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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여의도에 갇혀 그들만의 리그 벌인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33]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등록|2015.05.21 17:19 수정|2015.05.21 17:19
많은 사람들이 5월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곤 한다. 이명박 정부의 '표적 수사' 논란 이후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500만 명이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하면서 그의 서거를 애도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등이 후퇴했다는 평가가 많다. 참여정부 당시 정책기획위원회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을 만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 구청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몇 시간 기다린 뒤 30초 조문... 슬픔의 정체는 뭘까"

▲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 성북구청장실


-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6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뉴스에서 소식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그때는 봉화까지 어떻게 내려갔는지 정신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어요. 봉화에서 노무현 대통령 빈소를 지키는 역할을 했었는데 100만 명이 넘는 조문객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서거 당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2010년도에 출마하면서 속으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대통령께서 놓고 가신 일을 이제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분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나, 하고자 했떤 일은 우리나라에서 꼭 이뤄져야 하는 일입니다.

지난 5년간 대통령께서 놓고 가신 일을 하기 위해서 애를 써왔다고 생각하는데, 노 전 대통령처럼 용기가 있거나, 능력이나 재주가 있거나, 혹은 높은 이상을 가졌던 것에 비하면 많이 모자랍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특히 서민들, 국민들이 너무 힘들어 하기 때문에 대통령 생각이 참 많이 나는 것 같아요."

- 노 대통령의 가치는 '사람 사는 세상'이지만 지금 사회는 '돈이 사는 세상' 같아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지금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예요. 사람의 가치, 역사, 문화 혹은 정의, 평등, 상식, 염치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돈 앞에서는 '돈만 가지면 되지 않느냐'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다' '권력·염치·양심도 살 수 있다'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게 우리 사회를 망치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참여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제 고향이 부산이라 노 전 대통령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특별한 인연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2001년까지 성북구청에서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다가 2001년 5월부터 2002년 8월까지 미국 시라쿠스 대학에서 석사과정으로 행정학을 공부했어요.

미국에 있는 한인 유학생들도 노무현 후보에 열광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당내 사정이 나빠지고, 대통령의 실수도 있었고, 이러면서 소위 '노풍'이 꺼진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귀국해서 보니까 상황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저는 당시 노 후보 선대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때마침 예전에 같이 인연을 맺고 있던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 선대위에 합류하게 됐어요. 신계륜 의원이 당시 비서실장을 맡았어요. 저는 선대위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노 후보 선대위에 합류해서 노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선거 기간 내내 모시고 다녔어요. 그래서 후보단일화 작업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도 청와대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 서거 때 조문받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시간이 멈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일주일정도 거기서 그냥 거의 씻지도 못하고, 잠은 아주 피곤할 때 조금 잤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찾아오는 시민들을 맞아야 했으니까요. 시민 중에는 아이 손을 잡고 다섯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울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면서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울까? 잠시 울면 되지 몇 시간을 걸려 도착해 30초 밖에 안 되는 조문을 했을까, 슬픔의 실체가 과연 뭘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아마도 사람들은 '희망이 죽었다' 이런 생각을 했거나, '희망이 짓밟히는 게 슬프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아이까지 데려와 꼭 보여준 게 아닐까요.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대통령께 인사 올리겠습니다'라는 안내 멘트와 '퇴장하시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반복하면서도 그분들의 마음을 담으려고 조심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

- 2009년 5월 23일이 토요일이었는데 올해도 토요일이라 더 생각이 날 것 같아요.
"그렇네요. 그 생각을 못했네요. 저도 그날 아침은 생생합니다만 기억하기 싫은 날 중 하나이면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합니다."

"내 기억 속 노 전 대통령은... 대쪽 같은 분"

- 노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인가요?
"저는 2007년 10월에 청와대를 나왔습니다. 2008년도에 총선이 있었기 때문에 총선 준비를 하고 싶어서 나왔는데 그때 뜻대로 잘 안 됐어요. 청와대에서 일하던 비서관과 수석 대부분이 총선 때 성적이 안 좋았거든요. 2008년도 총선 이후 흩어지지 말고 결속을 다지면서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자는 취지로 청와대 출신 정치인 모임 '청정회'를 만들었습니다. 1년에 두세 번씩 봉하에 가서 대통령을 찾아뵙고, 말씀도 듣고, 막걸리도 한잔 하고 그랬습니다.

대통령을 돌아가시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이명박 정부에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혐의를 덧씌운 수사를 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모욕을 줬습니다. 수사가 본격화됐던 2009년에는 직접 노 전 대통령을 뵙기 어려웠어요. 2008년 말이나 2009년 초에 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진보의 미래>라는 책의 편집과 집필 과정 일부에 관여했기 때문에 그때 함께 토론하고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 김 구청장께서 생각하는 노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옛날로 치면 선비 중에서도 이상향을 꿈꾸는, 일종의 혁명가, 이상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학문적으로도 아주 고민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굉장히 똑똑하신 분이었고요. 진리의 탐구에 대한 목마름이 엄청나셨습니다. 한번 본인이 옳다고 믿으면 꼭 실행하는 분이었습니다. 굉장히 자존심이 강하고 속된 말로 '쪽팔리는 것'을 못 참는, 자존심이 강한 대쪽 같은 분이셨죠."

- 노 대통령과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처음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제가 정무수석실에 배정받았는데 노무현 대통령께서 저를 잘 모르실 때였죠. 비서실장의 보좌관이니깐 얼굴은 알고 있는데, '이 친구 뭐하는 친구지' 싶었을 겁니다. 2003년 3월쯤 방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갑자기 비서실로 오셨어요. 나가는 길에 제가 인사를 드렸더니 '신계륜 의원한테 쫓겨났나'라고 했어요.

제가 신 비서실장의 보좌관이니까 반갑다는 의미로 한 말이면서도 '내가 널 기억한다'라는 뜻이 있었어요. '(노 대통령이) 사람 잘 기억 못하는데 넌 어떻게 기억하느냐'면서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했어요.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죠."

- '어게인(Again) 노무현'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비욘드(Beyond) 노무현'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 구청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기초는 어게인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은 비욘드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루고자 한 일이나 이뤘어야 했던 일이 많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게인 노무현'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로부터 13년이 지났습니다. 당시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도 인정한 사항입니다만, 소위 노동문제와 관련해서 '너무 쉽게 비정규직 빗장을 풀었다, 그게 너무 후회스럽다'라고 말씀하신 걸 직접 들었어요. 그건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실패가 명확하게 드러났고, 부작용이 크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하려고 했던 정책 중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대로 진행할 게 꽤 있지만, 시대 상황에 맞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노무현의 실제 가치는 대중, 국민, 역사, 시민 앞에서 본인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 그리고 헌신성에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국민을 정말 사랑했고, 시대를 책임지려 하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됐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지만, 그의 가치와 정신을 실제에 옮기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신을 10분의 1이라도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보궐은 재보궐일 뿐... 반면교사 삼아야"

▲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 ⓒ 성북구청장실


- 지난 재보선에서 전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노·비노의 고질적인 계파갈등에 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정치에는 당연히 계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역사를 갖고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들이 한 정당 안에서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합니다. 이 모든 게 하나의 큰 방향으로 모아지는 과정이 정치인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을 실망시킨 게 사실이에요. 재보궐선거 결과는 놓고 당 지도부도 이번 선거 패베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재보궐선거는 재보궐선거일 뿐입니다. 우리는 재보선 패배를 반면교사로 삼아 혁신하고 단결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당이 국민들로부터 유리돼 여의도에 갇혀 자기들만의 리그에 빠져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힘들어 죽겠는데 당이 자리다툼에 몰두하는 걸 보고 실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쟁을 멈추고 국민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당이 국민과 유리된다면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왜 여의도에 갇혔을까요.
"기득권 때문이죠. 제사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풍토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 풍토를 청산하는 방법은 표를 가장 많이 모아오는 사람, 국민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국회의원 공천도 받고, 당 대표가 될 수 있도록 계파간 타협을 하는 겁니다. 계파간 지분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되는 구조를 혁파해야 합니다."

- 지난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초선 때와는 다를 것 같아요.
"(구청장이 된 지) 5년이 다 돼가는데요. 민선 5기 때는 초선이라 정신없이 열정으로만 일했던 기억입니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요즘 시민들은 두 가지가 어렵습니다. 하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가 없어서 경제생활과 연결되는 복지 등에 위기가 왔다는 점입니다. 삶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 겁니다.

또 하나는 정치적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정치권력이 시민을 존중하지 않고, 시민의 소리를 듣지 않은 채 독주하니 권력 남용이 만성화됐습니다. 시민들의 정치적 불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을 보장받으려면 좋은 정부를 세워야 하고, 경제적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정치를 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좋은 정부와 좋은 정치를 하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로 마을 공동체를 회복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 나만 잘살고 돈이 우대받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의 가치가 존중받고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자 합니다. 큰 틀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마을복지센터, 복지공동체, 아동친화도시입니다. 아동·청소년들이 희망과 꿈을 갖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주민, 시민을 유권자가 아닌 주인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마을에서, 우리 동네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주체는 주민, 시민입니다. 마을 민주주의 성북을 구현하고, 시민들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에 정치적 의사 결정의 주인으로 대접받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게 제 꿈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i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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