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30년 전 세월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삭발
[현장]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국회 앞 연좌농성 돌입
▲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집단 삭발하고 있다. ⓒ 남소연
따사로운 봄볕 아래 형형색색 꽃들이 피어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
꽃향기 물씬 풍기는 광장 중앙에는 피리 부는 소년 동상들이 앉아있는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시원하게 솟아올랐다. 그러나 분수대와 불과 약 100m 떨어진 정문 앞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30여 명이 모여 절규로 가득 찬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 '사회정화'란 이름으로 복지원에 끌려가 강제노역, 성폭행 등을 당했던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삭발식에 참여한 11명 중에는 박순이·이민씨 등 여성들도 있었다. 이들은 코·이마에 맺힌 땀과 흐르는 눈물, 잘린 머리카락이 뒤섞여 어지럽게 붙은 얼굴을 한 채 "국가는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둘 건가", "제발 살려달라"고 외쳤다.
"우리는 근 3년간을 묵묵히 서명과 1인시위만 해왔습니다. 대체 이 조그만 분단국가에서 왜 이리도 큰 사건이 줄기차게 일어납니까? 약한 서민들 목숨이 마치 파리목숨처럼 취급돼 한없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겠습니다."
▲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집단 삭발하고 있다. ⓒ 남소연
▲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집단 삭발하고 있다. ⓒ 남소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인 한종선씨의 말이다. "아홉 살 꼬마였던 제가 어느덧 마흔이 됐다. 제가 알고 싶은 건 대체 왜 죄 없는 이들이 복지원에 끌려가 죽어야 했느냐는 것"이라며 읍소하던 한씨의 말은 애타는 호소에서 점점 오열과 절규로 변해갔다. 그는 "피해자로서 죽기 전 한 번이라도 꿈틀거리고, 뭐라도 할 것"이라며 삭발식 배경을 설명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번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 형제복지원 사건 특별법이 올라가지 않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몸으로라도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삭발을 선택했다"며 "피해자들이 모여 '찍소리'라도 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이렇게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 대표를 비롯한 피해자 3, 4명은 법안심사 소위가 끝날 때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저희는 1인 시위나 기자회견 외에는 이런 투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천막도 없고 준비가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에 따르면 그에게 따로 연락해 온 전국의 피해생존자들은 현재 210명에 달한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설립됐고,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1987년 폭행으로 원생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탈출하면서 인권유린 실상이 알려졌다. 복지원 입소자 중 사망자만 513명(1975~1986년)에 달했고, 일부 원생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판매까지 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실상은 피해자들 말을 토대로 뒤늦게 세상에 알려져 지난해 크게 회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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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단 삭발을 한 뒤 서로 껴안고 있다. ⓒ 남소연
현재 이와 관련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등 국회의원 54명이 지난해 7월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사건 등 진상규명과 국가책임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 여준민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 사무국장은 "4월 국회가 끝나는 5월 6일 전까지 이 법이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생존자들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는 4월 국회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이번 4월 안행위에서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않으면 나머지 본회의 통과까지 올해 안에 끝내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안행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새누리당)은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며 책임회피 발언만 되풀이한다"고 지적했다.
조영선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형제복지원은 1987년의 세월호"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조 집행위원장은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해진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건 국가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행위 소속 21명 의원실을 직접 방문해 피해자들이 직접 쓴 호소문 21부를 나눠주겠다며 국회 의원회관으로 향했다.
한편 형제복지원 사건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내부 실상 등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 사과와 보상 등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당시 복지원 운영자였던 박인근 원장에게는 애초 징역 15년이 선고됐지만, 이후 재판을 거치면서 2년 6개월로 대폭 줄었다(관련기사: 그곳에서 513명이 굶어 죽었다... 수사검사도 분노한 '형제복지원' 판결).
지난 23일에는 부산시가 옛 형제복지원 운영법인(현 느헤미야)에 내린 설립허가 취소와 해산명령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와, 그동안 중단된 설립인가 취소와 재산 환수 절차가 재개될 가능성이 열렸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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