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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가 예뻐서 표를 준 게 아니다

[주장] 노무현의 정신은 살리고, 분파주의는 청산돼야

등록|2015.05.11 10:06 수정|2015.05.11 10:06
<서울신문> 논설위원과 수석편집부국장 등을 지낸 언론인 이계홍씨가 최근 정치권에서 논쟁이 일고 있는 '호남정치 복원론'과 관련한 글을 보내왔다. 이와 관련 반론을 포함한 다양한 논쟁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비난 발언에 최고위원직 사퇴를 밝힌 주승용 최고위원(왼쪽)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표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4.29 재보선에서 광주 서을이 무소속 천정배를 절대적으로 지지한 것을 두고 말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친노가 그를 지역주의자로 몰아붙이며 배신자로 낙인 찍고 있다. 이런 비판은 다분히 광주의 표심을 모르고 내린 자가당착이자 호남정신 혹은 호남정치를 모욕한 무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호남정치, 혹은 호남 정신이 무엇인가. 인터넷매체에 나온 댓글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호남정신이란 참다운 민주주의, 국민이 걱정없이 사는 세상, 차별없는 사회,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협력의 정신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을 지역주의로 왜곡하고 폄하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고, 지역을 통해 보편적 가치를 확산하는 게 호남정신이다. 개인을 통해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입진보들을 앞세워 말만 무성할 뿐

그런데 그동안 광주가 텃밭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이 한 일이 무엇인가. 개혁이니 뭐니 떠들거나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겠다고 했지만 헛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적 어젠다를 생산 선점하거나, 집권 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짚고 나가는 투쟁력도 부재하다. 무능력으로 대응하기만 할 뿐 새누리당의 덫에 걸려 무엇 하나 해결한 것 없이 우왕좌왕이다. 그러니 '새누리의 2중대'란 비아냥을 듣는다. 이것은 호남정치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다.

지난해 재보선이나 이번 4.29 재보선에도 새정치연합은 친노의 자파 심기에만 주력했다. 당선 가능성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자파 인물만 천거하다가 판판이 깨졌다. 이런 조직과 인물독점 구조가 당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여당에게 어부지리만 안겨주었다. 이런 무능이 몇 년째 거듭되고 있다.

그동안 호남이 노무현과 문재인을 전폭적으로 밀어준 건 저 오만 광기의 새누리 정권을 타도해 참다운 민주정권을 세우라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누리 2중대 역할만 충실히 했다. 호남이 쪽수가 부족해 문재인을 빌려와 지지했으나 오히려 그들은 자기 세력을 심는 기득권 유지에 욕심을 부렸다. 자기 텃밭에선 맥도 못 추면서 호남표를 얻어 대권을 노리는 과정에서 당권을 쥐더니 입진보들을 앞세워 말만 무성할 뿐 할 일 없는 당으로 전락 시켜 버렸다.

그런 가운데 호남 정치와 호남 정치인을 배제했다. 천정배는 본래 '친노'였다. 하지만 정치적 소신이 달라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따르지 않은 것도 있다. FTA 반대가 그것이다. 그런데 친노는 이것을 '배신'이라고 규정짓는다. 맹종만을 강요한다. 그것은 사교집단이거나 탈레반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 이후 천정배를 왕따 시키고 배신자 취급했다. 절차와 방법은 다르지만 대체로 이런 식으로 호남의 유능한 정치인을 배제했다. 그리고 호남 토호 정치인을 옹호했다. 능력도 자질도 없는 정치인을 민주당-새정치연합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것을 기화로 이같은 작태를 서슴없이 벌여왔다. 그들은 호남정신이 뭐고 국민의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고 기득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안이한 사고방식으로 주민 위에 군림했다.

방산비리, 자원외교, 4대강 비리, 성완종 비리 따위 무엇 하나 의제를 선점해 나라를 투명하게 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무능과 정파이기주의를 표로 응징해

친노들은 호남 사람들이 욕 먹으며 90% 몰표로 노무현과 문재인을 밀어주었지만 대권 당권을 쥐어잡더니 민주당 텃밭을 초토화 시켰다. 그들이 지목한, 경쟁력 없는 사람을 뽑지 않으면 지역주의자로 몰아붙인다. 호남정치가 무엇이고 호남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친노가 지목한 사람을 비판하거나 뽑지 않으면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이건 노무현 정신과도 배치되고 노무현이 바라는 바도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노리는 탐욕 세력의 발호에 지나지 않는다. 새누리당도 이런 야비한 짓은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문재인이 당 대표가 되기 전엔 새정치연합은 친노의 적이었다. 야당성을 잃었다는 새정치연합을 사사건건 걸고 넘어졌다. 당권을 잡은 이후 그들이 더 무능하고 무력한 처지인데도 말이다.

야당이란 정책 대안을 내는 것도 좋지만 비판만 하는 것으로도 역할을 다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시원하게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역할을 다한 것이다. 집권 여당이 대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야당을 업신여기겠다는 정치적 프레임일 뿐, 따지고 보면 정책을 실현할 능력이 없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그러므로 야당은 야당다운 면모로 강한 비판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그런 투쟁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문제제기하는 척 하다가 어물쩍 넘어가는 수순을 밟는다. 그래서 새누리의 2중대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것을 호남정치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호남정신을 잇지 못한다고 단죄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들은 호남을 여전히 새정연의 포로로 여기고 오만을 부려왔다. 쪽수가 부족해 영남의 노무현 문재인을 불러들여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을 외면한 채 당권을 잡자 새누리 못지않은 오만을 부려온 것이 오늘의 형국이다. 자기들 뜻대로 조종된다고 본 것이다. 무능과 정파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표로 응징하니 인터넷 매체에 배신의 고향이니 전라도 홍어니 모욕적인 언사를 쓰레기처럼 쏟아낸다.

자신의 분수와 처지를 외면한 채 산토끼가 집토끼를 몰아내듯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듯 주인행세하는 친노의 모습을 더 이상 보아주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천정배를 낳은 이유다.

새누리 의원들과 '도찐개찐'인 호남토호 귀족 의원들과 손잡고 자기들 이익을 추구하려는 작태를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호남정치라는 것을 새정치연합 지도부와 친노는 알아차려야 한다.

영남 패권에 안주하는 사이비는 사라져야

김대중 정신이란 바로 호남정신이고,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영남의 노무현과 문재인을 빌려왔다. 그런데 지금 친노라는 집단은 비전도 능력도 없는 '경상도 듣보잡'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들이 결국 이명박에게 정권의 빌미를 주고, 박근혜 후보 시절에는 영남에 정권을 주어도 괜찮다는 친노 인사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하인이 되어서 민생과 경제가 파탄에 이르는데도 무능과 무관심으로 '보조 여당'으로 만족(?)하고 있다. 쇄신이니 개혁이니는 헛구호이고, 새누리 기득권에 기생해 안주하고 있다.

호남정치가 이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런 야당은 역사에서 사라지라는 것이다. 야당의 영남패권에 안주하는 사이비는 사라지라는 것이다. 남이 피흘려 이룬 민주 정신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이번에 나타난 호남정치의 본질이다. 천정배가 예뻐서, 유능해서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자기들 텃밭인 영남에서 단 몇 석도 의석을 가져오지 못한 세력들이 남이 피흘려서 이루어놓은 민주진영을 유린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천정배를 낳았다고 보아야 한다. 새 판을 짜라는 요구가 천정배를 통해 배태되었음을 통렬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역 정당의 폐해를 깨기 위해 노무현의 정신은 살리고, 노무현을 욕먹이는 분파주의는 청산돼야 한다. 그리고 민주화의 본산답게 새롭게 판을 짜 저 수구 탐욕의 집단 새누리에 맞서야 한다. 물론 이런 세력이 호남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나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노무현 이후 수구정권 10년을 청산할 지역이 호남에서 시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울릉도에서, 혹은 부산에서 참된 민주의주의 불길이 활활 불이 타올라도 호남은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그것이 호남정신이고 호남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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