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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협동조합, 민주주의 참 가치를 알리다

시 한 편을 통해 학교교육을 말하다

등록|2015.05.21 14:19 수정|2015.05.21 14:19
앨빈 토플러, 짐 테이토 등이 설립한 비정부기구 세계미래회의(World Future Society)는 미래 트렌드를 예견하는 싱크탱크로 지난 2008년 8월, '미래전망 2008(Outlook 2008)'을 내놓았다. 2008년에 내다본 2025년에 대한 예측인데 이미 실현된 경우도 많고 곧 실현될 요소들도 흔히 보이며 실현될 징후가 짙은 부분도 많이 드러난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가족 해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가족 구조가 급변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줄기세포 치료나 유전자 치료를 통한 수명 연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노인이 노인을 돕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도 사정권에 들어온 듯하다.

세계미래회의에서 '남자가 왜 필요한가(What use are men?: The Future of Gender Roles in Society)'를 발제한 영국의 카렌 멀로니가 미래사회에서는 남성의 근육질에서 나오는 힘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는데 언뜻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인 것 같으나 미묘한 흐름을 짚어볼 필요는 생긴다. 아직까지는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나 여성들이 각 분야의 요직에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여성 우위가 지속적으로 강화된다면 남성불평등에 대한 저항을 하겠다며 조급함을 보이는 선진국 남자들의 발버둥이 시작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의 분석이나 예측뿐만 아니라 동향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시대정신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1인 가족이 급증하고 고령화 사회가 다가왔으며 성 역할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놓은 현실에서 경쟁 중심 체제를 지향할 것인지 협력 체제를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의외로 자명하다. 기술의 발달이나 경제의 발전을 꾀할수록 경쟁의 논리가 판을 칠 것 같으나 자의든 타의든 연대를 추구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IT업계의 움직임을 통해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일시적 합병을 통한 기회의 모색 차원이라 할지라도 일보 전진을 위해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전자 미디어를 통해 나타난 집단지성으로 집합적 참여와 협업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도 있고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특징인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체제와는 달리 협업소비를 기본으로 한 공유경제가 가져다주는 힘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협력과 상생, 공유와 공존, 소통과 연대의 시대이다. 경쟁과 반목, 갈등을 부추기는 시스템과는 작별을 고해야 진정한 경쟁력이 생기고 '경쟁'이라는 말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성공한다는 가르침은 '농약'과 같은 것이다. 쓰레기보다 아주 고약한 것이다. 쓰레기는 더럽다며 치우기라도 한다. 농약은 당장 이로워 보이지만 독약과 같은 것이다. 우린 거기에 속고 있다. 민주주의를 팔아먹는 것이다. 진정한 생존경쟁이 무엇인가? 생각이나 처지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함께 사는 것이다."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듯 '친구'와 '이웃'을 만들어 주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 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중략)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들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 고은 '머슴 대길이'

'머슴 대길이'는 자신의 신분에 맞게 묵묵히 주어진 일을 소화한다. 그러나 우직함을 가진 것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 하에서 화자가 주위 친구들과는 달리 독보적으로 한글을 깨우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강력한 주체 의식의 소유자이다. '남하고 사는 세상'에서 '저밖에 모르는' 행위를 지양해야 한다는 가치를 화자에게 심어주기도 하는 걸 보면 선각자로 불러도 과함이 없을 것 같다. 화자에게 그가 불빛이듯 공존과 협력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할 이 시점에 기성세대와 교육사회는 학생들에게 어떤 불빛으로 거듭나야 할까?

2000여 개의 학교협동조합을 보유하고 200만 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구성하고 있는 등 학교협동조합의 천국이라 불리는 말레이시아와는 다소의 거리가 있지만 우리나라 학교사회에서도 협력의 가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엔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시행하였고 그 영향을 받아 현재 전국 10여 개 학교에서 학교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삼각산 고등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일체감을 발휘, 올해 3월 매점 운영과 관련하여 협동조합 인가를 받고 4월 3일 '먹고가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공동의 필요와 공동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그 열쇠를 쥐기 위해 불량식품이나 건강에 좋잖은 질 낮은 물품 구매를 지양하고 친환경 음식을 들여와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구조를 취한 것이다.

조합원이 200명이 넘는데 이 중 학생이 80% 정도 된다고 한다. 협동조합 이사로 5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매점 운영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구상하기도 하고 조합원 회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다. 경제교육과 환경교육의 효과를 제대로 맛보고 아울러 협력의 가치를 몸소 느끼기도 하는 셈이다. 1주 1표제가 아닌, 1인 1표제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축으로 하는 협동조합의 운영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의 참 가치를 배우기도 하는 셈이다.

학교협동조합. 교육의 3주체가 수평적 형태의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싼 가격으로 구입해 판매하고 그 수익을 매점에 재투자하거나 학내 복지에 사용하는 구조이다. 소유자와 운영자, 그리고 이용자를 모두 교집합 속에 두자는 취지 속에 연대의 위력과 협력의 가치, 상생의 구조, 소통의 맥락을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좋은 시스템에, 학교협동조합 교육 콘텐츠를 다양하게 생산하려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학교협동조합제도는 학생들에게 좋은 불빛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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