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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앞에서 눈물 꾹... 매일 밤 숨죽여 울었다"

[잊지 않을게④] 단원고 2-3 고 최윤민양의 언니 윤아씨의 그림일기

등록|2015.04.16 14:34 수정|2015.04.16 15:21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왔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삭발을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1년 전의 약속을 지키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잊지 않겠다는 약속,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떠나보낸 언니는 언제부턴가 말을 삼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9월, 진상규명은 요원하고 유가족을 향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던 그 때부터였습니다. 단원고 희생자 최윤민양의 언니 윤아(24)씨가 지난 7개월 동안 그린 그림은 50개가 훌쩍 넘습니다.

윤아씨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에 떠오르는 단상을 그렸습니다. 동생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릴 때는 밝은 색으로 채워진 반면, 유가족의 슬픔과 참사 이후 우리 사회를 표현한 장면은 온통 어두운 색 뿐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윤아씨의 '그림일기' 중 일부를 싣습니다. 지난 1년, 윤아씨의 눈에 비친 풍경은 이렇습니다.

"말로는 도저히 풀어낼 방법 없어... 동생 얼굴을 그렸다"

[2014년 09월 18일] 제목: 윤민이3

▲ 윤민이3 (14.09.18) ⓒ 최윤아


요즘 핸드폰으로 그림을 그리곤 한다. 우울할 때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까 거의 말도 안 하고, 혼자 쇼핑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는데 그리다 보니 마음도 안정되고, 욕심이 생겨 계속 그리고 있다.

사진을 불러와 선을 따라 그리고 스케치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사진은 지우고 색을 입히는데, 윤민이 사진을 불러와 따라 그릴 때면 윤민이의 얼굴 하나하나를 더 머릿속에, 마음 속에 새기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더 많이 머리와 마음 속에 동생을 새겨 넣어야겠다.

[2014년 10월 5일] 제목: 슬픔2

▲ 슬픔2 (14.10.05) ⓒ 최윤아


그냥 내 슬픔을 온전히 그리고 싶었다. 나도 아픈데, 아파하시는 부모님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어서 매일 밤 숨죽여 울었다. 부모님 앞에서는 꾹꾹 눈물을 참곤 하는데... 때론 그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것과 다른 아픔과 슬픔이 내게 있다.

[2014년 10월 6일] 제목: 네가 있는 곳

▲ 네가 있는 곳. (14.10.06) ⓒ 최윤아


윤민아. 그 곳에선 잘 놀고 있는 거지? 어제 꿈에 나와서 계속 미안하다고 해서 난 너무 가슴이 아팠어. 언니들한테도, 엄마·아빠한테도 미안해 하지마. 넌 그러지 않아도 돼. 넌 잘 못 한 게 없으니까. 

네가 있는 곳은 늘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고, 하얀 꽃이 펼쳐져 있는 싱그러운 곳이었으면 좋겠어. 먼 훗날 언니가 갔을 때 손을 흔들며 반겨줘. 언니는 그거면 돼. 아무 걱정 없이 떳떳하게 널 만나러 가고, 네가 반겨주는 거. 언니는 그거 하나면 돼.

[2014년 10월 7일] 제목: 눈물의 바다

▲ 눈물의 바다. (14.10.07) ⓒ 최윤아


눈에 새겨져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나와 너의 바다...

뉴스 같은 곳에서 배가 침몰해가는 사진이나 영상을 너무 쉽게 튼다. 그런 사진과 영상을 볼 때마다 처음에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어버렸다. 배가 가라앉는 그 모습은 이미 모든 가족들 눈에 새겨져 평생을 따라다니는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2014년 10월 10일] 제목: 누군가 도와주겠지

▲ 누군가 도와주겠지. (14.10.10) ⓒ 최윤아


단식 중인 유민이 아저씨(단원고 희생자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기자주)를 보며, 그리고 아저씨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며 슬픔과 답답함을 느꼈다. 다들 누군가 도와주겠지 생각하며 머뭇거릴 때 우린 점점 더 숨쉬기 힘들어지는데... 우리 숨이 넘어간 후에 우리 손을 잡으면 늦는데...

제발 부모님들을,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었으면. 도와주었으면. 제발...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 할 고통 너무 커"

[2014년 10월 14일] 제목: 유가족2

▲ 유가족2 (14.10.04) ⓒ 최윤아


부모님들이 도보행진과 농성을 했을 때 그린 그림. 유가족이란 이유만으로 안고가야 할 아픔과 고통들이 너무 아프다. 그걸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서 그림으로 그려봤다.

그림 속 입 없는 인물은 2-3반 부모님들이 입었던 반 티셔츠를 입고, 목에는 노란리본이 묶인 가시목걸이를 걸고 있다. 리본이 달린 가시목걸이는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할 죄책감과, 유가족이란 이유로 들어야 하는 모욕을 뜻한다. 그리고 그림 속 인물이 입이 없는 건, 그런 고통을 말 할 수도 없고,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침묵해야 하는 걸 뜻한다.

[2014년 10월 21일] 제목: 시간은 흐른다

▲ 시간은 흐른다. (14.10.21) ⓒ 최윤아


"시간이 흐른다."

이 말이 너무 아프다. 그만 잊으라고,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데 아직도 하느냐는 그 말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 말을 극복해보려고 배를 시계바늘 위에 올려 봤다. 2014년 4월 16일, 배가 침몰하는 시간이 왔듯이, 언젠가 진실이 바다 위로 떠오를 시간 역시 올 거라고.

[2014년 11월 4일] 제목: 우리가 가는 길

▲ 우리가 가는 길. (14.11.04) ⓒ 최윤아


도보행진 당시 유가족이 대학특례입학과 의사자 지정을 요구했다는 헛소문 때문에 여론이 더욱 안 좋았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멀고 험한 길이라는 걸 알고도 거리로 나와 걸었다.

어쩌면 그 행진이,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의 함축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질 받고, 비난 받아도 걸어야하는 길. 때로는 멀리서, 가까이서 응원해 주는 이가 있는 길. 함께 걷는 동행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동행자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는 길. 결국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

우린 아직도 도보행진 중인지도 모르겠다.

[2015년 1월 2일] 제목: 언론

▲ 언론. (15.01.02) ⓒ 최윤아


진도에 있을 때 언론과 기자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었다. 안산에 돌아왔을 땐 셔터소리에도 몸을 움찔거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들에게 저희는 피를 흘리는 원숭이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들 정도로. 피를 철철 흘리며 아파하고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원숭이. 그들이 저희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그냥 구경거리 같았다.

상처투성이로 아무 준비가 안 된 채, 벌거벗겨진 채, 기자들에게 이용당했다. 이미 피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란 건지 더 아파하라고 채찍질하며 상처를 준 기사와 오보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그리고 그건, 작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얼마나 더 피를 흘리고 아파해야 이 채찍질이 멈출까.

[2015년 1월 14일] 제목: 9(구)명

▲ 9(구)명. (15.01.14) ⓒ 최윤아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동생을 빼앗아 간 그 큰 배가 아직도 누군가에겐 감옥이고 족쇄라고. 나가고 싶은데 나갈 수 없게,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 없게. 실종자 아홉 명과 그 가족들을 옭아매는 감옥이자, 족쇄 같다고.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다.

"제발 바다 속에 있는 아홉 명을 구명해주세요."

[2015년 2월 16일] 제목: 봄날의 너

▲ 봄날의 너. (15.02.16) ⓒ 최윤아


날이 많이 풀렸어. 곧 봄이 오려나봐. 도보행진 할 때 부모님들이 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랬는데, 언니도 그래.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들으면 2-3반이 생각나고, 벚꽃을 보면 벚꽃아래에서 천진난만하게 사진을 찍은 네가 생각나.

윤민아, 언니는 이 봄날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어.
○ 편집ㅣ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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