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군수공장에서 미군기지로... 부평의 잃어버린 땅
[서평] 한만송 기자의 <캠프마켓>
▲ <캠프마켓> 표지사진 ⓒ 봉구네책방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기지를 설립하며 주둔했다. 부평에 자리를 잡은 보급시설 '애스컴'은 당시 주한미군의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거쳐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거대했다. 애스컴은 1973년에 해체되었고 오늘날의 캠프마켓의 뿌리가 된다.
10년 취재로 정리한 부평의 역사
<캠프마켓>은 한만송 기자가 부평의 역사를 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그는 2004년 <부평신문>에서부터 캠프마켓 문제를 다루었고, <시사인천> 기자로 일하면서 취재한 자료도 추가했다. 조선시대 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평을 중심으로 100년간의 지역 변천사를 조명한다.
기록에 따르면, 현 캠프마켓 부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로 알려진 인물에게 매입된다. 한 세기가 지난 2002년에 땅의 소유를 두고 소송전이 벌어지는데, 이를 계기로 '친일재산특별법'이 마련된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된 당시 소송 사건을 자세하게 파악한 기록이 본문에서 특히 눈에 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군수공장인 부평조병창을 시작으로, 주한미군의 군수물자 주요 보급소였던 애스컴이 들어선 기록을 보여준다. 조병창에 강제로 동원된 청년 중 생존자를 인터뷰하고, 애스컴 해체 당시 "진정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평가한 주한미군의 증언을 인용하기도 한다. 애스컴 주변 지역에서 개인이 미군의 물품을 받아와서 판매하던 일이 흔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미국 대중문화의 주요 수입 통로가 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군의 PX에서 흘러나온 각종 전자제품은 보릿고개를 넘긴 한국의 중산층에게 호응을 얻었다. 물자가 부족하고 외환사정도 어려웠던 시기 주한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품과 달러는 기지촌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중략) 이렇게 유통된 미군 물품은 주로 서울의 남대문 지하상가, 부산 국제시장, 대구 교동시장, 대전 양키시장 등지에서 유통됐다.(본문 179쪽 중에서)
인터뷰 대상이 다양하면서 자료가 폭넓고 풍부한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읽는 동안 부평의 풍경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질 정도로, 각 시기마다 이뤄진 변화에 관한 설명도 세밀하다. 인천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시대상과 주민 생활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또한 부평의 기지촌이 주변 도시와 주고받은 영향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미군기지 반환운동의 흐름
<캠프마켓>은 1970년대부터 보도로 알려진 미군범죄의 사례들, 1980년대에 '미군기지 철수' 주장이 시작된 분위기도 설명한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32만 명이 넘던 주한미군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던 상황과(2013년 3만 명) 미군기지 인근의 오염 문제가 대두된 것이 이유였다.
부평 캠프마켓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형적인 기지촌으로서 미군부대 노무자 등으로 주민 생계를 위해서 도움이 된 측면도 있지만, 사용 목적에 비해서 지나치게 넓은 부지를 점유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부평미군기지 반환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1996년 '부평미군기지 인간띠잇기 대회'가 그 시발점이었다.
처음엔 미군기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당시 미군기지를 출입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종종 봤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이고 그 곳에서 파친코를 하려고 기지를 출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도심 한가운데 있고 군사적 기능을 상실했다는데 하루 속히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기지라고 생각했다.(본문 226쪽 중에서)
본문에 따르면, 주둔 미군 수 감축과 환경오염 문제가 지적되면서 미군기지 반환이 지역 현안으로 자리잡은 배경을 알 수 있다. <캠프마켓>은 미군기지 반환운동의 흐름을 실감나게 담아냈다. 부평 주민들이 보여준 674일의 농성과 해마다 반복된 행사, 식지 않은 관심이 끝내 결실을 이룬 것일까? 국방부와의 협약을 통해 캠프마켓이 평택으로 옮기고, 부지는 2016년경에 인천시로 반환될 예정이다.
지역에 대한 저자의 열정이 느껴지는 책
본문에서는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다방면으로 조사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은 기자의 땀내가 느껴진다. 부평의 아픈 역사를 빼곡히 기록한 부분에서는, 지역에 대한 저자의 열정이 담긴 듯 하다. <캠프마켓>은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만송 기자의 노력이 만든 결과물인 셈이다.
저자는 반환 예정인 캠프마켓 부지의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해서 부산과 의정부·오키나와를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본문을 보면,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로 쓰이다가 임차료를 받고 반환 과정에 있다고 한다. 오키나와 지방의회가 지자체와 공동으로 지역환경을 조사하면서, 부지를 리조트·공원·박물관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인다.
<캠프마켓>은 부평 미군기지의 역사성을 짚은 것과 더불어 반환 이후를 생각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책이다. 부평의 어제와 오늘, 나아가서 내일을 모두 담은 것이다. 384쪽의 책을 덮을 때쯤에는, 부평이 거쳐온 슬픈 현대사가 아련하게 눈앞을 스쳐가는 듯하다.
100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캠프마켓이 인천시 지역 발전의 작은 밀알이 될 수 있을까? 일본 오키나와의 긍정적인 사례를 부평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캠프마켓>(한만송 지음/ 봉구네책방/ 2013. 12. 9./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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