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데려간 입맛, 우어 회덮밥으로 찾았네
봄철 우어와 들깻잎의 환상적인 조화... '일석사조'
▲ 군산시 해망동 수산시장에 나온 밴댕이(위 왼쪽), 전어(위 오른쪽), 우어(아래) ⓒ 조종안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 젓갈로 더 잘 알려진 밴댕이(지역에 따라 '반지'로 불림), 조선 시대 수라상에 올랐다는 우어(웅어, 우여). 이들의 공통점은 계절의 별미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생선이라는 것이다. 주로 서남해안 기수 지역과 연안에 어장이 형성되며 그물에 잡히면 금방 죽어버릴 정도로 성질이 급한 것도 닮았다.
전어·밴댕이·우어. 이들은 분포 지역만 조금 다를 뿐 닮은 점이 너무도 많다. 하나같이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효과적이고, 회로 먹으면 철분과 칼슘을 다량으로 섭취할 수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도 탁월하다는 것. 불포화 지방산을 많이 함유해서 성인병 예방과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밥도둑' 소리를 들으며 회덮밥의 으뜸 재료로 꼽힌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놈'. '전어가 상놈이면 웅어는 양반' 등의 속언이 내려오지만, 맛에 있어서는 차이를 두기 어렵다. 생김새도 맛도 어금버금해서 여간 미식가들도 맛만으로는 가려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어구가 발달한 요즘은 많이 달라졌는데, 옛날 군산 째보선창 사람들은 전어는 가을, 밴댕이는 겨울, 우어는 봄이 제철이라 하면서 즐겨 먹었다.
'우어 회덮밥'으로 잃어버린 입맛 찾아
▲ 고소하면서도 담백하고, 식감이 부드러운 우어 회덮밥 ⓒ 조종안
▲ 들깻잎 냄새와 어우러지면서 입안에 착착 감기는 우어 회덮밥 ⓒ 조종안
보름쯤 됐을까. 감기·몸살로 며칠을 시달렸다. 꽃샘추위란 놈이 도망가면서 밥맛까지 데려가는 바람에 고생하다가 '우어 회덮밥'으로 효과를 봤다. 처음엔 병어회가 먹고 싶어 수산시장에 갔더니 손바닥 크기 한 마리에 1만 원을 호가했다. 입이 벌어졌다. 1kg에 4만 원인 주꾸미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발길을 돌리려다 우어가 눈에 띄기에 1kg(1만 5000원)을 구매했다.
생선가게 주인아짐이 권하기에 '그래, 꿩 대신 닭이다'는 마음으로 샀지만, 제철 음식은 달랐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놓고 하루에 한 번씩 회덮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보약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어가 지닌 고소한 맛과 미각에 사로잡혀 끼니 때가 기다려질 정도로 식사시간이 즐거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동안 잃어버린 입맛도 찾고, 원기도 회복했다.
우어 회덮밥을 하루에 한 번씩만 먹은 이유는 따로 없었다. 과유불급, 즉 제아무리 맛좋은 요리도 과식하거나 자주 먹으면 그 음식만이 지닌 고상한 맛이나 독특한 식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 완성되기 전 우어 회덮밥 ⓒ 조종안
입맛을 찾기까지 들깻잎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특유의 향으로 비린내와 느끼함을 없애주는 들깻잎을 잘게 썰어 한주먹씩 넣고 비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었는데, 우어와의 음식 궁합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 하나. 당뇨, 비만 예방, 항암 효과 등이 탁월해서 '식탁위의 명약'으로 불리는 들깻잎은 날것으로 섭취해야 영양 가치가 더 높다고 한다.
봄 전어가 어때서, 밥맛만 잡아두면 됐지
항상 즐거운 식단에 도망간 입맛도 돌아오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든 비용은 우어 1kg(1만 5000원)에 깻잎 2000원을 합해 1만 7000원. 그 재료로 회덮밥을 다섯 번 만들어 먹었으니 한 끼에 3500원 정도 들었다. 식당에서 우어 회덮밥 1인분에 1만 원~1만 2000원인 점을 참고하면 생활비까지 절약되었으니 '일석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 회덮밥을 만들기 위해 썰어놓은 우어회 ⓒ 조종안
우어 회덮밥을 먹는 며칠 동안 외식을 한 번도 안 했으니 크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아내도 우어회로 식단을 다시 꾸며볼 것을 권했다. 해서 엊그제는 돌아온 밥맛을 확실하게 잡아둘 겸 해망동 수산시장을 다시 찾았다. 이날도 우어는 1kg에 1만 5000원, 밴댕이는 1kg에 1만 원, 전어는 1kg에 8000원으로 전날 날씨가 궂었음에도 1주일 전 시세와 같았다.
시세는 변동이 없었으나 제철이어서 그런지 우어가 1위를 차지했다. 금액도 그렇고 해서 메뉴를 바꿔볼까 망설이는데, 주인아짐이 2만 원에 전어 3kg을 드리겠으니 가져가라 한다. 귀가 솔깃해져 "전어는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잖아요"라고 했더니 "참, 아자씨도. 봄 전어가 어때서유, 우여든 밴댕이든 입맛만 단단히 잡아두면 됐지, 안 그려유?"라며 재차 권한다.
주인아짐의 재치 넘치는 상술이겠으나 이렇게 저렇게 따져도 이득이 되겠기에 저울이나 넉넉하게 달아서 담아달라고 했다. 아짐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처럼 환한 표정을 지으며 식품 보관용 스티로폼 상자에 전어를 재빠르게 쓸어 담는다. 다른 날보다 더욱 묵직해진 전어 상자를 들고 수산시장을 나오면서도 주인아짐의 말이 되뇌어졌다.
"봄 전어면 어때서, 입맛만 단단히 잡아두면 됐지···."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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