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스승의 날 찾아온 신도, 뭉클했다

등록|2015.05.13 21:07 수정|2015.05.13 21:07
몸이 좀 찌뿌둥했습니다. 아내의 부재로 생활 리듬이 깨진 것이 이유인 것 같습니다. 식사도 제 시각에 못하고 집안 방들도 비뚤비뚤 어지럽습니다. 지난 12일 밤에는 자정이 가까워 올 때 밥을 먹기까지 했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신문사에 보낼 글 한 편을 완성하다 보니 에너지 비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노동으로 푸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며칠째 오전 풀 작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몰아 하면 중노동이 되지만, 짬을 내서 조금씩 하니 힘이 덜 들고 운동도 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오늘은 텃밭 모퉁이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쑥을 해 치우기로 했습니다. 이 쑥은 매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식물(食物)입니다.

해마다 부활절 무렵에 여기서 나는 쑥으로 떡을 만들어 성도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또 이웃에 돌리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쑥떡을 선물할 때도 있습니다. 자연 산 쑥을 듬뿍 넣어 만든 쑥떡이어서 맛과 행기가 독특하다며 먹는 사람들이 좋아들 합니다. 이런 쑥을 베어 없애려니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과 애석함이 없지 않습니다. 지금 것은 세어서 이미 식용으로 쓰기 어렵다는 것으로 위로 삼습니다.

쑥 베기를 끝내 갈 무렵 한 장정이 교회 마당을 들어섭니다. 오늘 따라 보무가 더 당당한 것 같습니다. 그의 손에는 음료수 한 상자까지 들려 있습니다. 이용천 형제입니다. 우리 교회 오래 다니다가 지금은 장애인들을 섬기는 작은 교회에 출석하며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성도입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미안해합니다만 더 작고 어려운 교회에서 목사님 도와 열심을 다 하라고 격려해 줍니다.

가끔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이용천 형제입니다. 그는 우리 교회가 있는 동네에 살다가 부곡동 주공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마을의 비어있는 집에 신방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나무랄 데 없는 신앙인들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새벽 기도가 끝나고였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기도 하나 해주십사 부탁드리려구요. 부곡동 주공아파트 있잖아요. 그게 영세민아파트인데,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 좀 해 주세요. 제 앞에 다섯 명이 대기 중이거든요. 겨울이 오기 전에 빨리 이사 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즉석에서 그 기도 제목을 갖고 그와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 부곡동 주공아파트로 가면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게 아닌가 하고 농담을 했고, 그는 "설마 그럴 리가요, 멀리 이사 가면 더 열심을 내어 신앙 생활 해야지요"라며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근 한 달 정도 했을 때였습니다. 그가 일주일 뒤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들어 주심과 기도를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사를 가고 근 두 달 정도는 변함없이 예배에 잘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두 달 뒤부터 삼일 밤 예배를 빠지더니 주일에 보이지 않는 날이 생겼습니다. 심방을 가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실은 가까운 교회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먼 친척이 하는 가정 교회인데 특히 그 교회는 장애인들 중심의 교회로 도움을 요청해 와 거기 나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용천 형제가 선물로 가져온 블루베리 음료수이용천 형제가 스승의 날이라고 찾아와서 전달한 음료수. 이 음료수엔 그의 사랑과 존경과 믿음의 마음이 녹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 이명재

어제 저희 교회 인터넷 카페를 뒤지다가 지난해 5월 19일 쓴 글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이 '스승의 날 찾아 온 귀한 손님'으로 돼 있었습니다. 이용천 형제가 음료수를 한 통 사 가지고 스승으로 생각하는 저를 찾아와서 정담을 나눈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오늘 똑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가 블루베리 음료수 한 통을 사 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지난해와 동일한 대답을 했습니다.

"스승의 날이 다다음 날인데,  제겐 스승과도 같은 목사님을 찾아뵙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아요."

30여 년 전쯤 제가 야간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가르쳤던 학생들 중 지금까지 연락이 닿아 스승의 날 등 전화 통화를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 같이 어려운 시절 선생님을 만나 참되게 살아가는 길을 찾았다는 말을 그들로부터 들을 때면 나름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목사와 성도로 만난 형제로부터 스승의 날 인사를 받는 것은 제게 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용천 형제가 저를 스승으로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곰곰 생각해 봅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바른 천국 길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바른 신앙 생활을 하라고 끊임없이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인간적 가르침 내지 지식적 가르침에 더해 가장 중요한 영적 가르침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스승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스승이야말로 차원 높은 스승의 반열에 드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의 모든 목회자는 고차원의 스승이 되는 셈입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잊지 않고 찾아와 인사를 하는 이용천 형제가 가상하게 여겨져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네 어머님이 살고 있는 본가에 가서 식사를 하겠다며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는 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목사님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내심 생각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용천 형제가 사 온 블루베리 음료수는 돌아오는 주일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하나씩 나눠 마시며 그를 위해 기도해 주려 합니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은 하루군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