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 샅바... '표구사'의 기상천외한 의뢰품
충남 예산의 '전통표구사' 방성호 사장... 30여년 전통의 고집
▲ 전통표구사 ⓒ 장선애
'전통표구사' 취재를 마무리하기까지 2주일이 걸렸다. 방성호(73) 사장이 사진찍기를 한사코 거부한 까닭이다.
지난 3월 24일, 같은 지역에 살면서 꽤 오랫동안 안면이 있었지만 인터뷰는 처음이다. 방 사장은 자신의 인생과 표구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풀어놓았다. 그런데 사진을 찍자고 청하자 "그냥 얘기나 하자는 거였지, 신문에 내라는 건 아니었다. 나는 원래 앞줄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 번 해보는 거절이 아니었다. 전화로, 재방문으로 거듭 요청을 한 뒤에야 "어휴, 그럼 한 번 찍어봐유"라는 허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고도 셔터를 겨우 두어 번 눌렀을 뿐인데 "됐쥬?"하고는 끝내 버린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군가로부터 평가를 받기 위해서,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고 좋아야 한다는 방 사장의 성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만하면 됐어'는 싫어
▲ 외관으로는 전혀 전통스럽지 않은 ‘전통표구사’의 모습. 보이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 주인의 성품이 드러난다. ⓒ 장선애
'전통표구사'는 충남 예산군 예산읍 임성로 옛 대동병원 앞 현대식 상가건물 1층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역전우체국 아래 LG전자 자리에서 10년, 예산 읍내로 이전한 지 20년이 넘었으니, 벌써 30여 년 역사다.
그 사이 작업량은 크게 줄었다. 읍내로 이전 당시만 해도 밤을 새울 정도로 일거리가 많았다는데, 지금은 쉬엄쉬엄 하는 정도란다. 그도 그럴 것이 글씨나 그림이 생기면 제대로 표구해서 귀하게 걸어두던 과거와 달리 언젠가부터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된 사진이나 그림액자를 선호하는 세상이 됐다. 전국적으로 표구사들이 하나둘 사라져 명맥만 잇고 있는 이유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술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전통표구사'는 군단위에 있어도 부산이나 강원도에서까지 찾아온다. 방 사장의 솜씨를 알고 오는 이들이다.
"원래는 가업으로 제사회사 납품용 부품 세공을 했어요. 그 일 역시 세밀한 공정으로, 규격에 딱 맞춰야 했는데, 표구사를 내면서 기술자를 뒀더니 기술만 있지 정밀한 작업은 영 아닌 거야. 두 달만에 그 사람 나가고 나서는 내가 직접 했어요. 배접같은 표구기술은 어깨 너머 배웠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밀하냐인데, 내가 성격상 '그만하면 됐어'라는 걸 싫어하거든. 오히려 오래된 기술자보다 더 세심하게 했죠."
어릴 때부터 공책에 줄 하나를 쳐도 반듯하게, 지도나 인체해부도 그림은 선생님이 믿고 맡길 정도로 뛰어난 세밀작업 능력이 맞춤일을 만난 것이다.
표구일에 필요한 능력이 하나 더 있다.
지난 2일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찾은 '전통표구사'에서 만난 한학자 장영(76)옹은 "내가 여기 방 사장이랑 오래 알아왔는데, 방 사장이 공부도 하고 글에 취미가 있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안 그러면 못해"라고 귀띔했다. 단골인 장옹은 방 사장과 해독이 어려운 초서체나 팔푼체 같은 글씨들을 함께 탐구하기도 한다.
▲ 방성호 사장이 한학자 장영 선생과 의뢰받은 글을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장선애
"글씨를 많이 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다양한 서체들을 많이 본 노하우로 읽을 수 있는 글씨가 많아요. 손님들이 작품을 가져와서 무슨 글씨인지 모르겠다겠거나, 뜻을 해석해 달라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글이랑 그림을 좋아하니까 같이 읽고 얘기하는 게 재밌어요."
"뭘 해도 양심껏 해야지"
전통표구사를 거쳐간 의뢰품들에는 이응로·이종상 화백의 그림처럼 고가의 작품들도 있지만, 특이한 주문들도 많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돈 벌면서 평생 입은 거라며 몇겹을 덧댄 털실 파자마를 표구해 달라거나, 경마에서 1등 난 말발굽, 씨름 샅바, 수상 메달, 야구선수 윗도리 등 기상천외한 의뢰들이다. 정말 모두 가능했을까?
"다 돼죠. 기지(재료)마다 성격이 달라 다루기 어렵지만, 그걸 풀고 나면 안 될 게 없어요. 다만 누가 가르쳐 주거나, 책에 나와 있는 게 아니니까 재료하고 싸워서 이겨야지. 답을 못찾으면 며칠이고 재료를 마냥 쳐다보기만도 하고, 까다로운 작업은 아예 미뤄두고 머리를 비웠다가 다시 싸우기도 하면서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해요."
표구를 하든 취미인 음악(예중 1학년 때부터 예농을 졸업할 때까지 밴드부에서 활약했다는 방 사장은 기타, 올겐, 드럼 등 수준급 연주자다)을 하든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면 손을 대지 않는다.
"표구는 또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방 사장은 액자틀로 쓰는 나무도 국산만 고집하고 병풍틀도 기성제품을 쓰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색이면 비단도 잘라 사지 않고 다 사버린다. 종이와 유리, 족자 재료 하나하나 까다롭게 고른다. 표구를 하면서 얼마를 벌겠다는 생각없이 일하는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물건을 찾아가지 않아도 전화를 하지 않고 기다릴 뿐이다.
"돈 받는 취미가 없다 보니 받을 금만 부르는데 깎아달라고 하면 내살에서 묻어날 수밖에. 표구는 장사꾼 기질로는 안 돼요. 옛날에는 진사 벼슬을 하던 일인데 정직하고 정당하게 하지 않고 손님 속여 돈이나 벌자면 오래 갈 수 있겠어? 그건 표구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양심껏 해야 명이 길어."
표구는 비단 색깔, 선을 넣는 형태, 규격 같은 것들이 하는 사람마다 달라 누가 한 건지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지금껏 내가 한 거 쓰레기장에 나오는 거 못 봤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해서 됐다 싶어야 끝내니까."
그런데 방 사장의 고집과 까다로움은 아마도 일할 때만 적용되는가 보다. 특별한 용건 없이도 오가다 들르는 이들이 많아 하루에 커피를 30잔 이상 타는 날도 있다는 것을 보면. 혹시 집안 어딘가에 묵혀두고 있는 글이나 그림, 혹은 기념하고픈 물건들을 영구적으로 남기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여기 장인의 손에 맡기고, 간이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맛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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