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있는 거 CCTV 찍혀, 저리 가"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2-②] 따돌림과 대기발령 그리고 해고
여기 회사를, 조직을, 동료를 '배신한'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사람들, 바로 내부고발자다. 그들의 용기는 현실을 바로 잡았지만 해고와 전출, 따돌림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을 고발하게 만들었을까? 관심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말]
[따돌림] '혼밥', 업무 비협조... 망가진 회사 생활
▲ 내부고발 이후 CCTV에 찍힌다며 멀리한 동료들도 있었다. ⓒ 김지현
신분 공개 뒤, 정진극씨의 회사 생활은 완전히 망가졌다. 혼자서 밥을 먹어야 했고, 다른 직원들은 업무 협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 정씨는 점점 고립돼 갔다.
'이렇게 왕따가 되는 걸까. 회사에서 더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하다. 어디로 이직을 해야 하나, 아니 이직할 수는 있을까.'
정씨가 '배신자'라는 소문은 지역사업소까지 퍼졌다. 어느 날 그는 업무 협조를 하며 알고 지내던 한 지역사업소장을 회사 1층 로비에서 우연히 만났다. 삼촌같이 여기던 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사업소장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비수를 꽂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 걸지 마. 너랑 같이 있는 거 CCTV에 찍혀. 저리 가."
보상금도 문제가 됐다. "보상금 노리고 동료를 신고했다", "징계 끝났는데도 보상금 10억을 요구하고 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더는 회사를 믿을 수 없었다. 포스코 본사에 지속해서 보호 조치 미흡, 경징계 부당 등을 신고했다. 기댈 곳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밖에 없어 보였다.
정씨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고발과 관련해 누군가를 만나거나 통화하면 녹음을 했고, 메신저 대화 내용도 저장했다. 기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 장치였다. '증인이 없는 상태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기록밖에 없다'는 심정이었다.
[또 다른 신고] 1년 만에 공정위 시정 조치
포스메이트는? |
(주)포스메이트는 포스코 그룹의 한 계열사로 포스코 그룹 내의 부동산 임대 및 관리, 시설물 관리, 실내건축·기계·전기공사업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1990년 12월 퇴직 임직원들의 모임인 '포스코동우회'가 설립, (주)포우진흥으로 출발했다가 2006년 포스코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포스메이트로 상호가 바뀌었다.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포스코가 회사의 최대주주로 지분 57.2%, 포스코동우회가 31.7%, (주)포스코건설이 11.0% 보유하고 있다. 본사는 서울 대치동에 있으며 임직원은 680여 명이다. |
그것은 포스코가 동반성장 실적을 조작한다는 사실이었다. 정씨는 그동안 자기 업무를 하면서 그 건에 대해 잘못됐다,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났다. 개인비리가 아닌 포스코 전체의 일이어서 신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변호사에게 용기를 얻은 정씨는 2012년 8월, 정준양 회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포스코 전 계열사가 공정거래위원회(아래 공정위) 동반성장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기 위해 서류를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면 정준양 회장은 정씨의 동반성장 허위실적 제출 관련 공익신고의 신고처에 해당한다.
조작은 이런 식이었다. 동반성장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포스메이트가 협력업체에게 지원한 내역을 정리해서 공정위에 제출해야 했다. 지원은 예를 들어 포스메이트 노무사가 협력업체의 표준근로계약이나 사규 등을 컨설팅해주는 식이었다. 포스코 동반성장사무국은 이 같은 실적이 부족하다며 계열사 동반성장 담당자들에게 실적을 부풀리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정씨가 정 회장에게 보낸 신고는 묵살됐다. 대신 지난 2012년 9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이에 공정위는 1년 뒤인 지난 2013년 9월 포스코의 실적 조작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당시 보도자료를 내고 포스코가 2012년도에 제출한 2011년 공정거래 협약 이행 실적 자료가 허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우수 협약 기업으로서 포스코에게 부여된 인센티브인 하도급 거래 서면 실태조사 및 직권 조사 2년 면제 지위를 박탈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 기자말)
[해고] 신고 5일 만에 징계위 회부... 해고 절차 시작
▲ 정진극씨가 정준양 회장에게 포스코의 동반성장 실적 조작을 신고한 뒤 닷새 만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열흘 뒤 징계위가 열렸고, 예상대로 정씨는 해고됐다. 입사 2년 5개월, 최초 신고 7개월여 만이었다. 회사는 징계처분장에서 "계속적으로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임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는 심의 대상자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라고 명시했다. ⓒ 정진극
정준양 회장에게 회사의 내부 비리를 신고한 뒤 정씨에게 날아온 것은 '공로패'가 아니라 '해고장'이었다. 신고 접수 5일 뒤, 정씨는 자신이 징계위에 회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또한 회사는 정씨에게 대기 발령을 명령했다. 해고 조치가 시작된 것이다. 신고를 결심한 뒤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일이 진행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대기 발령에 따라 회사가 마련해준 책상은 텅 비어 있었다. 전화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다. 상사는 그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컴퓨터가 없어서 손으로 독후감을 써야 했다. 독후감의 확인자는 정씨 신고의 대상인 피신고자였다. 그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열흘 뒤에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예상대로 그는 해고됐다. 입사 2년 5개월, 최초 신고 7개월여 만이었다. 회사는 징계처분장에서 "계속적으로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임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는 심의 대상자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라고 명시했다. "본인이 요구하는 보상금을 수령하기 위한 목적 외에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고 했다. 정씨는 회사에 징계위를 다시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회사에서 나오자 갈 데가 없었다. 혼자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자꾸만 동료들의 목소리가 떠올라 괴로웠다. 겨우 잠이 들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 소스라쳐 일어났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좌절과 외로움이 컸다. '사람이 이렇게 궁지에 몰리면 자살을 하는구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신의 내부고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부고발 관련자료를 정리해 폴더에 하나씩 담았더니 7기가가 넘었다.
정씨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아래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노위는 2012년 12월, 정씨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다음은 판정요지다.
"회사의 위신 손상 등 징계 사유 중 일부만 인정되는 점, 조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근로자가 신고자임을 알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신고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적정한 주의를 다하지 못한 사용자와 회사의 잘못이 면책된다고 볼 수 없다. 그러한 잘못이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으로 비추어 볼 때 해고는 징계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부당하다."
회사는 소송 전에 돌입한다. 회사는 지노위의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급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아래 중노위)에 재심 신청을 냈다. 중노위는 2013년 4월, 회사의 재심을 기각했다. 지노위 결정과 같은 이유였다.
이어 회사는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부당해고 구제 심판을 취소해달라는 것이었다. 해를 넘긴 2014년 4월, 행정법원은 다시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는 역시나 항소했다. 2014년 11월, 역시 서울고등법원은 회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 서울지방노동위원회(아래 지노위)는 정진극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지난 2012년 12월,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 정진극
[동료의 배신] '증인 약속' 동료, 회사 측 증인으로 나타나
▲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오차장의 내부고발에 대한 동료들의 반감이 심했다. ⓒ tvN
정씨가 내부 고발을 결심한 배경 중에는 그의 윗선임인 김아무개(38) 대리가 있었다. 직장인으로서 김 대리는 회사 윗사람들에게 바른말을 하고 불만을 솔직하게 말하는 줏대 있는 사람이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상사들이 쉽게 대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능력자'였다.
김 대리와 정씨는 서로 잘 통했다. 김 대리는 정씨에게 당시 유행하던 팟캐스트를 추천해주고 정치·사회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사적인 대화에서는 형님, 동생으로 서로를 불렀다. 정씨가 내부 고발을 고민하고 있을 때도, 김 대리는 신고하라고 그를 격려해주었다. 다음은 김 대리와 정씨가 첫 내부 고발 직후에 나눈 메신저 대화(2012년 3월 2일)의 일부다.
김 대리: "(유 부장 등에 대한 징계가) 경고 이따위 나오면 씨X이다."
정씨: "징계 끝나고 바로 형사고발할 거예요."
김 대리: "건투를 빈다."
정씨: "명예훼손, 사기 등등으로."
김 대리: "내가 증인 서 줄게."
심지어 김 대리는 "잘리는 한이 있어도 너의 신고 내용이 진실임을 밝히겠다"며 자신에 대한 불이익까지 감수할 태세였다. 아래는 2012년 1월 31일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일부다.
김 대리: "네가 바르지 않다면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비겁했지만 니가 (신고를) 먼저 했다. 만약 나한테 누군가 묻는다면 네 얘기가 맞다고 말할 것이다. 잘리는 한이 있어도 너의 신고 내용이 진실임을 밝히겠다."
그러나 정씨 편에 서서 증인을 서주겠다던 김 대리는 유 부장 등의 징계 절차가 끝나자 공석인 상생혁신팀장에 앉게 됐다. '김 대리'에서 '김 팀장'으로 승진하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정씨는 김 팀장과 얘기를 나누면 그 내용이 곧 공 사장에게 전달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씨는 김 팀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되니까 가족 걱정도 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해해야지. 나름대로 나를 응원했는데, 이제는 공 사장의 끄나풀이 되는구나. 공 사장이 제일 친한 동료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피를 묻히게 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김 팀장이 회사를 위해 직접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2심인 서울고등법원 심리 과정에서 회사 측 증인으로 김 팀장이 출석했다. 정씨를 위한 증인을 서주겠다던 그의 약속은 물거품처럼 날아갔다. 증인석에 앉아 정씨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는 김 팀장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사실 어떠한 내용들이 제보됐는지 지금까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정진극씨가 술자리에서 뒷담화하는 얘기를 들은 정도입니다. 저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명쾌하게 해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아는 한에서 대신 이야기해줄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입니다."(2014년 9월 4일, 서울고등법원 증인신문조서)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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