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 보는 자체가 선문답인 '도솔암'
[선문답 여행] '이뭣고' 가 '○'을 대신한 여수 진례산 도솔암
▲ "중생이 곧 부처"랍니다. 그러니 자기가 서서 보는 곳이 도솔천 아니겠어요? ⓒ 임현철
'심즉시불(心卽是佛)'.
"중생 마음이 곧 부처"라는 거죠. 하지만 인간이 어디 부처님 같던가요. 마음은 하루에도 수 천 번 바뀝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 없지요. 그러니까, 사람이니까. 그래, 끊임없는 수행을 강조하는 게지요.
지난 12일, 진달래꽃 군락지로 유명한 여수 진례산을 올랐습니다. 목적지는 산 정상보다 도솔암이었지요. 진례산(해발 510m) 정상 턱 밑에 자리한 도솔암은 도솔천(兜率天)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아울러 지눌 보조국사께서 창건한 흥국사 산내암자입니다.
"스님, 공양 좀 주시지요"... "오르시지요!"
▲ 도솔암에 오르는 안내 표지석에 쓰인 '이 뭣 고' 글귀가 심상찮습니다. ⓒ 임현철
▲ 여수 진례산 턱 밑에 자리한 도솔암 ⓒ 임현철
"이 뭣 고"
봉우재에 있는 도솔암 표시석 글귀가 심상찮습니다. 표지석에 덩그러니 '도솔암'만 새긴 것보다 의미가 더 깊었습니다. '이 뭣 고' 뭔가 꼭 생각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여간 뭐라는 건지, 알쏭달쏭하지만 글귀 자체가 좋은 화두였습니다.
봉우재에서 숨 고르는 사이, 짐 실은 도르래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덩달아 비구니 스님까지 내려오는 중입니다. 스님과 차 한 잔 마시며 나눌 선문답을 기대했는데,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도솔암에 오른 지가 근 10년이 넘은 거 같습니다. 당시, 염치불구하고 스님께, 중생에게 보시하길 청했었지요.
"스님, 공양 좀 주시지요."
두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스님께서 웃으시며 "방으로 오르시지요!"하셨으니까. 뚝딱 낸 공양은 있는 듯 없는 듯 희멀건 '양념', 한 듯 만듯한 '간' 등 당시로선 아주 생소한 요리였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주신 음식은 아주 꿀맛이었지요. 마치 도솔천에서 먹는 것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기까지 했으니.
▲ 봉우재에서 마주한 비구니 스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 임현철
이번에 암자 밖에서 만난 스님께,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앉아서 편안히, 여유롭게 말 섞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게다가 스님께선 차에 짐 싣고 떠나기에 바빴습니다. 스님의 발걸음에서 먼 길 가는 마음을 읽었지요. 하여, 진달래꽃 앞에 선 스님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또한 '이 뭣 고'가 '○'을 대신했기에.
도솔암에서 본 첫 풍경, 최고의 안구정화
'백팔번뇌'의 계단을 오르던 중이었지요. 아이를 앞세운 가족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해맑은 개구쟁이 동자승을 앞세운 듯했습니다. 넌지시 "산에 오르다니, 대단한데!"라고 칭찬을 넣었습니다. 어른들이 더 반기더군요. 이럴 때 중생은 모두가 다 부처지요.
도솔암 입구가 바뀐 듯합니다. 돌과 대나무 등으로 오르는 '사이 길'을 꾸며 운치를 더했더군요. 아쉬운 점도 있었답니다. 극락전 등 가람에 들어서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비 등을 막을 요량인지 온통 막아 놨더군요. 절집은 바람이 쉼 없이 드나들어야 하건만…. 그렇지만 절집에서 본 풍경은 이런 아쉬움마저 날렸습니다. 최고의 안구 정화(眼球 淨化)였지요. 이 감흥, 보우 스님의 시로 대신하지요.
▲ 여수 진례산 도솔암에서 본 풍경에 안구정화가 저절로 되었습니다. ⓒ 임현철
눈앞에는 법도 없고 사람도 없어
아침저녁 부질없이 푸른 산을 마주하며
우뚝 앉아 일없어 이 노래 부르니
서래음(西來音) 그 소리 더욱 분명하리라
- <생활 속의 참선> (석금산 편저, 선우산방)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은 시대까지 대변하고 있었지요. 조선시대, 국가적 위기였던 임진왜란 때 '의승수군'으로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흥국사' 가람이 그림처럼 단정히 똬리 틀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산업화시대에 국가 부흥을 앞세웠던 여수국가산업단지가 펼쳐져 있었지요. 묘한, 시대 대비였습니다.
무심코 산 정상 뒤로 보이는 바다와 오동도가 지상낙원
▲ 산봉오리 몇 개를 넘어야 보이는 바다와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사람 코가 솟은 듯한 곳이 오동도랍니다. 저기가 용화세상이네요. ⓒ 임현철
"저기 산봉우리 끝에 있는 바다 보이죠? 저게 여수 신항이고요, 중간 오른쪽으로 뒤 끝에 얼굴 모양으로 불룩한 곳이 바로 오동도랍니다. 아시겠어요?"
도솔암에 머무시는 처사님의 풍경 감상 훈수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심코 앞에 펼쳐진 산 정상 뒤로 보이는 바다가 감로수와 지상낙원이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여수 신항과 오동도였다니…. 오동도가 국민 관광지가 된 게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려!
"해돋이와 해넘이, 여수산단 야경까지 보면 입 다물지 못합니다!"
도솔암에선 애써 참선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도(道) 통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솔암을 기도도량, 정진도량으로 부르나 봅니다. 또 아쉬운 게 있었지요. 날씨 덕에, 시간까지 절묘하게 맞춘 때에, 그 멋지다는 해넘이를 못 봤으니, 덕이 아직 많이 부족하나 봅니다.
▲ 여수 진례산 도솔암에서 본 의승수군의 얼이 깃든 '흥국사'. 해넘이는 못봤으나 이걸로 만족했지요. ⓒ 임현철
"비구니 스님께선 어디 가시는 길이었습니까?"
"보셨군요. 태국 가시는 길입니다. 월 말에나 돌아올 예정입니다."
"처사님, 물 한 잔 주십시오."
"물 대신 고로쇠 한잔 드리리다."
처사님께선 고로쇠를 건네면서 "사월 초파일, 도솔암에 놀러 오라!"시대요. 친절하게 "석가탄신일은 5월 25일 월요일"인 것도 알려주시더군요. 암튼, 도솔암 풍경은 이미 부처였습니다. 굳이 스님과 선문답 나누지 않아도, 아름다운 세상 풍경을 보는 자체가 선문답이었고, 용화세상이자, 극락세계였습니다. 이로 인해 욕계에서 제일간다는, 세간에서 최고 경지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세제일법(世第一法)'.
▲ 천하를 발 아래에 둔 '도솔암' ⓒ 임현철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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