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셋에 폐암 걸린, 고기 굽는 남자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국소배기장치 등 꼭 확인해야
▲ 폐암에 걸린 고깃집 직원, 산재일까 아닐까. ⓒ wikimedia
53세 젊은 나이에 폐암을 진단 받은 A씨(남자)가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찾아왔다. A씨는 18살 때 아주 유명한 고깃집에 취직해 35년간 연탄불 관리, 식자재 준비, 서빙, 불판(석쇠) 세척 및 청소 등 하루 14시간 이상 식당의 거의 모든 일을 했다. 그는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연기와 손님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세히 물어보니, 장기간 근무한 고깃집은 연탄구이 전문점이었는데, A씨는 초기 15년간 식당에 거주하면서 하루 평균 16~18개의 연탄을 관리했고, 다음 날 연탄을 사용하려고 밤에 자기 전에 연탄 1개는 살려 놓았다고 한다.
고기 굽는 연기와 손님 담배 연기 때문에...
A씨가 가져온 과거 고깃집 사진에서는 10평 남짓한 좁은 실내에 동그란 테이블이 7개가 있었고, 테이블 안에서 피우는 연탄으로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물론 요즘 같이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연기를 빨아들이는 환기장치 따위는 없었다. 그 당시 송풍기가 4~5대 설치된 것 말고는 환기장치는 없었다. A 씨는 비흡연자라고 했고, 의무기록에서도 비흡연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과거 고깃집 사진 속에서는 손님들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A씨가 근무했다는 고깃집을 가보니, 현재는 대부분 숯불구이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일부 1~2개 테이블에서만 연탄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식당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과거에는 연탄 돼지 소금구이로 유명한 집이라고 했다. 현재도 식당 뒤편 건물 사이 실외 공간에는 숯을 만드는 곳과 사용하지 않은 연탄이 쌓여 있었고 여전히 국소배기장치는 식당 천장에만 있었다.
연탄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석탄이 완전 혹은 불완전 연소하면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벤젠, 포름알데히드를 포함해 연탄에 불순물로 함유된 황, 비소, 규소, 불소, 납, 수은 등 다양한 분진, 가스, 금속이 발생한다. A씨와 같이 석탄(연탄)을 실내에서 장기간 사용하게 될 경우 폐암 위험도가 증가한다.
연탄구이 전문점에 갈 때 조심할 것
실내 석탄 사용과 폐암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중국에서 농촌 지역으로 분류되는 윈난 성(Yunnan)에서의 연구가 많다. 실내에서 석탄(연탄)을 이용하여 요리나 난방을 사용하는 농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석탄 연소물질의 대부분을 집 바깥으로 배출시키는 통풍구(연통)가 없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폐암 위험도가 높다고 한다. 또한, 석탄 난로 사용 기간이나 석탄을 연료로 요리한 기간이 길수록, 석탄 사용량이 많을수록 폐암 위험도는 더 높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연탄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연탄 사용이 국내 폐암 발생에 기여가 높을 수도 있다. 그나마 중국과 달리 국내에서 연탄을 사용하던 시기에는 아궁이와 구들에 연결된 굴뚝을 설치했기 때문에 중국 윈난 성의 농부보다는 영향을 덜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한두 번 연탄가스를 마신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연탄 연소물질이 제대로 배출되는 집에 살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연탄 구이 전문점이라고 하는 곳은 지역의 명물 맛집이 되어 현재도 각종 블로그에 고기 맛을 자랑하고는 있다. 다행히도 A씨는 실내 연탄 연소물질 노출로 산재가 인정되었다. 국소배기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연탄구이 전문점에서 고기를 굽거나 서빙을 하면 연탄 연소물질에 지속해서 노출돼 A씨 같이 폐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이후 나는 연탄 구이 고깃집을 방문할 때는 연탄 바로 위에 국소배기장치가 있는지, 실내 환기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보는 버릇이 생겼다. 또 거기서 일하는 식당 노동자들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노동부나 환경부가 이런 작은 노동 현장에도 관심을 두길 바라면서.
○ 편집ㅣ박순옥 기자 |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닥터 아이유 기자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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