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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독일에 "나치 점령 배상금 332조 원 달라"

2차 대전 후 첫 구체적 액수 발표... 독일 "터무니없다"

등록|2015.04.08 08:54 수정|2015.04.08 09:05

▲ 그리스의 독일 나치 피해 배상금 요구를 보도하는 영국 BBC 뉴스 갈무리. ⓒ BBC


그리스가 구제 금융 채무를 상환하라고 독촉하는 독일에 전쟁 배상금으로 맞불을 놨다.

AP,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 시각) 디미트리스 마르다스 그리스 재무 장관은 독일 나치가 세계 2차 대전에서 그리스를 침략해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배상금을 2790억 유로(약 332조 원)로 집계했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독일에 전쟁 배상금 산출... 정부 차원 요구는 처음

지난 수십 년간 그리스나 시민단체, 개인 등이 독일에 전쟁 피해 보상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보상액을 산출한 것은 처음이다.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그리스를 3년간 점령하며 민간인을 학살하고 유적지를 파괴했다.

극심한 재정 위기를 겪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 이른바 '트로이카'의 구제 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최대 채권국인 독일로부터 채무 상환을 독촉받았다. 

그러나 최근 그리스 정권을 잡은 급진 좌파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독일이 구제 금융을 이유로 과도한 긴축 재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반발했고, 채무 상환을 연기하거나 탕감해 달라고 요구했다.

독일이 거부 의사를 밝히자 치프라스 총리는 전쟁 배상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총리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그리스 레지스탕스(저항군) 추모비를 찾아 참배하며 독일을 압박했다.

그리스는 독일이 유적지와 기간 시설을 파괴한 배상금과 나치가 그리스 중앙은행으로부터 무이자로 빌려 갔던 4억 7600만 라이히스마르크(독일의 옛 마르크화) 등을 이 같은 전쟁 배상금이 산출됐다고 밝혔다.

이는 채권단이 그리스에 빌려준 구제 금융 총액 2460억 유로(약 292조 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그리스는 채무를 탕감해주지 않으면 전쟁 배상금을 받아 돈을 갚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스 "자산 몰수도 검토"... 독일 "터무니없다"

독일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독일은 1960년 그리스에 전쟁 배상금 1억 1500만 마르크를 제공했으며, 1990년 서독과 동독이 통일할 때까지 그리스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전후 처리가 끝났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그리스의 요구나 배상금 액수는 솔직히 말해 어리석다"며 "전혀 관계가 없는 구제 금융과 전쟁 배상금을 연결한다면 그리스의 재정 안정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가브리엘 부총리는 전쟁 배상금을 갚지 않는다면 그리스 내 독일 자산을 몰수하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치프라스 정권의 주장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무례함"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독일 내부에서도 그리스의 요구가 타당하며,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독일은 그동안 전쟁 사죄와 피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과거사를 진정성 있게 청산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최근 경제난을 겪고 있는 유로존에서 '나홀로 성장'을 이루며 채무국을 가혹하게 압박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리스는 독일의 지난 수십 년간 이뤄놓은 도덕성을 자극해 채무 상환 협상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그리스의 전쟁 배상금 요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대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독일과 그리스의 채무 갈등이 때아닌 유럽의 과거사 논쟁으로 번지면서 국제 사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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