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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가벼워지길... 말 그대로 가벼울 수 있을까

[서평] 김훈 단편소설 <화장>에 나타난 삶의 질곡

등록|2015.04.06 17:00 수정|2015.04.06 17:28
가벼움이 삶의 목적이다. 몸과 마음을 비울 때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감각이다. 그것은 생존의 안내자다. 김 훈의 단편소설 <화장>이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게 아닐까.

작가 김훈은 46세 등단한 소설가다. 2001년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졌다. 문인들도 힘 있는 김훈의 문체를 칭찬하며 이 시대 진정한 소설가라고 외쳤다. 이 후 김훈은 2004년 단편소설 <화장>으로 제28회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한국 최고 소설가의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소설은 이달 9일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다.

소설 <화장>은 영화로 곧 개봉한다.영화 '화장' 포스터 ⓒ 명필름

<화장>은 주인공의 독백으로 전개된다. 암울하게 묘사한 부인의 투병과 병원의 풍경 그리고 그가 짝사랑하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들은 미로처럼 엮여있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주인공은 재고 처리된 마스카라와 선탠크림의 라벨과 포장을 바꿔 올 여름 다시 시장에 투입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마케팅을 위해 '여름에서 가을까지-여자의 내면여행'과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라는 두 선택 문구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내면여행'은 관념적이고 폐쇄적이며 무거웠고, '가벼워진다'는 말 그대로 가벼운 느낌이 있어 무겁고 질퍽한 여름과 어울린 듯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었다.

고된 일상 때문인지 주인공은 오래도록 전립선염을 앓았다. 시원하게 오줌을 누지 못해 가끔 병원에서 인공적으로 오줌을 빼왔다. 와중에 2년 간 뇌종양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아내가 죽는다.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주인공은 머릿속으로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한다.

아내의 부자연스러움과 추은주의 활력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삶에 대한 어떤 것은 추하게 보인다. 죽을 자의 추함은 산자들의 정신까지 저 먼 어둠 속으로 가라앉힌다. 아픈 아내는 자주 울었다. 이유는 투병으로 마음이 나약해 졌고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커서겠지만, 아이스크림과 밥 냄새조차 구리다며 토악질을 해대는 자신이 아직도 삶의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미리 저승의 냄새를 맡은 걸까. 아니면 썩어가는 육체에 고인 자신의 냄새일까. 삶에서 아내의 자리는 부자연스러웠다. 아내는 일반적인 사람의 감정과 다른 자신이 두렵기도 했다. 주인공 역시 그런 아내가 빨리 죽기를 바랐다. 아내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올 때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의료기기들은 아내처럼 차가웠다. 점점 앙상해지는 아내와 함께 주인공의 삶도 무거워져 늪으로 빨려 들었다.

주인공은 아내가 죽으면 삶이 한결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 주인공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전립선염도 더 심해졌다. 그러다 그는 문뜩 깨달았다. 아내의 영정 앞에 엎드린 딸의 모습이 아내와 비슷하다는 것을. 그것이 그토록 자신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는 걸. 아직 아내가 떠나지 않은 듯했다.

"나는 아내와 딸의 닮은 모습에 난감해 했다.……아내의 임종을 관리하던 당직 수련의가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하던 순간, 터질 듯 한 방광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던 그 무거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딸을 통해 죽은 아내가 다시 살아나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움직였다. 투병 중 헐거운 항문 때문에 배변을 가리지 못하는 추한 아내의 모습과, 항문에서 흘러나온 음식찌꺼기의 고약한 냄새. 그가 늪에 빠져 익사하려는 순간 회사 사람들이 조문을 왔다. 그 사이에 추은주가 끼어있었다.

추은주는 주인공에게 생기를 주었다. 그는 회사에 입사한 추은주를 본 후부터 심장이 뛴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호감을 가지고 매일 그녀의 모습을 꼼꼼히 보았다. 추은주의 모습에서 풍기는 단아함은 자장면을 먹는 그녀의 모습조차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가 외근 때문에 숙소에 머물 때도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아픈 아내보다 싱그러운 추은주의 모습이었다. 추은주로부터 삶의 냄새를 맡고 싶었기에 간절히 그녀를 떠올렸다. 올 여름 시장에 내놓을 울트라 마린블루 화장품 이미지를 머릿속에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녀가 필요했다. 심지어 주인공은 추은주의 품으로 달려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벗어나기 위해 굴레를 태우다

장례식 이후 화장터에서 2시간 동안 아내의 마른 몸이 화장됐다. 타고 남은 재와 뼛조각들은 희고, 가벼워 보이기까지 했다. 유골함을 납골당에 맡긴 주인공은 추은주가 회사를 사직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딸도 떠나고 혼자 남은 주인공이 오줌을 빼기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는 문뜩 아내가 돌보던 개 '보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집에서 보리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 개를 안락사 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회사에 전화해 '가벼워진다'를 올 여름 마케팅 전략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무겁게 내리 누르던 아내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끼던 그가, 아내를 화장(火葬)하고 예쁘게 화장(化粧)한 추은주를 떠올리며 가벼움을 되찾았다. 죽은 육체가 화장돼 한 줌 재로 가볍게 날아가고, 자신의 짝사랑도 한낱 봄바람처럼 머리칼을 흩날리다 사라졌다. 아내의 화장은 주인공의 마음을 비워주었고, 추은주의 화장은 그의 심리를 안정시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게 도와주었다. 두 화장이 주인공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면, 그가 비뇨기과에서 오줌을 뺀 행위는 육체를 가볍게 만들었다.

"퇴근길에 비뇨기과에 들러서 방광 속의 오줌을 뺐다.……오줌이 빠져나간 방광은 들판처럼 허허로웠다."

주인공은 소멸과 소생 사이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꼈다. 아무것도 못하고 있던 그가 무엇 때문인지 당겨 진 방아쇠를 보고, 삶의 가벼움을 위해 스스로 선택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내가 죽은 그날 애완견을 지워버린 건 무거움의 굴레를 벗어나는 최종 행위였다. 애완견 이름 '보리'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를 음사해 번역한 보리(菩提)이기도 하다.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참다운 지혜이자 깨달음이라는 불교 용어다. 소설에서 보리는 무아(無我)를 직접 통찰하고 결정한 주인공이, 어떤 괴로움도 없이 완전한 평화를 유지하는 소재로 쓰였다.

인간의 본능은 삶을 지향하고 있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침체돼가는 그녀 모습을 본 주인공은 더욱 삶에 갈망한다. 아내가 죽음을 향할수록 주인공은 가벼워지기 위해 열정을 다해 추은주를 떠올리고 병원을 다닌다. 아내가 기르던 개까지 모두 없앤 후에야, 삶의 답이 '가벼움'임을 느낀다. 소설 <화장>은 한 인간의 심리를 밑바닥 깊은 곳까지 끌어내린 후 공중으로 날리는 탁월한 기법을 보였다. 사람들의 행동과 모습 하나하나는 결국 살기 위해 가벼움을 찾는 인간의 암묵적인 행위였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무거움을 화장(火葬)시켜 날려버리거나 아니면 가벼움으로 화장(化粧)하여 자신이 사는 삶이 불안하지 않다고 위장했다.

화장은 삶을 잇는 수단이지만 목적도 된다. 영화로 제작될 <화장>이 소설의 모든 의미를 어떻게 품을지 기대된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보다 뚜렷한 삶의 목적을 영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삶은 자신도 모르는 선택 중에서 가벼움을 찾아가는 것이기에, 우연한 만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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