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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키우면 난봉꾼도 바람 안 피운다더니

[인터뷰] 군산시 나포면 나포리 양봉 농가 김남진씨 부부

등록|2015.05.28 14:15 수정|2015.05.28 14:15
예로부터 인삼·녹용과 더불어 3대 명약으로 꼽히는 벌꿀은 인류가 자연에서 얻은 최초의 건강식품으로 전해진다. 나이가 1만 년 이상 되었다는 동굴 벽화에서 꿀을 뜨는 그림이 발견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문구가 구약성서에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꿀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식품임을 알 수 있다.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효소가 다량으로 함유된 벌꿀은 그 옛날 그리스 신들의 식량이었고, 로마인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로 여겼다고 전한다. 그 후 인류 사회에서 약용 외에 사체 방부제, 미라 제작, 과실 보존 등에 사용하였다. 꿀 1kg을 모으는데 벌들이 무려 650만 송이 꽃을 찾아다녀야 한다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맛난 음식을 먹고 '꿀맛'이라고 감탄사를 붙이고, 단잠을 '꿀잠'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도 수많은 먹을거리 중 벌꿀이 으뜸임을 알 수 있다. 벌꿀은 보약으로도 높게 인정받고 있는데 워낙 귀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양봉 기술을 익혀 채밀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백제 의자왕 3년(643) 태자가 일본에 양봉법을 전수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경이로울 정도로 민주적인 벌들의 세계

▲ 군산시 나포면에 있는 김남진씨 양봉장 ⓒ 조종안


100m 안팎의 구릉지가 무리를 이루는 도시 군산(群山) 지역에는 양봉 농가가 50여 호 있다. 그중 벌통을 200통 이상 관리하는 대규모 양봉 농가는 4, 5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소규모라 한다. 산천에 아카시아가 만개하고, 꿀벌들 활동이 가장 왕성해지는 소만(21일) 절기를 맞아 채밀이 한창인 군산시 나포면(신방마을)에 있는 양봉장을 찾았다.

어래산 줄기 언덕바지에 자리한 양봉장은 줄지어 늘어선 벌통 사이로 대추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등이 빼곡히 심겨있어 과일 농장에 온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울창한 숲과 벌들의 합창이 조화를 이루며 고즈넉함을 더한다. 꿀 향기 가득한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데, 셔터 소리에 놀랐는지 윙윙 소리를 내며 비행하는 꿀벌들의 움직임이 사나워진다. 

양봉 경력 30년의 김남진(68), 정미진(65) 부부를 만났다. 김씨는 "이곳에는 200개가 넘는 벌통이 있는데, 주위에 대추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등을 많이 심은 이유는 첫째 농약을 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과실수이고, 둘째 상표는 붙이지 않았지만, 대추꽃에서 채밀한 꿀이 맛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벌통 앞에서 '기억비행'하는 어린 꿀벌들 ⓒ 조종안


▲ 벌통 밖으로 나와 생을 마감한 꿀벌들 ⓒ 조종안


"저기에 놓인 벌통 하나가 5만 마리 이상의 꿀벌들 생활공간인데요. 벌들은 꼭 자기 집(벌통)을 찾아갑니다. 여왕벌이 발산하는 특유의 호르몬 냄새를 맡고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씨가 좋은 날은 어린 벌들이 밖으로 나와 30분 정도 비행을 합니다. 흔히 '기억비행'이라고 하는데요. 2, 3일 간격으로 몇 차례 반복하면서 자기 집을 익힙니다. 신비스럽죠.

꿀벌 수명은 1~5개월 정도 되는데, 일을 많이 하는 여름에는 한 달 남짓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체계가 인간세계보다 잘 잡혀 있어요. 갓 깨어난 어린 벌들은 집짓기나 일벌들이 물어온 꿀을 날갯짓으로 저장하는 일을 하고, 조금 더 크면 꿀을 채집하러 외부 작업을 나가죠. 20일쯤 지나 늙으면 집 청소도 하고 어린 벌들을 도와주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벌들의 세계는 경이로울 정도로 민주적입니다. 철저한 역할분담과 계급체계로 나누어져 있고, 충성심과 배려심도 강합니다. 죽을 때는 동료들이 응애(작은 진드기)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벌통 밖으로 나가서 죽죠. 제 몫을 못하는 벌은 조직에서 쫓겨나고, 외침에 대해서는 결사항전으로 대드는 습성이 있어요. 그래도 먹이가 풍부한 요즘에는 순한 편입니다."

난봉꾼에게 꿀벌을 키우게 하면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

▲ 김남진씨 부부가 수동식 기계로 아카시아꿀을 내리고 있다. ⓒ 조종안


이 부부는 벌통 관리에서 꿀 내리는 작업까지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단다. 꿀 판매도 마케팅이 필요 없단다. 아카시아꿀, 밤꿀, 잡꿀 등을 1년에 250~300병 따는데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김씨는 "10년만 젊었어도 대량 생산해서 인터넷 판매도 하고 싶지만, 벌통이 예전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나이에 그런 생각은 욕심일 뿐"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각종 약초와 채소를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는 일은 부인 정미진씨 담당이다. 벌통 중에는 번식용도 있고, 빌려주기 위해 키우는 벌도 있는데 질병에 약한 벌을 보호하기 위함이란다. 빌려주기 위해 키우는 벌은 하우스에서 수박, 참외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가져간다고. 벌통 한 개를 1주일 대여해주는 데 받는 수수료는 5만 원, 부수입이 짭짤하단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조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꿀벌에 흠뻑 빠지다 보니 양봉 농부가 되었다는 김씨. 그는 "충남 서천군 모 고등학교 교련교사로 재직하던 1980년대 초 농업 경영을 가르치던 동료교사 권유로 양봉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해 2001년 명예퇴직을 하고 나포면에 정착, 본격적으로 양봉가 길로 들어섰다"며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었다. 

▲ 양봉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하는 김남진씨 ⓒ 조종안


"'난봉꾼에게 꿀벌을 키우게 하라'는 옛말이 있는데요. 벌과 친해지면 다른 일에 신경 쓸 정신이 없으므로 그런 말이 만들어졌지 않나 싶어요. 저도 처음에는 퇴근만 하면 벌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벌들을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졌었거든요. 아내가 '당신은 나를 보려고 집에 오는지, 벌을 보려고 일찍 퇴근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댈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양봉 책에 나오는 고사인데요. 조선 시대 영조임금이 '나와 사주가 같은 사람을 찾아오라'고 어명을 내리자 신하들이 강원도에 사는 떠돌이 양봉가를 데려옵니다. 영조가 너와 내가 같은 사주임에도 나는 만민의 왕이고 후궁과 자녀도 많다고 하니까 양봉가가 저도 팔도에 마누라가 있고 벌 수로 따지면 임금님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영조가 내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나, 네가 꿀벌 다스리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며 웃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프로폴리스와 화분(꽃가루), 로열젤리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중 천연 치료제로 알려지는 프로폴리스는 꿀벌이 벌집 안쪽에 발라놓은 벌집 방어 물질을 말한다. 식물들이 내뿜는 수지(樹脂)를 채취해 꿀벌의 타액과 효소 등을 혼합해 만든다고 한다. 꿀에 화분과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등을 섞어 복용하면 효과가 더욱 높아진다는 것.

토종꿀은 진짜, 양봉은 가짜란 인식은 편견

▲ 벌집에 다닥다닥 붙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꿀벌들 ⓒ 조종안


▲ 벌통에서 막 내린 아카시아꿀. 상품이 되려면 정제를 거쳐야 한다. ⓒ 조종안


김씨는 "꿀과 설탕의 차이는 설탕은 골다공증, 당뇨, 면역력 저하, 중독 위험을 높이고 칼로리 외에 영양가가 없지만, 꿀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우리 몸에 빠르게 흡수되어 부족한 에너지를 만들고 위장병과 허약체질에 좋다"면서 토종꿀과 양봉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벌꿀은 성분 함유량으로 질을 구분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토종꿀은 진짜, 양봉은 가짜로 인식합니다. 양봉가 사위가 장인에게 선물하는 꿀도 가짜라는 말이 떠도는데 편견이죠. 옛날에는 꿀을 많이 딸 수 없으니까 설탕을 먹였는데, 기술이 좋아진 지금, 특히 요즘 같은 유밀기(5월 중·하순)에는 설탕 먹여봐야 손해입니다. 3일만 지나면 꿀을 뜰 수 있거든요.

양봉협회가 공인한 꿀의 조건이 세 가지 있어요. 첫째 반드시 꽃에서 채집해야 한다. 둘째, 꼭 꿀벌이 물어 와야 하고. 셋째 효소를 내는 것, 즉 완전히 숙성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꽃꿀을 벌이 물어다 숙성시킨 것을 '진짜꿀'로 보시면 됩니다. 벌에게 설탕을 줘서 만드는 사양꿀은 식품첨가용이고, 화학적으로 만든 꿀을 '가짜꿀'로 치죠."

친구들은 집에만 붙어 있지 말고 가끔 소주도 한 잔씩 하자고 하지만 외출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김씨.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난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양봉장을 찾는다. 벌들이 밤새 안녕한지 벌통을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벌통 관찰은 하루에 몇 차례씩 한단다. 김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자에게 한마디 남겼다.

"결혼해서 아들딸 남매를 두었는데, 아이들을 꿀벌처럼 전심전력으로 돌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꿀벌 키우는 일이 자식 농사보다 어렵게 느껴집니다. 자식놈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요...허허."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매거진군산 6월호와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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