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격전지'서 울려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현장] 시민사회, 옛 도청 앞서 5·18 기념식... 유족·시민 등 1천여 명 참석
▲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별도의 5·18 3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5·18유가족회 등 5월 관련 3개단체,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개최한 기념식에는 5·18 유가족, 시민, 세월호 유가족, 정치인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강성관
정부 주관 5.18 기념식에서 제창을 거부 당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중 항쟁의 마지막 격전지인 옛 전남도청 앞에서 울려 퍼졌다. 빗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5.18 유가족과 시민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8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5.18 민주 묘지에서 열린 정부 주관 5.18 기념식이 열린 같은 시각,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민주 광장에서는 별도의 5.18 3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5.18유가족회 등 5월 관련 3개 단체, 광주 전남 지역 시민사회단체,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개최한 기념식에는 5.18 유가족, 시민, 세월호 유가족, 정치인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등이 개최하는 5.18 기념식이 열린 것은 정부 주관 기념식이 열리기 시작한 1997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눈물·분노·다짐으로 치른 옛 도청 앞 기념식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식순에서 제외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열린 이 기념식은 국민의례, 5·18 경과 보고, 김정길 행사위 상임위원장과 5월 3단체 대표 등의 기념사, 세월호 유가족 대표의 연대사,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식 무대 오른편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민중항쟁의 정신이자 상징입니다'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날 기념식 참석자들은 정부의 주관 기념식 식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를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광주 남구 주민으로 구성된 오카리나 연주단 300명의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연주에 맞춰 제창했다.
5월 항쟁 희생자 고 최석훈의 어머니 김근례(79)씨는 "망월동에 가서 아들을 봐야하는데, 그 놈들(전두환 군사 정권)이 광주 시민을 그렇게 죽이고 왜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들이 있는 곳에 가지 못해 서운하고 마음이 아프요"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유가족 김동순씨는 "왜 노래(임을 위한 행진곡)를 못 부르게 한다요"라며 "지금까지 불러왔던 노래도 못 부르게 하고, 그러니까 여기서 기념식 하는데 내년에는 망월동에 갈 수 있었으면 되겠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5월을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이 노래도 문제지만 그 때 외쳤던 민주주의를 자꾸 거꾸로 하려고 한다"며 "누가 우리 마음을 대변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것 같아서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별도의 5·18 3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5·18유가족회 등 5월 관련 3개단체,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개최한 기념식에는 5·18 유가족, 시민, 세월호 유가족, 정치인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 ⓒ 강성관
유가족은 기념식에 참석한 안철수·김한길·주승용·강기정·김동철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천정배 무소속 의원 등 정치인과 인사 할 때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임을 위한 행진곡>도 마음껏 부르고 정치도 좀 제대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후식 5·18 부상자회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하는 것은 5월의 역사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라며 "오죽하면 유가족들이 자식들이, 형과 누나가 묻혀 있는 망월 묘역 기념식에 가지 않았겠느냐, 정부는 하루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 5월 27일 옛 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한 고 문재학(당시 고등학교 1년)의 어머니 김길자(76)씨는 기념식을 마친 후 세월호 유가족 권미화씨를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김길자씨는 "이 비는 그냥 비가 아니다, 도청에서 (1980년 5월)27일 새벽에 죽은 아들의 눈물이다, 그래서 비옷도 입지 않고 그냥 비를 맞았다"라며 "기념식을 따로 하니 마음이 안 좋다, 35년을 싸워서도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세월호도 끝까지 싸워서 내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상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힘이 되는 한 함께할 것이다"라며 위로하기도 했다.
"민주당, 정신 좀 차려라" 타박 맞은 새정치연합
▲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열린 5·18 3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이 한 유가족의 이야기를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이날 유가족들은 새정치연합에 "정신차리라"며 비판했다. ⓒ 강성관
강기정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은 "올해 (정부 주관)기념식이 최악인 것 같다, 대통령도 총리도 오지 않고 부총리가 왔다, 보훈처가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임을 위한 행진곡>과 5월 정신을 왜곡하고 있는 일은 처음이다"라며 "벌써 35년이 됐는데 광주의 대동 정신이 퇴색해 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정부뿐 아니라 4.29 재보선에서 참패하고 당 내분에 휩싸인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김정길 5·.8행사위 상임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 정부 주관 기념식에 불참하고, 오월의 역사, 그날의 함성과 절규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도청 앞에 서서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서 있다"라며 "35년이 지난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껍데기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민주주의 투쟁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을 지켜내고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국가로서의 책무와 기능을 상실"했다면서 "식물 정부가 돼버린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 그리고 거악에 맞서 분노하는 국민의 편에서 앞장서야 할 야당의 무기력과 무능력에, 국민은 이제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과 세월호 가족의 아픔을 보듬어야 할 야당은 어디에 있느냐"라며 "우리는 오늘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분노를 담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 내고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아직도 민주주의 투쟁이 필요하다"라며 "우리의 야당은 어디에 있느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 5·18 유가족 김길자씨가 세월호 가족 권미화씨를 껴안고 위로하고 있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별도의 5·18 3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5·18유가족회 등 5월 관련 3개단체,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개최한 기념식에는 5·18 유가족, 시민, 세월호 유가족, 정치인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강성관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연대사를 통해 "오월 가족들이 커다란 위로와 힘을 주었다"라며 "우리 세월호 가족에게 포기란 말은 없다, 더욱 단결해서 싸우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란 것을 오월 가족들을 통해 깨달았다"고 말했다.
5.18 유공자 고 명노근 교수의 부인 안성례(78)씨는 기념식에 참석한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 등을 만나 야당을 비판했다. 안성례씨는 안 의원이 인사를 건네자마자 "민주당 정신 좀 차려라"라며 "어떻게 성완종 같은 비리가 있는데도, 이렇게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권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인데도 선거에서 질 수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맨날 하는 소리는 (정권)심판이다, 제발 그 말 좀 그만하고 변화해야 한다"라며 "국민들에게 뭔가 대안도 말하고 해야지, 이런 민주당 가지고 뭐 할 거냐, 믿음이 안 간다"고 질타했다. 굳은 표정으로 안성례씨의 비판을 듣은 안철수 의원은 "시민의 소리를 가감 없이 제대로 듣기 위해 기념식에 참석했다, 변화와 혁신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5.18 유가족 이귀임(76)씨도 새정치연합에 대해 "밥상을 차려 놓았는데도 그것(선거)을 제대로 못해서 밥상을 차버린 꼴이다"라며 "국민들은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정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해야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야당이 힘도 없고 제대로 못하니까, 이렇게 따로 기념식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기념식을 마친 시민사회단체 대표단, 5월 관련 3개 단체 회장 등은 윤장현 광주시장,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등과 함께 민주의 종 타종을 하기도 했다. 이날 윤장현 시장과 문재인 대표는 정부 주관 기념식에 참석한 후 민주의 종 타종을 위해 금남로 옛 도청을 방문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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