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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 안성 시민 추모제 열려

"너희도 많이 아팠구나"... 불교·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의 위로

등록|2015.04.17 16:59 수정|2015.04.17 16:59

오열울음을 터뜨린 여중생들과 위로하는 주부들 ⓒ 송상호


경기도 안성 시민도 4월 16일을 그냥 보낼 순 없었나 보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는 안성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종교인, 농민 등이 '세월호 1주기 안성시민추모제'를 열었다.

눈물 터진 아이들, 어른들이 꼭 껴안아줘

열창단상에 오른 초중고생이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열창하고 있다. ⓒ 송상호


이 추모제의 목적은 안성에 있는 3대 종교(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을 초청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족뿐만 아니라 세월호로 상처 받은 많은 시민을 위로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지난 16일, 안성 내혜홀광장에는 오후 4시부터 분향소가 차려져 운영됐다. 시민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이 분향을 많이 했다. 청소년들은 유족을 생각하며 노란 종이배를 접고, 노란 리본을 줄에 매달았다.

그러던 중 노란 종이배를 접던 여중생 두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보다 못한 주부 두 명이 그들을 안으며 한참을 울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속으로, 겉으로 눈물을 삼켰다.

이날 추모제를 준비하던 한 주부는 "쟤들이 철없어 보여도 (세월호 때문에) 참 많이 아팠구나"라고 말했다. 그랬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어른들만 미안하고 아픈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세월호 참사 대부분 당사자의 또래였기에, 그들이 더 아팠던 것이다.

아이와 추모단상내혜홀 광장에 놀러온 한 꼬마가 차려진 분향소를 한참 보고 있다.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 송상호


지강스님천년사찰 칠장사 주지 지강스님의 설법은 고인, 유가족과 시민들 모두가 위로받기에 충분했다. ⓒ 송상호


3대 종교인들, 시민 위로해

시민과 약속한 오후 7시가 되자 추모제가 시작됐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는 시간에 사회자가 "미안하다" 5창을 제안했고, 분향소 밑에서부터 엄숙한 목소리들이 분향소로 전달됐다.

불교 쪽에선 칠장사 주지 지강스님이 나와 고인과 시민을 위로했다. 지강 스님은 "미안하다는 말은 오늘까지만 하고, 우리가 힘을 내 좀 더 세상을 사랑하자"고 제안했고, 일부 시민은 그 말에 합장을 했다.

천주교의 위로대천동성당 최병용 신부, 미리내성지 류덕현 신부, 공도성당 이석재 신부 등 세 사람의 추모예식은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 송상호


▲ 백성교회 정영선목사와 신도들이 단상에 올라와 고인들과 시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 송상호


정영선 백성교회 목사와 신도 몇 사람이 단상에 올랐다. 그들의 고운 목소리로 위로의 노래를 불렀다. 정영선 목사의 위로를 담은 설교에 이어 기도 시간엔 종교를 초월해 시민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이석재 공도성당 신부, 류덕현 미리내성지 신부, 최병용 대천동성당 신부 등 세 사람이 예복을 입고 단상에 오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시민에게 큰 힘이 됐다. 기도문을 사람들이 따라 하기도 했다. 그 자리엔 개개의 종교 대신 위로와 감사로 하나가 돼 있었다.

여고생의 발언에 희망을 주워 담고

시민발언시민발언에 나선 최새연양과 창조고 친구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숙연했다. ⓒ 송상호


시민 발언 시간의 첫 주자는 안성 창조고등학교 2학년 최새연 양과 친구들이었다. 촛불을 들고 단상에 오르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 모두의 친구들이 잠든 세월호 참사 후 사회가 변화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줄 알았습니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함께 기억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최새연 양의 차분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자, 시민은 미안한 마음을 넘어 희망을 주워 담았다. '그래 저 아이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구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추모제라 거의 박수를 치지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박수 소리가 한참을 이어 나갔다.

시민 발언에 나선 주부 이상희씨는 "나도 자녀를 둔 입장에서 이 자리에 올라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참담한 심정으로 말을 풀어나갔다. 이상희씨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끝까지 함께 하자"며 굳건한 결의까지 다지기도 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분향소에 올라와 추모하는 청소년들. ⓒ 송상호


추모 공연으로 중년 남성(시민 이인동씨와 이우영씨) 두 명이 단상에 올랐다. 그들도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만 한 자녀를 두었다고 햇다. 그들의 노래는 이 시대의 아버지로서 더 묵직해 보였다. <마음을 다해 부르면>과 <천 개의 바람의 되어>를 곡명 그대로 마음을 다해 불렀고, 천개의 바람이 되어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날 추모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 순간이었다. 애초 종교인들이 단상에 올라와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합창하기로 했지만, 그 자리엔 이날 참석한 청소년 모두가 올랐다. 내혜홀광장 무대를 가득 메운 청소년과 단상 아래 시민이 함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열창했다.

열창을 마치고, 어른들과 청소년들은 서로 끌어안고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주고받았다. 몇몇 청소년이 이번에도 또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상처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감사의 눈물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른들이 자신들을 위로해줬다는 고마움의 눈물 말이다.

공도 부영아파트에 사는 주부 J씨는 이날 추모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까칠한 딸과 무뚝뚝한 아들을 꼭 껴안아줬다"고 했다. 이 시대에 종교가 해야 할 일, 치유와 위로를 한 덕분에 많은 사람이 위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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