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서적 출판, 그 19년 외길을 돌아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①-1]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노의성 편집장 인터뷰
인터파크 도서에서 과학 분야를 담당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좋은 책을 알리고, 추천할 수 있을까?" 과학 문외한으로서 고민이 많았죠. 문득, 한 달에 한 번씩 '과학 전문 출판사 담당자-책 만드는 사람을 만나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나서 뭐하냐고요? 그냥 수다 떠는 거죠. 과학책과 관련한 수다. 과학책 만드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수다 떨다 보면 '뭐라도 얻어 걸리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말이죠. 과학책을 매개로 펼치는 수다의 장, <월간 자연과학>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기자 말
- '불쑥' 찾아 뵈어도 될지 여쭸는데, 기꺼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별말씀을요.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사실 사무실 위치가 굉장히 가깝습니다. 삼성동(인터파크)에서 신사동(사이언스북스, 아래 '사북').
"아, 그런가요? 하하."
- 앞으로 자주 와야겠어요. 사북과 편집장님 소개 부탁합니다.
"사북 편집부 편집장 노의성입니다. 사북은 1997년 시작했으니 올해로 19년째네요. 민음사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김제완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의 <겨우 존재하는 것들>,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의 <유전자들의 전쟁> 등 과학책을 적극적으로 출간해왔는데, 90년대 초반 과학책이 흔치 않던 시절 과학책이 사회에서 일으키는 반향을 보면서 언젠가는 과학 논픽션이 출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고, 사북을 계열사로 창립했습니다.
사북에서 처음 낸 책은 환경호르몬 문제를 고발하는 <도둑맞은 미래>입니다. BPA라는 환경 호르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죠. 지금까지도 독자들이 찾고 있는 숨은 베스트셀러입니다. 청소년 독후감 도서로 많이 선정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 뒤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등 다양한 해외 석학의 책을 출간해왔고,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 이석영 연세대 천문학과 교수의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우주론 강의> 같은 국내 필자의 저술도 꾸준히 발굴하고 출간해왔습니다.
저는 2001년에 민음사에 입사했어요. 제 학부 전공이 화학이다 보니 '넌 사북으로 가라'고 해서 과학책 출판하게 됐죠. 우연하게 과학책 편집을 맡게 됐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책을 만들어왔네요."
- 편집장님 손을 거친 무수한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글쎄요, 기억에 남는 책을 굳이 꼽으라면, <종교전쟁>을 소개하고 싶네요. 장대익 서울대 교수님과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님, 김윤성 한신대 교수님 세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만든 책입니다. 진화생물학자와 기독교 신학자와 종교문화학 세 분이 종교와 과학의 갈등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출간됐을 때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굉장한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그 논란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대해 세 분이 입체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책입니다."
"한국 학계, 종교와 과학에 대해 제대로 논의 전개 못해"
- 사이언스북스 타이틀을 쭉 보고 왔는데, <종교전쟁>은 조금 의외네요. 어떤 점에서 <종교전쟁>이 가장 인상적인 책인가요?
"한국 학계가 종교와 과학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를 전개하지는 못했다고 봐요. 한국사회에서는 토론, 논쟁의 쟁점을 그냥 흘러버리며 논쟁을 크게 키우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발전이나 진보가 별로 없는 거죠.
<종교전쟁>은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 분 선생님과 제가 같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책입니다. 왜냐하면, 도킨스 책 판권을 김영사에서 가져갔기 때문에 "이럴 바에야 우리가 자체 기획을 하자"라고 해서 기획했거든요.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주의자'라는 단어가 있어요. 과학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 지나치게 신봉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죠. 저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는 '과학주의' 경향이 부족하다고 봐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근본적으로, 과학적으로 재검토하는 일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계속해서 사건 사고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근본으로 내려가서 과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대개 정치적인 타협으로 끝나버리거나, 학자나 전문가들의 해석이나 후일담으로 끝내버리고 말죠. 그래서 한국사회에 진전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주의적 경향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종교전쟁>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라는 주제에 대해 과학적 태도로 접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학주의를 잘 드러내는 책을 한 권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 네, 소개해주세요.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의 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과학만이 전부다'는 입장이기에 철학자나 인문사회학자들이 어마어마하게 욕을 해대는 책이죠."
- 과학주의의 극단에 서 있는 책이군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주장하는 과학주의는 한국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태도를 담고 있다고 봐요. 특별히 이 책의 번역자는 최근 이름을 날리고 계신 이종필 박사님인데, 번역자의 형태로 출판계로 끌어들인 책이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통섭>이라는 책도 기억에 남아요. 최재천 교수님께서 번역하시면서 'Consilience'라는 원서 제목을 '통섭'으로 지어 학문 간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출간 당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국내 학계에서는 '통섭'이란 것을 다소 공격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오해요?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하는 바는 사실 공격적인 것이 아닌데, 학계에서는 통섭이라는 것을 공격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연결되어 있다, 서로서로를 지탱하고,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런 것들이 언젠가는 하나로 이어져서 인간 지적 체계 전체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내용보다는 '모든 것이 생물학으로 환원된다'거나, '물리학으로 모든 것을 환원시켜 설명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통섭주의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통섭주의자들은 그런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생물학이 사회과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역으로 사회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연구 성과가 인간의 생명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학문 간의 공감대, 발전상태, 관계를 맞춰보고 비교해보고 얘기를 많이 해보자는 것인데 너무나 제국주의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의 과학 독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 그렇군요. 말씀을 듣다 보니 과학적 태도, 어떤 사안에 대해 탐구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책에 대해 술술 이야기하시는 걸 듣다 보니, 오랫동안 과학책 만드셨기에 '과학책 변천사'를 꿰고 계시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 글쎄요. 제가 과학책 변천사를 다 설명해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과학 독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80~90년대 한국에서는 영어를 아는 사람이 소수였고, 과학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상당히 소수였어요.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유학을 가야만 당시 서구세계에서 진행되는 최첨단 과학 동향을 흡수할 수 있는 시대였거든요. 과학의 유통 경로가 굉장히 제한되어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30년 이상 지나면서 과학지식 유통 체계가 바뀌었죠. 우리 회사만 봐도 저보다 제 후배들이 영어를 훨씬 잘하고 인터넷에 훨씬 능하여서 정보 습득 능력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죠. 그만큼 과학지식 유통망이 넓어진 상황입니다. 1981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한국어판이 나왔을 때나 민음사에서 1990년대 초반 민음의 과학 시리즈를 냈을 때 가지고 있던 희소성이 상대적으로 많이 사라진 것이죠. 2010년대 중반을 사는 독자들은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과학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80~1990년대에는 과학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코스모스>가 나왔다, <시간의 역사>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이 팔릴 수 있는 동력이 됐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과학책이 나오고 있어서, 오히려 읽어야 할 과학책을 어떻게 구분을 해낼 것인가를 모르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연 어떤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가, 현대 과학사의 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안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실 책 만드는 고민이 더 깊어졌어요. 장기 베스트셀러인 <코스모스>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보긴 했습니다만."
- <코스모스>. 부동의 과학분야 베스트셀러죠.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역시나 과학분야 베스트 1위가 <코스모스>였습니다.
"네, 코스모스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작년에 코스모스 리뉴얼판(다큐멘터리)이 방영되면서 영미권에서도 책이 상당히 많이 팔렸다고 해요. 어찌 됐든 유달리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기도 하죠."
- 유달리 한국에서 많이 사랑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과학에 대한 칼 세이건의 관점, 사상, 세계관 때문에 사랑받는다고 생각해요. 칼 세이건의 책은 잘 보면 끊임없이 사실과 세상에 대해 호기심 갖는 것을 고무해야 하고,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자유로워야 하며, 모든 과학연구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저는 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핵심 정신은 탐구의 자유라고 봐요.
물을 수 있는 질문의 자유죠. 연구 예산이 삭감 또는 중단되거나, 돈이 되지 않는 연구들의 진행은 어렵다는 맥락에서 한국사회는 탐구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정 과학분야에서는 굉장히 수준 높은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기초과학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탐구의 자유가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지 않은 상태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코스모스>가 사랑 받고 있죠.
과학자들은 청소년이나 제자들에게 <코스모스>를 소개하고, 청소년들은 이 책을 보면서 과학을 꿈꾸는 거에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코스모스>가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는 책에 담겨있는 정보 자체 있지 않고, 칼 세이건이라는 과학자의 태도와 사상에 있습니다. 앞으로 만들 과학책은 저자가 주장하는 가치나 사상을 잘 드러내고 강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이언스북스 편집장 노의성 인터뷰 기사 2'가 곧 이어집니다.
▲ 월간 자연과학 | 1호 | 2015년 4월 | 인터파크와 과학출판사, 그리고 독자가 만나는 공간 ⓒ 인터파크
- '불쑥' 찾아 뵈어도 될지 여쭸는데, 기꺼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별말씀을요.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사실 사무실 위치가 굉장히 가깝습니다. 삼성동(인터파크)에서 신사동(사이언스북스, 아래 '사북').
"아, 그런가요? 하하."
- 앞으로 자주 와야겠어요. 사북과 편집장님 소개 부탁합니다.
"사북 편집부 편집장 노의성입니다. 사북은 1997년 시작했으니 올해로 19년째네요. 민음사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김제완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의 <겨우 존재하는 것들>,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의 <유전자들의 전쟁> 등 과학책을 적극적으로 출간해왔는데, 90년대 초반 과학책이 흔치 않던 시절 과학책이 사회에서 일으키는 반향을 보면서 언젠가는 과학 논픽션이 출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고, 사북을 계열사로 창립했습니다.
사북에서 처음 낸 책은 환경호르몬 문제를 고발하는 <도둑맞은 미래>입니다. BPA라는 환경 호르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죠. 지금까지도 독자들이 찾고 있는 숨은 베스트셀러입니다. 청소년 독후감 도서로 많이 선정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 뒤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등 다양한 해외 석학의 책을 출간해왔고,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 이석영 연세대 천문학과 교수의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우주론 강의> 같은 국내 필자의 저술도 꾸준히 발굴하고 출간해왔습니다.
저는 2001년에 민음사에 입사했어요. 제 학부 전공이 화학이다 보니 '넌 사북으로 가라'고 해서 과학책 출판하게 됐죠. 우연하게 과학책 편집을 맡게 됐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책을 만들어왔네요."
- 편집장님 손을 거친 무수한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글쎄요, 기억에 남는 책을 굳이 꼽으라면, <종교전쟁>을 소개하고 싶네요. 장대익 서울대 교수님과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님, 김윤성 한신대 교수님 세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만든 책입니다. 진화생물학자와 기독교 신학자와 종교문화학 세 분이 종교와 과학의 갈등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출간됐을 때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굉장한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그 논란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대해 세 분이 입체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책입니다."
"한국 학계, 종교와 과학에 대해 제대로 논의 전개 못해"
▲ 종교전쟁 ⓒ 사이언스북스
"한국 학계가 종교와 과학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를 전개하지는 못했다고 봐요. 한국사회에서는 토론, 논쟁의 쟁점을 그냥 흘러버리며 논쟁을 크게 키우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발전이나 진보가 별로 없는 거죠.
<종교전쟁>은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 분 선생님과 제가 같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책입니다. 왜냐하면, 도킨스 책 판권을 김영사에서 가져갔기 때문에 "이럴 바에야 우리가 자체 기획을 하자"라고 해서 기획했거든요.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주의자'라는 단어가 있어요. 과학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 지나치게 신봉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죠. 저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는 '과학주의' 경향이 부족하다고 봐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근본적으로, 과학적으로 재검토하는 일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계속해서 사건 사고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근본으로 내려가서 과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대개 정치적인 타협으로 끝나버리거나, 학자나 전문가들의 해석이나 후일담으로 끝내버리고 말죠. 그래서 한국사회에 진전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주의적 경향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종교전쟁>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라는 주제에 대해 과학적 태도로 접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학주의를 잘 드러내는 책을 한 권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 네, 소개해주세요.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의 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과학만이 전부다'는 입장이기에 철학자나 인문사회학자들이 어마어마하게 욕을 해대는 책이죠."
▲ 최종 이론의 꿈 ⓒ 사이언스북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주장하는 과학주의는 한국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태도를 담고 있다고 봐요. 특별히 이 책의 번역자는 최근 이름을 날리고 계신 이종필 박사님인데, 번역자의 형태로 출판계로 끌어들인 책이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통섭>이라는 책도 기억에 남아요. 최재천 교수님께서 번역하시면서 'Consilience'라는 원서 제목을 '통섭'으로 지어 학문 간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출간 당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국내 학계에서는 '통섭'이란 것을 다소 공격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오해요?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하는 바는 사실 공격적인 것이 아닌데, 학계에서는 통섭이라는 것을 공격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연결되어 있다, 서로서로를 지탱하고,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런 것들이 언젠가는 하나로 이어져서 인간 지적 체계 전체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내용보다는 '모든 것이 생물학으로 환원된다'거나, '물리학으로 모든 것을 환원시켜 설명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통섭주의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통섭주의자들은 그런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생물학이 사회과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역으로 사회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연구 성과가 인간의 생명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학문 간의 공감대, 발전상태, 관계를 맞춰보고 비교해보고 얘기를 많이 해보자는 것인데 너무나 제국주의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의 과학 독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 통섭 ⓒ 사이언스북스
"하하, 글쎄요. 제가 과학책 변천사를 다 설명해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과학 독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80~90년대 한국에서는 영어를 아는 사람이 소수였고, 과학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상당히 소수였어요.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유학을 가야만 당시 서구세계에서 진행되는 최첨단 과학 동향을 흡수할 수 있는 시대였거든요. 과학의 유통 경로가 굉장히 제한되어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30년 이상 지나면서 과학지식 유통 체계가 바뀌었죠. 우리 회사만 봐도 저보다 제 후배들이 영어를 훨씬 잘하고 인터넷에 훨씬 능하여서 정보 습득 능력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죠. 그만큼 과학지식 유통망이 넓어진 상황입니다. 1981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한국어판이 나왔을 때나 민음사에서 1990년대 초반 민음의 과학 시리즈를 냈을 때 가지고 있던 희소성이 상대적으로 많이 사라진 것이죠. 2010년대 중반을 사는 독자들은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과학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80~1990년대에는 과학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코스모스>가 나왔다, <시간의 역사>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이 팔릴 수 있는 동력이 됐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과학책이 나오고 있어서, 오히려 읽어야 할 과학책을 어떻게 구분을 해낼 것인가를 모르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연 어떤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가, 현대 과학사의 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안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실 책 만드는 고민이 더 깊어졌어요. 장기 베스트셀러인 <코스모스>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보긴 했습니다만."
▲ 코스모스 ⓒ 사이언스북스
- <코스모스>. 부동의 과학분야 베스트셀러죠.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역시나 과학분야 베스트 1위가 <코스모스>였습니다.
"네, 코스모스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작년에 코스모스 리뉴얼판(다큐멘터리)이 방영되면서 영미권에서도 책이 상당히 많이 팔렸다고 해요. 어찌 됐든 유달리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기도 하죠."
▲ 칼 세이건 ⓒ 사이언스북스
- 유달리 한국에서 많이 사랑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과학에 대한 칼 세이건의 관점, 사상, 세계관 때문에 사랑받는다고 생각해요. 칼 세이건의 책은 잘 보면 끊임없이 사실과 세상에 대해 호기심 갖는 것을 고무해야 하고,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자유로워야 하며, 모든 과학연구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저는 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핵심 정신은 탐구의 자유라고 봐요.
물을 수 있는 질문의 자유죠. 연구 예산이 삭감 또는 중단되거나, 돈이 되지 않는 연구들의 진행은 어렵다는 맥락에서 한국사회는 탐구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정 과학분야에서는 굉장히 수준 높은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기초과학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탐구의 자유가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지 않은 상태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코스모스>가 사랑 받고 있죠.
과학자들은 청소년이나 제자들에게 <코스모스>를 소개하고, 청소년들은 이 책을 보면서 과학을 꿈꾸는 거에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코스모스>가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는 책에 담겨있는 정보 자체 있지 않고, 칼 세이건이라는 과학자의 태도와 사상에 있습니다. 앞으로 만들 과학책은 저자가 주장하는 가치나 사상을 잘 드러내고 강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이언스북스 편집장 노의성 인터뷰 기사 2'가 곧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김현기 시민기자는 인터파크도서 자연과학 분야 MD입니다. 이 기사는 인터파크 도서 <북피니언>에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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