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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번쩍 뜬 4살 아이... 너븐숭이를 떠올린다

트위터에 올라온 한 아이의 사진, 제주 4·3이 겹쳐 보인 이유

등록|2015.04.06 11:41 수정|2015.04.08 10:15
"아기무덤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섰다. 그 순간 수많은 말의 파편들이 나를 묵직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념. 광기. 학살. 도살. 죽음. 비애. 절규…' 이 모든 낱말의 파편을 맞으며 그 자리에 눈을 감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말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차갑게 질척이는 땀이 온 몸에 맺혔다."

2012년 겨울 제주도 북촌리에 있는 너븐숭이 애기무덤 앞에 선 내 심정을 기록했던 글이다. 마치 바다 건너 어느 땅에서 벌어지고 있을 전쟁과 학살을 마주한 듯하다.

지난해 12월 '오스만 사을리'라는 터키 사진 기자가 취재를 목적으로 시리아의 '아트메흐' 난민촌에 들어섰다. 크고 거무튀튀한 망원렌즈를 낀 카메라로 한 아이를 무심결에 조준했다. 순간 아이는 덜컥 겁을 먹고 양 손을 머리 위로 바짝 치켜들었다. "찰칵" 사진 속에 아이는 꽉 다문 입술과 두려움이 서려있는 눈빛으로 기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양 손을 번쩍 든 아디 후데아(4세)나디아 아부샤반이라는 여성사진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 사진을 게시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 Osman Sagirli


이 사진의 모습은 시리아 내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가 커다란 사진기를 보고 총으로 착각한 나머지 항복의 몸짓을 취하는 모습이다.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최근 SNS를 타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아이의 이름은 '아디 후데아'. 4살. '하마시(시리아 중부 도시)' 폭격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살아남은 가족과 함께 난민촌에 머물고 있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21만 5000명 이상이 숨졌다. 민간인 희생자는 6만6천 명으로 집계되는데, 이중에 1만 명 이상이 어린아이로 알려졌다.

이 사진과 함께 시리아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스쳐지나간 한 편의 이미지가 있었다. '죽은 엄마 위에서 바동거리는 아기를 칼로 찌르고 치켜들어 위세를 보이던 한 서북청년단원 출신 이윤도 경찰의 모습'이다. (제주4·3사건 당시 경찰특공대로 활동했던 고치돈의 증언에서)

너븐숭이 아기무덤제주도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제주4·3기념관 옆에는 작은 아기무덤들이 즐비해 있다. ⓒ 이승훈


제주4·3사건 발발 직후부터 194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서청단원 2천 명 가량이 제주도 토벌작전에 투입됐다. 그들은 국가의 암묵적인 허락 하에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항거하는 무장대원을 비롯해 아녀자,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3만 명의 목숨이 새하얗게 사라져간 사건이었으며, 이 시기의 제주도는 핏빛 혼돈 그 자체였다. 시대가 낳은 광기의 학살이자 도살이었다. 제주에서도 시리아에서도 어린 동백꽃은 시대의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후데아를 떠올린다. 채 피우지도 못하고 낙화한 1만 명의 시리아 아기 동백꽃들을 생각한다. 누구의 아기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고 기릴 사람 또한 없어 어떤 패(牌)도 없이 묻혀 있는 저기 너븐숭이 아기들을 불러본다. 4·3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와 안타까움을 토로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대의 광기는 전염병처럼 돌고 돌아 시리아에 가 닿았다. 완전한 평화는 없다지만, 성찰 속에 평화는 존재한다. 우리는 온전히 지난 반세기를 뉘우치고 있는가. 어쩌면 후데아를 조준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들의 성찰 없는 카메라, 나의 카메라 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아기 동백꽃의 노래'가 더욱 구슬피 들려온다(올해 제주4·3추모제 식전행사 합창곡으로 '애기 동백꽃의 노래'와 '잠들지 않은 남도'가 불릴 예정이었지만 행정자치부에 의해 새로운 곡으로 교체되었다).
덧붙이는 글 시리아 난민들을 돕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기부금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난민구호활동을 하는 단체로는 '유니세프', '밀알복지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등이 있다. 기부금 전달 방법은 각 단체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후원하기'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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