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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詩로 여는 세상 50] <梨花>

등록|2015.04.13 16:51 수정|2016.03.02 11:54

▲ 배꽃 ⓒ 이상옥


       지난봄 마당에 심은
        약속

        올봄
        월백할 만큼 꽃을 피웠네
                     -이상옥의 디카시 <梨花>

죽은 듯하던 나무가 어김없이 새봄에 꽃을 피우고 잎을 돋아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나무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함께 존경심이 싹튼다.

일찍이 이양하가 수필 <나무>에서 나무의 덕을 상찬한 바 있다.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는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이 없다."

분수에 만족하는 나무

나무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니지도 않고, 자신의 분수대로 묵묵히 살아간다. 이양하의 말대로 정말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意者)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 모든 나무는 성자라고 일컬어도 좋으리라.

요즘 부쩍 나무가 좋아졌다. 지난해 포도나무 세 그루를 심었는데, 이제 막 한 그루가 새 싹을 막 틔우고 있다. 나머지 두 그루는 아직 침묵한다. 그들은 늦게 사 심어서 생육상태가 건강하지 못한 탓이다. 줄기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곧 새 싹을 틔우리라 믿는다.

▲ 담장 아래 심은 줄장미 ⓒ 이상옥


▲ 우물가에 심은 구절초 ⓒ 이상옥


▲ 마당 한 켠에 심은 초롱꽃나무가 너무 무성해져 일부를 옮겨 심었다 ⓒ 이상옥


이화에 월백하고

지난봄 마당에 배나무 묘목도 심었다. 배나무는 나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올봄 배꽃을 피웠다. 어린 묘목이 피운 꽃이라 더 경이롭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나도 언제 이조년처럼 이런 멋진 시 한 수 읊을 날이 오기를... 지난 주말에도 고성 산림조합에서 북숭아, 배 묘목을 3그루씩 사고, 줄장미도 15그루 샀다. 복숭아와 배 묘목은 집 앞의 텃밭에 심었고, 줄장미는 집 담장 아래 죽 심었다. 그리고 너무 무성해진 구절초와 초롱꽃도 일부를 우물가 등에 옮겨 심었다.

어서 빨리 담장벽을 장미넝쿨로 덮어서 장미꽃을 피우면 좋겠다. 그러면 장미축제라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에 하늘이 축복이라도 베푸시는지, 봄비가 묘목을 흥건히 적셨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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