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낀 습한 곳에서 천년을 버틴 '마애불'
[경기도 광주 하남 답사 이야기 ④] 하남의 불상과 석탑 그리고 향교
▲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 이상기
광주를 보았으니 다음 답사지는 하남이다. 하남에는 세 개의 보물이 있다. 우리는 그 세 개를 모두 볼 예정이다. 그 중 교산동에 있는 마애불을 먼저 찾았다. 이 마애불의 공식 명칭은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이다. 이 마애불은 현재 선법사라는 절에 있다. 그리고 그곳까지 버스가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하남로에서 내려 588번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선법사라는 절은 후대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관심은 절이 아니고 마애불이기 때문에 절 오른쪽 마애불로 바로 간다. 마애불 앞에는 2층으로 축대로 쌓아 가까이서 참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멀리서, 다음에는 1층 축대에 올라, 마지막에는 2층 축대에 올라 마애불을 살펴본다. 우선 돌의 재질이 화강암이 아니다. 퇴적암이나 화산암처럼 보인다.
▲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 이상기
돌이 물러서 그런지 조각이 상당히 정교한 편이다. 그 대신 자연스러운 마모가 심하기도 하다. 대부분의 문화유산이 인위적인 손상이 심한 편인데, 이 마애불은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또 높이가 93㎝ 밖에 되질 않는다. 그래서 더 정겹고 친근감이 든다.
이 마애불은 삼각형으로 된 바위의 상단을 깎아 평평하게 한 다음, 돋을새김을 했다. 앉은 자세로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 마애약사여래좌상으로 불린다. 불상이 크지는 않지만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조각 수법이 정교하고 불신의 비례도 뛰어나다. 머리에는 육계가 있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의 가사가 허리로 흘러내린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각각 3중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주위에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상대석에는 앙련(仰蓮)이 아주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중대석이 4개의 탱주 형식으로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 아래 하대석은 복련(覆蓮)으로 바닥을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용(das Stille)하면서도 고귀(das Edle)한 느낌이 든다.
명문을 통해 알게 된 고려초의 역사
▲ 마애불 명문 ⓒ 이상기
이 마애불은 조각 기법이 섬세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조성 연대를 알려주는 명문이 있어 더욱 중요하다. 불상 오른쪽에 '太平二年丁丑七月二十九日古石佛在如賜乙重修爲今上黃帝萬歲願'이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태평 2년(977, 고려 경종 2년) 7월 29일 우석불을 중수하며 우리 황제의 만세를 기원한다'고 설명해 놓았다.
문제는 세 글자다. 처음에 나오는 글자가 태평(太平)이 아니라 대평(大平)으로 봐야 한다. 대평은 <고려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고석불(古石佛)을 우석불(右石佛)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셋째 사을(賜乙)을 사이(賜以)로 보면 어떨까? 그럼 이 명문의 해석이 '대평 2년 정축 7월 29일, 오른쪽에 석불이 있었는데 우리 황제가 은혜를 내려 중수케 하니, 만세를 기원한다'로 약간 바뀔 수 있다.
▲ 춘궁동 마애약사여래좌상 ⓒ 이상기
<고려사>에 보니 경종 2년은 내치와 외치가 잘 이루어진 태평성대로 기록되어 있다. 시험을 통해 새로운 관리를 뽑고, 공신과 성주에게 훈전(勳田)을 내리고 사신을 송나라에 보내 조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세를 기원했던 경종은 겨우 6년 밖에 왕을 하지 못했다.
불상이 새겨져 있는 암벽 옆으로는 폭포가 있다. 그러나 폭포는 수량이 많은 여름에만 볼 수 있다. 올 봄은 특히나 가물어 폭포는 커녕 폭포 아래 못(潭)에도 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못 옆으로 온조왕 어용샘이 있어, 겨우 물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를 세운 온조왕이 마셨다고 해서 어용샘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이다.
오히려 옆으로 흐르는 수맥 때문에, 마애불상 주변의 바위와 축대에 이끼가 잔뜩 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마애불은 그 습한 곳에서 천년을 버텨 왔다. 이끼가 문화유산에는 치명적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평지에 세워진 별 특색이 없는 향교
▲ 광주 향교 ⓒ 이상기
교산동에는 광주향교가 있다. 교산(校山)이라는 지명도 향교가 있는 산에서 나왔다. 그런데 현재 향교는 산이 아닌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광주향교는 원래 이성산성 아래 있었으나, 숙종 29년(170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향교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의 6개 건물이 있다. 과거에는 전사청과 제기고가 있었으나 현재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광주향교도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와 4성(聖), 송나라와 우리나라 18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나 문이 걸려 들어갈 수가 없다. 명륜당은 교육공간으로 강당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벽과 기둥에는 수많은 현판이 걸려 있다. 대부분 건물 중수기(重修記)다.
향교를 감싸고 있는 다른 건물로는 내삼문, 외삼문, 수복실이 있다. 내삼문은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있고, 외삼문은 향교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수복실(守僕室)은 향교와 담을 같이 쓰고 있는 건물로 향교지기의 거처다. 수복실 대신 고직사(庫直舍)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향교를 구경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둘러 향교를 돌아보고는 다음 행선지인 춘궁동 동사지로 향한다.
춘궁동 동사지 이야기
▲ 하남 동사지 ⓒ 이상기
춘궁동 동사지는 서울 외곽 순환도로를 지나 금암산 자락에 위치한다. 이곳에 하남시의 두 번째 세 번째 보물인 5층석탑과 3층석탑이 있다. 그 석탑들이 이번 답사의 대상이지만, 동사도 어떤 절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동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동사는 1988년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었다. 발굴 결과 4동의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금동불, 기와, 도자기, 불구(佛具) 등이 발견되었다.
기와에서 '동사(桐寺)'라는 글씨를 확인해, 이 절의 이름이 동사였음이 밝혀졌다. 절터에는 현재 두개의 석탑(3층석탑, 5층석탑)이 서 있다. 후삼국시대에서 고려 전기에 이르는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의 크기와 탑의 규모로 보아, 대단한 규모의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사는 조선 전기까지 남아 있다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쌍을 이룬 석탑이지만 양식이 많이 다르다.
▲ 동사지 5층석탑 ⓒ 이상기
두 기의 석탑 중 5층석탑은 3층석탑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석탑으로 높이가 7.5m이고, 2층의 기단과 5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석탑도 몸돌 비율이 상층에 이를수록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1층의 몸돌이 2단으로 이루어진 점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날렵하고 경쾌해, 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붕돌 모서리의 날렵한 반전,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한 점 등이 통일신라 후기 석탑양식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기단부의 치석 수법, 지붕돌 아래 층급받침이 4단인 점 등으로 미루어 10세기 후반 고려초 작품으로 추정된다. 상륜부에는 노반만 남아 있는데, 복발과 앙화 그리고 보주 등이 남아있다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 같다.
▲ 동사지 3층석탑과 5층석탑 ⓒ 이상기
3층석탑 역시 높이 3.6m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얹었다. 이 석탑은 하층의 몸돌이 높은데 비해서 2층과 3층은 현저히 낮아진다. 이처럼 급격한 체감 비율은 다른 탑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나 매우 안정감이 있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창림사탑, 황복사지 3층석탑에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탑에 비해 뭔가 비례감이 떨어지고, 조각도 단순한 편이다. 그래서 조성 시기를 고려 초-중기 사이로 보고 있다. 1966년 보수 공사 때, 탑 안에서 납석(곱돌)으로 만든 작은 탑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 동사지 3층석탑 ⓒ 이상기
이들 탑을 보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커진다. 절터도 좀 살펴보아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이곳 절터에는 법당이 두 개 이상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존불 대좌의 하대석으로 생각되는 팔각형 석재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확인하지 못하고 떠난다. 절의 북쪽에는 이성산성이 있다. 그리고 이곳 절터에는 현재 다보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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