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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몰린 센터 교사 자리, 이렇게 합격했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 시작... "얘들아 캐러멜 줄게, 이리와봐"

등록|2015.05.14 18:19 수정|2015.05.14 18:19
지난해 가을부터 한 호두과자 노점은 겨울을 정점으로 봄이 되니 슬슬 매출이 줄기 시작했다(관련 기사 : '대박' 난다는 신촌 호두과자 노점, 직접 해봤더니...).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서울시청 홈페이지 채용 공고란을 보게 됐다.

마침 관심 있는 직종이 눈에 들어왔다. '지역아동센터 상주 독서 교사 모집'이라는 공고가 그것이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 마감 날짜가 코앞이다.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20명 모집 하는데 50여 명이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닌가.

'스펙' 빵빵해 보이는 경쟁자들... 합격할 수 있을까

중년 나이에 다들 '스펙'이 빵빵해 보였다. 기가 죽어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면접관들의 질문에 편하게 답하고 나왔지만, 내심 자신이 없었다. 큰 기대를 갖지 않기로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왔다. 며칠 후, 합격자 공고가 시청 고시 공고란에 났다고 문자가 왔다. 설마 하며 가봤더니 내 이름이 있다. 예상 외의 결과라 기분이 좋았다. 이제 계약직 근로자로 올해 말까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월 하순 합격자 발표가 난 지 3주 후 3월 말경에 4일간 교육도 받았다. 교육 마지막 날에는 내가 일할 센터의 담당 선생님도 만났다. 서로 소개하고 센터의 위치와 아이들 현황을 간단히 묻고, 다음날 출근하기로 했다. '어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하는데 시청 담당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배치된 센터로 가지 말고 시청으로 오세요"라고.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며 시청으로 갔다. "선생님, 선생님이 가시기로 한 센터에서 선생님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다른 곳은 선생님들이 다 가셔서 갈 곳이 없는데..."시청 담당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왜요? 교육까지 다 마치고 센터로 가서 아이들 만날 것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냐면, 선생님이 귀가 잘 안 들린다는 것을 알고 아이들을 상대하기가 힘들 것 같다며 안 받겠다고 했답니다."

난 어이 없어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 참 잔혹하군. 사람을 겪어보지도 않고 배제하다니.' 배치되기 하루 전날, 실무자와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그 실무자는 상사에게 배치될 선생이 귀가 좀 안 들린다고 말했나 보다. 그랬더니 상사는 받지 않는다고 한 것이고.

▲ 심심하다고 아이가 그려준 내 얼굴이다. 다른 선생님들이 나와 많이 닮았다고 한다. 고맙다. ⓒ 문세경

몹시 불쾌하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상사가 나를 안 받겠다고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가뜩이나 예민한 아이들이고, 보통의 아이들보다 위축돼 있을 확률이 높을 텐데, 상주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코드가 맞지 않으면 피곤할 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쉽게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성질대로 하면 '장애인 차별'과 '괘씸죄' 운운하기에 충분했지만 '밥이라도 몇 번 더 먹은 내가 이해해야지' 하고 말았다.

시청 담당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보겠다면서 일단 이틀 정도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이틀 후 내놓은 대안은 한 센터에 두 명을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즉, 나는 장애가 있으니 혼자 일하기 충분하지 않으므로 이미 합격자가 배치된 곳에 추가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마음을 비우기로 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센터로 갈게요" 하고선 다음날 ○○센터로 첫 출근을 했다.  

○○지역아동센터는 규모가 꽤 컸다. 보육원도 같이 있고 재활센터도 있는 복합 사회 복지 시설이다. 규모가 크니 시설이 잘 정비돼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자기 주도 학습을 지도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센터에는 '책놀이 방'이라는 오프라인 활동방이 있고, 온라인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컴퓨터가 있는 방이 있다. 먼저 오신 선생님은 오프라인 수업을, 나는 온라인으로 책 읽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기로 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갈 곳 없는 초등학생들의 보호 및 학습을 돕는 곳으로 맞벌이 부모 대신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다. 고소득층의 아이들은 방과 후 이런 저런 학원으로 가겠지만, 부모의 수입이 빠듯해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이처럼 지역 아동 센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방과 후에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숙제도 하고 책도 보면서 저녁 식사까지 챙겨주는 곳이다. 나도 아이가 어렸을 때는 지역 아동 센터를 이용하고 싶었는데 우리 아이는 그곳보다는 혼자 노는 게 더 좋다고 가지 않았다.

드디어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밝은 표정으로 '책 놀이방'으로 와 책을 꺼내 읽었다. 독서 능력을 향상하게 하는 게 주목적인 나를 무색게 하는 아이들의 책 읽는 모습은 참 예뻤다. 하지만 90% 이상은 만화책을 본다. 하하.

"얘들아! 만화만 보지 말고..."

공동 시친구라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쓴 시이다. ⓒ 문세경


"얘들아~ 만화책만 보지 말고 이리 와봐. 선생님이 재미있는 동화책 읽어 줄게"했더니, 아무도 안 온다. 약간 의기소침해진 나는 다시 외쳤다. "내가 목소리는 안 좋아도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거든. 다 읽고 나면 맛있는 캐러멜 줄게~" 먹는 것까지 동원했는데도 아이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들이 읽던 만화책만 보고 있다.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이쯤에서 접었다. 

매주 목요일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자유 시간'이 있는 날이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간식을 먹고 나면 모두 함께 뒷산으로 올라가 마음껏 뛰어 논다. 자기들끼리 야트막한 산에 '아지트'를 만든다고 무거운 나무나 버려진 파티션까지 낑낑 거리며 들고 올라간다. 아지트라니, 그 얼마나 신비하고 재미있는 상상인가.

아마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집을 짓고 혼자 며칠 동안 지내볼 궁리를 하지 않았을까. 역시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해서 이미 굳어버린 어른들의 머리로는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요즘 광고 카피에도 이런 말이 나오던데. "이상한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고. 엉뚱함에서 나오는 창의력이야말로 아이들만의 전매 특허(?)일지도 모른다.

뒷산으로 가는 길에는 자그마한 운동장이 있다. 그 곳에서는 축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칠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지트를 만든다고 또는 산에 돌아다니는 곤충을 잡는다고 정신없을 때, 나는 센터 선생님과 배드민턴을 쳤다. 오랜만에 잡은 라켓은 허공을 누비기 일쑤였지만 재미있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축구를 한 판 하기로 했는데 과연 아이들의 활동력에 맞춰 몸을 쓸 수 있을까.

공식적인 내 수업 시간이 됐다. '친구'라는 주제로 책 <오성과 한음>을 읽어주고 친구와 관련한 속담을 얘기 하고, <꼭꼭 약속해>라는 노래를 같이 불렀다. 마지막으로 '공동 시 짓기'라는 주제 하에 두 명씩 짝을 지어 번갈아 한 단어씩 쓰면서 시를 지어 보라고 했다. 저학년 아이들이라 집중력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따라 한다.

"친구란/ 싸우지 않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며..."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친구'. 참으로 소박한 아이들의 시에서 어른들의 그 정의가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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