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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보건교사의 등장, 이리 반가울 줄이야

학교보건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자, 현장이 살아나고 있다

등록|2015.04.23 11:00 수정|2015.04.23 17:10
언젠가 유치원 교사인 친구가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면서 들려 준 이야기가 있다.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소를 그리고는 그 위를 검정색 크레파스로 덧칠했다고 한다.

놀란 친구가 이유를 묻자, 아이는 소가 너무 예쁜데, 어른들이 데려갈까봐 못 보게 숨기는 중이라고 답했다는 것. 아이의 맑은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불안한 심리상태는 아닌지 의심했던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른다며 내내 '고정관념 깨기'를 강조했었다.   

요즘 고정관념이 깨지면, 현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몸소 실감하고 있다. 지난 4월 초 토요일, 2015년 신규 보건교사 연수가 있어 멘토 자격으로 참석했다가, 남자 보건선생님을 두 분이나 뵈었다.

그동안 남자 간호사는 더러 있었지만, 학교보건 70여 년 역사 이래 임용 시험을 치르고 정식으로 발령받은 남자 보건선생님이 탄생한 것은 올해가 처음. 이제 갓 발령받아 학교가 낯설다고 하시면서도 보건교사에 대한 새로운 역할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고 하셨다.

그동안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아침결식, 흡연, 음주 등의 건강 행태에 대해 보건교육을 실시하면서, 남학생들의 심리를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남자 보건선생님이 계시면 수업연구나 지도방법이 훨씬 폭넓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꿈이 아니라 실제로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다. 보건선생님은 무조건 여자 선생님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원년, 앞으로 10년 후 사람들이 떠올리는 보건선생님은 어떤 모습이 될는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고정관념이 깨지자, 현장이 살아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근 고등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보건실에 들렀는데, 보건실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보건실을 생각하면 교실 한 칸 크기의 정사각형 구조에 침대와 처치 공간만 떠올리곤 하는데, 이 학교의 보건실은 건축 당시부터 직사각형으로 설계되었다. 문을 열면 바로 보건선생님의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출입문과 보건선생님의 책상을 가깝게 배치했고, 직사각형 실내 구조의 양 끝 쪽에는 각각 상담실과 비품 및 약품 보관실, 남학생과 여학생의 휴식실을 배치했다.  

평소 보건실에서 침상 휴식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비밀 유지가 어려워 건강 상담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건축가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상담실과 휴식실을 별도의 공간으로 마련하되, 최대한 멀리 배치하는 세심함을 보여준 것. 또 보건실이 최대한 안정적으로 보이도록 가구 배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품 및 약품 보관실도 별도 공간으로 분리해 설치함으로써, 기존의 보건실보다 훨씬 아늑한 느낌이 묻어나도록 했다.

유럽의 복지를 다룬 한 프로그램에서 그 나라의 복지에 대한 인식을 확인하려면, 학교 보건실을 가보면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 대한 복지 철학의 집약체가 학교 보건실이라는 것. 보건실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마주하고 보니, 어떻게 해서든 건축가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일전에는 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보건교육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보건의료 계열 진학을 꿈꾸는 아이들이 진로교육의 일환으로 보건교육을 받고 싶다며 수차례 학교 측에 요청을 했다는 거다. 건강증진의 일환으로만 보건교육을 접근했던 내 고정관념은 아이들의 생각을 마주하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보건교육을 받으면 건강증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니,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수시 전형 진학에 대비해 더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의 논리.  

70여 년 학교보건 역사에 깊게 박혀 있던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기자, 현장이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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