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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북 현영철 숙청"... 전문가 "성급한 발표"

'불경·불충죄'가 원인인 듯...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건재"

등록|2015.05.13 09:37 수정|2015.05.13 17:38
[기사보강 : 13일 오후 5시 15분]

▲ 지난달 16일 러시아 모스크바 래디슨 로얄 호텔에서 러시아 국방부가 주관한 제4차 국제안보회의에서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연설하는 모습. ⓒ 연합뉴스


북한 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우리의 국방부 장관) 이이 지난달 3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불경·불충죄 숙청됐다고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이 13일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현영철 부장은 지난달 27~28일 모란봉 악단 공연을 관람했으나, 지난달 3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관한 군 훈련일꾼 대회 참가자들과의 기념촬영에는 불참했고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올해 66세로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 및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을 거쳐 지난 해 6월 인민무력부장을 맡은 그는 국방위원회 위원(2014년 9월)과 당 정치국 위원(2015년 3월)으로 발탁됐으며 올해 김 위원장 공개활동을 14회 수행(순위 4위)했다. 숙청 직전인 지난 4월에도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국방장관과 회담한, 북한 군부 핵심 중 한 명이었다.

"업무 태만, 지시불이행, 김정은 주재 회의에서 졸아"

국정원 관계자는 현 부장의 숙청원인에 대해 북한 공단당국이 핵심간부들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현 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김 위원장의 지시를 수차례 이행하지 않거나 '태공'(태만)한 모습을 보였으며, 김 위원장이 주재한 인민군 훈련일꾼 대회에서 눈을 내리깔고 조는 등 불충스러운 모습을 보인 게 포착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정원측은 현 부장이 반역죄로 처형됐다는 첩보도 입수했으나 그보다는 '유일영도체계 10대원칙'(2013년 6월 개정)에 있는 김 위원장 권위훼손, 당 방침·지시 집행 태만, 동상이몽·양봉음위(同床異夢·陽奉陰違 : 보는 앞에서는 순종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먹음)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회의자리에서 졸지 말라는 지시를 했으며, 이를 어긴 군 장성들의 계급을 강등시킨 사례들이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현 부장이 지난 4월 30일 경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수백 명의 고위 군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포로 총살됐다는 '첩보'도 입수했으나, 처형이 최종 확인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현영철이 핵심간부임에도 북한 당국의 공식발표가 없었고, 숙청 이후에도 북한TV가 방영한 김정은 기록영화에 현영철의 모습이 삭제되지 않고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처형당했다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이후 북한 TV기록영화에서 삭제된다면 북한이 처형(총살)을 공식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사총 총살 첩보 입수...단정은 않고 있어"

현영철 숙청은 과거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이나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숙청과는 달리 당 정치국 결정 또는 재판절차 진행여부 발표 없이 체포 3일 내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라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국정원은 또 최근 6개월 동안 현영철 부장 외에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마원춘, 인민군 총 참모부 작전국장 변인선,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한광상 등 핵심 간부들을 김 위원장의 지시를 불이행했다는 이유로 처벌당했다 전했다. 이들은 국정원이 지난달 29일 국회 정보위원에 "15명의 북한 고위 관리가 처형당했다"고 보고한 인물들과는 다른 인물들이다.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70여명이 고위간부를 총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한 뒤 "공포통치의 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간부들 사이에서도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그러나 북한 내부의 갈등이나 쟁투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때 군 서열 1위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도 현 부장과 함께 숙청됐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국정원 관계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건재하다"고 밝혔다.

한편 국정원은 최근 미국 CNN방송이 고위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김경희 독살설'을 보도한 데 대해 "매우 근거가 약한 일방적인 얘기"라며 "김경희는 현재 병원 치료중"이라고 부인했다.

"현영철 숙청? 정부가 검증 안 된 정보 성급하게 내놨다"

국가정보원의 '현영철 숙청' 발표에 대해 "정부가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성급하게 내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특정 엘리트가 반드시 참석해야 할 행사들에 계속 불참하는 경우 건강상 문제 또는 해임이나 숙청 가능성을 주목하고, 그가 숙청됐다는 '첩보'가 들어오면 그에 대한 북한 매체의 보도에 변화가 있는지 분석한 뒤 김정은 관련 기록영화에서 동행한 모습이 지워지면 숙청가능성을 높게 판단하는, 북한의 핵심 엘리트 변동을 파악하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며 "그런데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북한 TV가 방영한) 김정은 기록영화에 11일까지 계속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처형' 또는 '숙청'되었다고 국정원이 발표하고 있어 정보 분석의 기본적인 원칙이 무시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현 부장이 숙청당한 날로부터 11일이나 지난 뒤에 방영한 기록영화에서도 그의 모습이 삭제되지 않는,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국정원이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것이다.

정 연구실장은 "현영철이 해임되고 중징계를 받았을 수는 있지만, '숙청'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처형될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극단적인 처벌이라는 점에서 중징계와는 다른 의미"라며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김정은이 왜 현영철을 숙청했는가가 아니라 현영철이 '처형' 또는 '숙청'당했다는 정부 발표가 과연 얼마나 신뢰할만한 것인가 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 당국이 아직 충분히 검증이 끝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해 갑자기 언론의 관심을 끄는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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