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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파는 커피가게, 구경 한 번 해보실래요?

[인터뷰] '청년목수' 장민수 대표

등록|2015.04.06 17:55 수정|2015.04.06 17:55

▲ 청년목수 장민수 ⓒ 아이니드


서울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외벽에 붉은 글씨로 '아이니드(I NEED)'가 영문으로 크게 페인팅 돼 있는 건물과 마주할 수 있다. 외관으로 볼 때 야외 테이블과 의자, 아담한 꽃장식 등이 보여 커피숍인가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외부는 커피숍이 맞지만 실내로 좀더 들어가 보면 한 청년 목수가 톱밥을 날리며 가구를 만들고 있다.

흰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은 젊은 회사원들의 모습이 익숙한 서울 도심에, 30대의 톱밥이 내려 앉아 있는 작업복을 입고 허리에는 목공 장비를 차고 있는 그의 모습이 꽤나 신선하고 정직해 보였다. '아이니드' 브랜드로 가구도 만들고, 커피도 파는 청년목수 장민수를 지난 2일에 만났다.

- 어떻게 목수가 됐나요.  
"실업고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이후 수원과학대 산업디자인과를 진학했습니다. 학교 공부보다는 개인적으로 다른 공부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교수님이 추천을 해주셔서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기도 하셨는데 저는 학교에서 배우기보다는 실전이 더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역삼동 인근에서 인테리어 기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목수들을 만났습니다.

인테리어 기사로 디자인은 하는데 만들지는 않으니까 뭔가 답답했어요. 함께 작업하는 목수들은 뚝딱뚝딱 다 만들어내는데 말이죠. 너무 신기했어요. 전 화려하게 디자인을 했는데 목수는 '이건 안 된다'고 하면 '왜 안 되지' 그랬어요. '그럼 내가 만들어 봐야지'라는 오기 반 호기심 반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년 반 정도 다니던 인테리어 회사를 나와서 목수 일을 더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친한 목수 형님들은 '인테리어 기사가 더 편해. 목수는 힘들어. 왜 하려고 그래'라고 하셨죠. 근데 전 힘들어도 만드는 게 좋았고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 '아이니드'를 어떻게 창업하게 됐는지.
"목수 일을 할 때, 저는 사업을 할 생각은 없었고 목수 일을 배워서 공방을 만들어서 나만의 디자인이 담긴 가구를 만들려고 했었어요. 당시 동생은 파주에서 커피숍을 하고 있었고요. 그때 동생 커피숍에 뭐가 필요하면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전 사업의 자질이 없는데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자기 스스로 작은 장사부터 혼자 했었어요. 경영과 판매 등에 뛰어나죠. 동생이 형은 가구를 만들고 자기가 팔겠다고 같이 해보자고 해서, 난 만들기만 하면 되니까 그게 잘 맞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게 3년 전이네요. 처음에는 파주 헤이리에서 시작을 했어요."

- 성수동에는 언제 왔나요.
"헤이리에서 2년 정도 공장을 했고 매장을 홍대에도 내고 부산에도 냈는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해서 철수하게 됐어요. 다른 매장들은 정리가 되고 삼성동에 매장이 하나 있는데 동생이 거기에 상주해서 일을 많이 하고 저는 파주에 있고. 그러다 보니 둘이 서로 대화할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공장을 서울 쪽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동생이 '서울로 공장을 옮겨서 형이 가구를 만드는 모습도 사람들한테 보여주자'고 했어요. 접근성이 좋았고 성수동에 젊은이들이 가죽 공장, 식당 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모여서 뭔가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았어요. 동생도 이곳을 보고 확실히 성수동이 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2014년 12월에 공장 이전을 결정했고 올해 3월에 성수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 성수동에 위치한 '아이니드' 야외 모습 ⓒ 아이니드


- 성수동으로 오고 반응은 어때요.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 가구는 샤방샤방 하지만, 만드는 사람은 터프하거든요. 그래서 이곳에 직접 와서 보시는 분들은 원목의 샤방한 가구를 보지만, 만드는 사람은 톱밥도 묻어 있고 먼지도 좀 묻어 있고. 많은 브랜드에서 제품이 우선이고 서비스가 우선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아이니드의 정체성은 '청년 형제가 만드는 가구'예요. 아이템이나 스타일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아이니드'는 저희 형제가 직접 만들고 직접 판매를 하는 거죠."

- 가구 만드는 공장이 한 구석에 있고 야외에는 커피숍이 있어요.
"동생이 처음에 헤이리에서 카페를 해서 동생이나 저나 커피를 계속 접했고요. 근데 가구에 집중하면서 카페를 접었어요. 근데 삼성동 매장에 고객들이 가구를 보면서 커피를 찾는 분들도 꽤 되셔서 처음에는 손님 접대 정도로 커피를 서비스했는데, 나중에는 내부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서 커피도 팔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바리스타도 불러서 커피를, 다시 가구 매장에서 시작했죠. 성수동은 '아이니드 팩토리'인데 이곳을 둘러보시면서 커피를 찾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커피 기기를 들여놓고 제가 만든 의자와 테이블 등을 놓고 야외 커피숍도 열게 됐어요."

- 형제가 함께 사업을 하면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안 좋은 점은 서로 허심탄회 하게 의견을 마구 전달하니까 거의 맨날 싸운다는 거고요. 좋은 점은 싸우고 나서도 서로 뒤끝이 없다는 거죠. 전날 의견충돌로 싸워도 담날 저는 일찍 와서 가구를 만들고 동생은 판매와 홍보 등을 위해서 밖에 나가서 일을 하죠."

▲ 아이니드 가구공장 겸 카페 ⓒ 아이니드


- SNS를 보니 누리꾼들도 직접 가구를 만드는 '청년목수'의 키워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요즘에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전문적이고 자기만의 기술을 배운 청년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저희 때는 다 공무원 시험 보라고 했는데 그런 시절도 지나고 공무원도 많고 직장인들도 많고 그러다보니 '내가 사업을 해 보겠다', '내가 기술 한번 배워보겠다'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 이제 속속 많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요리하는 분들, 주얼리, 저처럼 목수 들, 작은 식당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트렌드나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정말 그 일이 재미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그 직업에 맞는 건지도 중요하고요. '이게 돈이 되겠다'고 해서 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저는 정말 가구 만드는 게 재미있어요. 노동은 엄청나게 고되고 힘들지만, 가구 만드는 게 여전히 설레고 재미납니다.

성수동에 있으면 금속 가죽 등의 계통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많은데요.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있어도 멋있어 보여요. 그 분들이 겉으로 보이기에 허름한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그 분들이 없으면 신발도 가구도 집도 지을 수가 없죠. 수십 년 같은 자리에서 자기 몫을 묵묵히 하는 장인들을 보면 너무 자랑스러워요."

- 배우 이천희씨를 비롯해서 가구를 직접 만드는 연예인들이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목공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아요.
"네, 성수동에서 가구를 만들고 있으면 지나가다가 들어오셔서 목공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꽤 되세요. 목공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을 아예 바꾸는 것에는 신중하라고 하고 싶은데, 취미 생활 정도로 소소한 용품들을 직접 만들어서 자신의 집에 두고 사용하는 건 굉장히 뿌듯한 일이라고 봐요. 내가 한 디자인이 현실로 구현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죠. 한 번쯤은 직접 디자인 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 가장 존경하는 분은.
"어머니에요. 어릴 때 어머니가 동생이랑 저를 혼자서 키우셨어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왜 없지?'라는 생각을 못 했을 정도로 불편함 없이 어머니가 잘 키워주셨어요.

지금 이렇게 어른이 돼 보니 '그게 가능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고요.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형제를 키워주셨어요. 누가 뭐래도 어머니가 우리 형제에게 최고의 영웅이에요. 아버지가 4천만 원 빚을 지시고 하시던 양복점을 남겨주셨는데, 어머니가 저희 초등학교 가기 전에 집을 사셨어요. 아이엠에프 때 양복점을 접고 이후에는 목욕탕에서 매점도 하시고 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하시기도 했어요. 일을 단 한 번도 쉬어 본적이 없으세요. 지금에서야, 이제 일을 안 하시죠. 늘 감사드려요."

▲ 아이니드 장진수, 장민수(오른쪽) 형제. ⓒ 아이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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