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편인 윤기진씨에게 편지로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황선 대표가 윤기진씨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을 몇 편에 걸쳐 싣는다. 이번 편지는 4월 10일 재판에서 읽은 모두진술 전문이다. [편집자말]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포럼 대표. 1월 1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 소감을 밝히고 있다. ⓒ 박소희
지난겨울 벌어진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언론의 종북몰이와 사제폭발물 테러, 압수수색, 신은미 선생님의 강제출국 그리고 이어진 저의 구속 등을 돌아보면 역사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약 70년 전 1945년 12월 있었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오보사건입니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갓 마무리된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해 '소련이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미국은 조선의 즉시독립을 주장'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5년 신탁통치 후 5년 더 연장하는 안을 주장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모스크바 3상회의가 마무리 될 때까지 길게는 40년 신탁통치 안까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과 상관없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오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점령주둔을 시작한 미군정도 이 오보를 방치·조장했습니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오보로 인해 우리 민족은 좌우합작, 대단결, 자주독립공화국 건설의 꿈을 유실하게 되었고 불필요한 이념대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허위사실을 두고 찬탁-반탁 논쟁에 빠져 그 아까운 시간 분단고착화를 되돌리지 못한 것입니다.
2014년 11월 21일, 그 이틀 전에 있었던 신은미 선생님과 저의 토크쇼를 두고 <조선일보>의 종편인 TV조선과 <동아일보>의 종편인 채널A가 그 자리에서 나오지도 않았던 '지상낙원'이니 '3대세습 찬양'이란 어휘까지 만들어가며 매시간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언론의 허위보도를 그대로 믿은 10대 청소년은 성당에서 진행 중이던 평화로운 토크쇼 자리에 사제폭발물을 가져와 '지상낙원이라 하고 다닌다'며 폭발물을 투척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두 분의 참석자가 화상을 입는 사고까지 벌어졌습니다.
민주국가 법치국가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제폭발물 테러까지 벌어졌음에도 소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테러 피해자인 저는 그 직후 아직 성당 근처 모처에 피신한 채 떠나지도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과 할머니밖에 없는 서울의 집이 압수수색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두 딸의 어머니인 저는 초등학생 어린 두 딸의 새 학년 등교는 챙기지도 못하고 이렇게 구속되어 있습니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거대언론의 허위왜곡과장보도가 저나 테러범의 경우처럼 개인의 삶과 일가족의 일상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꼬일 대로 꼬인 민족의 운명을 더 늪 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1945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오늘 그와 꼭 닮은 몇몇 언론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보수단체의 고발로 이어진 현대판 마녀사냥의 전리품을 위해 공안당국은 10년 전에 파기 환송심까지 끝내고 사면복권까지 된 사건의 수사자료까지 언론에 악의적으로 유포해가며 저의 구속을 만들었습니다.
토크쇼만으로 표현의 자유 논란도 있고, 문제가 됐던 발언들이 허위사실이었다는 것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지자 토크쇼가 아니더라도 구속사유는 충분하다며, 지난 십수 년간 저의 삶을 관리한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창고대방출' 했습니다. 지은 지 10년 넘는 시도, 6년에 걸쳐 수백 회 진행한 방송도, 1년에 한두 차례 참석했던 행사도 당시에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들을 오늘 모두 불법이라 합니다. 전형적인 '청부수사'요, 고무줄 잣대에 의한 '창고대방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도적인 오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모종의 배후와 기획한 여론몰이 즉, 언론플레이. 이런 '언론플레이'와 '청부수사'야말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잘 알면서 행한 '여론공작'이자 민주주의 파괴 '중대범죄'입니다.
70년 전 최악의 오보사건... 변함없는 <조선>과 <동아>
공소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혐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 공소장은 으레 실제보다 과장되고 공포스럽기 일쑤지만 이번 공소장은 유독 발췌, 편집의 기술이 돋보이는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장 내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을 제대로 살피고 발췌, 편집의 의도까지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이 사건과의 관계 유무조차 판단할 수 없도록 만든 기획문서입니다.
특히, 이적동조의 경우 상당 부분을 제가 작성하지도, 읽지도, 본 적도, 소지한 적조차 없는 문서 내용으로 채움으로써 언뜻 공소장만을 두고 보면 이적동조가 아니라 반국가단체 구성이라도 한 듯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2000년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정상 간 합의문이 발표되었고, 합의 내용에 근거한 다양한 활동과 연대사업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서 지속된 대북적대정책과 교류사업의 단절로 그런 활동이 매우 낯선 주장과 풍경처럼 된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현 정권의 눈높이로 보면 두 차례 정상회담도 2000년, 2007년 발표된 남북정상 합의문 역시 이적동조나 이적표현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시비나, NLL 포기 발언 시비 등이 계속해서 기획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북관계 발전상 극히 자연스러웠던 일들이, 이 분야만큼은 상당히 퇴보한 정권의 눈높이에서 보면 하루아침에 범법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정권의 수준이 달라질 때마다 사법부의 법해석이나 법적용도 현격히 달라진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고 행동의 준거를 삼겠습니까. 국가보안법의 무한한 남용을 가능하게 하는 '이적동조죄'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검사는 2002∼2008년에 걸쳐 제가 쓴 시를 이적표현물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쓴 시들이 시를 쓸 무렵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을 반영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은 참여시인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시들이 쓰이는 사회라야 민주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한 번도 저의 싯구가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작가가 '용비어천가'만 쓰고 부르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시와 관련해서 공소장에 인용한 부분마다 상당한 오역이 있습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문제 삼은 시마다 시의 배경과 비유에 대해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진행한 방송 또한 방송의도와 해당 방송시기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미관계에서 핵심이슈와 전문가 의견 등을 재판과정에서 분석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답보상태의 6자회담,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전전협정, 북미 간 비핵화 공방, 서해문제와 10·4 선언, 방위비분담금 전용문제 등,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에도 기존의 방송이나 우리사회가 애써 외면해 온 문제들에 대해 내실 있게, 특히 사실에 근거하여 다뤄왔다고 자부합니다.
▲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 도중 한 고등학생이 저지른 사제폭탄테러로 화상을 입은 콘서트 진행팀 곽성준씨가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남편의 옥중서신 공개한 게 죄라면, 그걸 검열한 법무부는...
다음으로 10년간 수배생활 끝에 투옥된 남편의 옥중서신을 타이핑하고 인터넷에 게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남편은 대학생 시절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자연적으로 국가보안법 수배자가 되어 10년 수배생활 끝에 투옥되었습니다.
남편은 옥중에서 나름 한반도 문제를 '북미 간 공방'을 중심으로 정리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 글을 타이핑해 몇몇 네티즌이 남편 윤기진 석방을 기원하며 만들었다고 알려온 인터넷 카페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 등에 게재했습니다. 검찰은 이것 역시 이적표현물 제작배포라 하였습니다.
제가 남편의 옥중서신을 불태웠어야 했을까요? 그러나 저는 제 남편이 살인죄를 짓고 징역을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옥중기록을 남기려 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15년 세월을 정치수배와 정치범으로 살아야 했던 남편의 글을 수배바라지와 옥바라지로 견딘 아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게다가 당시 남편의 옥중서신은 법무부의 철저한 검열을 거쳐 전해졌습니다. 일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불허된 서신도 있었기에 그토록 철저한 검열을 통과한 서신을 이유로 수년 후 부부를 공범으로 몰아 법정에 세울 거라곤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기록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시대와 가치의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사도바울의 옥중기록을 성서에 남기고 신채호의 역사서를, 윤동주 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시를 오늘 서가에서 찾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왔습니다.
남편의 글은 검찰의 공소장처럼 의도적으로 발췌, 편집해서 읽거나 색안경을 낀 채 읽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이 오랜 세월 그토록 보잘 것 없는 북한이란 나라와 인류 초강대국 미국이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서 "북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를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낯선 관점이라 해서 그것이 가치 없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더군다나 낯설다는 이유로 아내인 제가 남편의 글에 공안기관의 잣대를 댈 수는 더더욱 없는 일입니다.
통일하자는 말, 북의 지령을 받아야 할 수 있는 말인가요
재판장님, 저는 종북이 아닙니다. 특이한 개인사와 모종의 언론플레이로 인해 그런 오해를 받긴 하지만, 민족의 미래를 생각할 때 친북연북의 필요성에 대해 보통사람들보다 많이 절감하는 편일 뿐, 종북은 아닙니다.
저는 17년 전 1998년에 대학생 대표로 방북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으로 저의 인생과 이미지가 상당히 고착화되긴 했으나 그때 저는 대단한 지령을 수수하거나 엄청난 야심이 있어 방북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학생운동단체는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학생대표자들은 단과대 학생회장들까지도 모두 국가보안법 수배자가 되어야 했던 시절, 저는 오히려 운동경험도 없고 학생회 활동도 별로였던 사람이라 다섯 개 국이나 거쳐서 방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 1980년대 임수경 선배로부터 해마다 이어온 전 세계를 향한 분단거부 퍼포먼스인 휴전선 통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천진난만하던 마음에도 민족분단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민족사의 과제였습니다. 김구, 장준하, 문익환 등 전통적으로 반공보수주의자였던 분들이 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깊이 고민하다보니 결국 다다른 곳이 친북연북, 평화통일의 길이었습니다.
남북의 교류협력과 평화적 통일은 진보나 보수, 한 진영만의 의제가 아닌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작은 땅덩어리, 빈약한 자원의 이 한반도가, 전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경제위기,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인류에 제시할 수 있는 길은 '통일'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의 방식은 남북정상이 합의하신 대로 남측의 국가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의 공통점을 살리는 방법 말고는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이런 결론은 엄청난 지령을 받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20년 전 갑오년 농민들이 누군가의 지령 없이도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소원을 품었고, 해방기 무지렁이 식민백성이었던 우리 동포들이 자연스럽게 "단독선거를 반대"했듯 민족사에 지극한 관심을 갖고 역사적 개인의 책무를 자각한 누구나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분단현실 말한 재미동포에게 돌아온 것은 모진 '마녀사냥'
지난겨울 통일토크쇼에 출연하면서 심한 수모를 겪으신 재미교포 신은미 선생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나 죄송합니다.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사시던 분이 처음 민족분단의 현실을 접하고 남북의 이질감 극복에 자신의 경험과 감상이라도 더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찾은 모국에서 당한 것은 모진 마녀사냥이었습니다.
우리사회가 해외동포의 맥주 맛 품평도 시비하고 북의 강물이 맑더라는 감상이나 이미 해내외언론에서 기사화한 북의 휴대폰 사용자가 250만 명을 넘었다는 이야기에 이 호들갑을 떨 정도의 수준인가, 놀랐습니다.
서민증세와 복지축소에 대해 밥상머리에서 혹은 강당에서 혹은 언론에서 토론하고 비평할 수 있는 것처럼, 남북관계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동포 아니라 누구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은미 선생님이나 제가 토크쇼에서 했던 정도의 여행담을 불법이라 한다면, 사실상 통일문제는 정부 당국자가 필요할 때 광고카피처럼 '통일대박'이라거나 '드레스덴 선언' 하는 식으로 선포하는 것 말고는 '누구도 입도 뻥긋해서는 안 된다'는 엄포나 다름없습니다.
논의는 열어 놓되, 강요하지 않고, 견해가 다르다 하여 남에게 물리적 물질적 법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은 자유의 기본입니다. 누군가의 필요,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빨갱이, 친북, 주사파, 종북… 이런 자극적인 말들은 그간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고 오늘도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부에서 '돈으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 사건'이라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그간 돈으로만 갑질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너무나 많은 생명을 짓밟고 인간의 존엄을 훼손해 왔습니다. 각각의 사람을 나름의 판단력과 주체성을 지닌 인격체로 보지 않고 종속된 존재로 보며 누군가의 지령 없이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그것으로 사회적 유기인 '왕따'를 조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갑의 횡포는 없습니다.
모쪼록 이번 재판을 통해 남북 간 평화의 전령사가 되고자 했던 신은미 선생님을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조만간 그분들을 모국에서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본 재판이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이어지는 민족사가 던지는 지사적 질문에 답을 구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재판의 전 과정이 희망의 기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 4. 10. 황선
○ 편집ㅣ최규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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