산(www.dailyansan.net)에도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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