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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 유족, 시신을 왜 꼭 찾으려 할까

[서평] 유가족에게 필요한 건 '충분한 위로'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등록|2015.04.15 15:02 수정|2015.04.15 15:53
시간이 흘렀습니다. 곧 세월호 참사 1주기입니다. 1주기라는 말이 이렇게 마음 아팠던 적은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대형 참사 유족의 슬픔을 담은 책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를 접하게 됐습니다. 책 표지에 적힌 '대형 참사 유족의 슬픔에 대한 기록,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슬픔의 치유학'이라는 글이 와 닿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며 힘들고, 어렵게 책장을 넘겼습니다.

"현대의 대형 참사, 진실 규명 드물다"

▲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노다 마사아키 지음 / 서혜영 옮김 / 펜타그램 펴냄 / 2015.03 / 1만7000원) ⓒ 김용만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저자 노다 마사아키씨는 일본인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특히 격렬한 사회변동이나 전쟁, 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정신병리학적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두고 동시대와 역사 문제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 노력해 왔습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로 억울하게 숨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다. 잘못된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들의 민주적 연대와 유족들의 슬픔을 충분히 발현시키는 사회만이 미래 사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본서에서 나는 '사고나 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은 쇼크, 분노, 긴 슬픔과 우울 상태의 시기를 거쳐, 드디어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간 생각, 고인의 유지를 깊이 듣는 때가 온다, 그리고 고인의 유지를 사회화하기 위해 슬픔을 가슴에 안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고 서술했다.

개개 유족의 슬픔은 개별적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시민들은 유족들의 슬픔에 공감하여 그 개별적인 슬픔을 집합적인 슬픔으로 바꾸었고 그렇게 유족들과 함께 슬퍼하면서 고인 304명의 유지를 알아들으려 하고 있다. 이 움직임이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바꾸고, 동아시아를 바꿔나갈 고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얀 국화 제단을 떠났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서문입니다. 노다 마사아키씨는 이 책에서 일본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JAL기 추락 사건(520명 사망, 4명 생존)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유족들의 상태와 회사의 대응, 유족들의 심경 변화, 진실로 유족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책에는 유족들의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됩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에, 잠시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적도 여러 번입니다. 세월호라고 다를 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조심스레 이 책을 소개하게 됩니다.

"왜 대부분의 유족들이 시신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던, 바로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이 가족이 병원에서 병사한 경우나 혹은 전장에 나가 죽은 경우하고는 다르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죽음이기에 조각난 시신이라도 가능한 한 다 확인하지 않고는 그 사람을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죽음의 부정, 나아가서는 현실감 상실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신의 대부분을 되돌려 받은 유족은 죽은 가족이 납골 항아리에 무덤에 혹은 불단에 잠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비해, 시신의 아주 적은 일부밖에 돌려받지 못한 유족은 죽은 가족이 여전히 오스타카(JAL기가 추락한)의 산속에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에 의하면 유족들에게 시신은 시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단지 시신이 아닙니다. 단지 확인이 아닙니다. 정말 가슴 아프지만, 현실의 인정입니다. 재해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족의 심리는 쇼크, 부정, 분노, 우울, 재사회화라는 법칙적인 발전 경로를 걷는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과정을 건강하게 거치기 위해서 충분한 슬픔과 위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충분한 슬픔과 충분한 위로... 우리 사회에선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 충분한 슬픔과 충분한 위로 있었나

"타인은 차마 볼 수 없는 신체의 파편이라 하더라도 가족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것이다. 유족이 가족의 시신을 직접 대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받아들여 이후 서서히 현실감을 되찾아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충분히 간호를 한 가족이 죽었을 때에는 유족은 자책감에 크게 시달리는 일 없이 정신적으로 비교적 쉽게 안정된다. 하지만 가족과 돌연히 사별하게 된 경우에는 '나는 무엇을 해 줬나'하는 자책감에 빠지게 된다."

유가족은 단지 가족이 없어졌다는 슬픔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뭘 해줬나라는 자책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시신을 확인하지 못했을 경우 그 자책감과 분노, 상실감은 글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부에서 세월호 인양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약속을 제대로, 빠른 시간 내에 실천하여 더 이상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세월호의 아픔은 가족의 아픔이 아니라 사회의 아픔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충분한 공감과 충분한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이가 여전히, 죽은 사람과 유족의 시간은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시간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흔히 일을 갖고 있는 사람, 예를 들어 한창 일할 나이의 남성은 상실로부터 회복하는 것이 빠르고 중·노년 주부의 경우는 늦다고들 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슬픔도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슬픔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슬픔을 충분히 그러나 병적이지 않게 체험하고, 이미 일어나 버린 비극 너머에서 다시 다음 인생을 찾아내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저자의 말입니다. 이 책은 JAL기 추락사건, 상하이 열차 사고를 통해 회사와 정부, 사회에서 유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유가족들의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유가족을 사회에서 보살피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자세히 제시합니다. 비극적인 일에 대해 언론이 하는 잔인한 면과 상(喪)의 비즈니스를 지적하며 사회의 부족한 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힘든 책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내용이 이해가 되니 더 마음 아팠습니다.

며칠 전, 청와대로 행진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렸습니다. 경찰은 세월호 1주기 집회 때 차벽을 세울 수 있다고도 공언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는지, 위로를 충분히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2015년 4월 16일은 세월호 1주기지만, 앞으로도 세월호의 이야기는 쉽게 묻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배상금액이 아니라 충분한 공감과 위로인지도 모릅니다.

세월호는 아직 바닷속에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합니다.

○ 편집|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노다 마사아키 지음 / 서혜영 옮김 / 펜타그램 펴냄 / 2015.03 / 1만7000원)

이 기사는 김용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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