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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북한과 그만 싸우고 화해협력 하세요

[주장] 6.15 공동행사 파행과 더불어

등록|2015.05.26 19:14 수정|2015.05.26 19:14
이제 곧 6월입니다. 2000년 6월 13일에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방북길을 열어 남북정상이 6.15 공동선언을 합의한 15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합의 이후 10여년간은 그야말로 6.15시대라고 부르기 족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은 육로길을 열었고, 남북경협의 꽃 개성공단은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 혜택을 보장해주며 6.15정신이 유린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장관급회담과 남북 장성급회담이 이어졌으며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채택하며 6.15시대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6.15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금강산 관광은 차단되었으며 5.24조치가 5년째 이어지며 남북간 초보적인 경제협력조차 가로막혀 있습니다. 우리민족에게 막대한 경제적 실리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개성공간은 10년째 시범단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북한은 필요하다면 천안함 공동조사를 하자며 결백을 주장하지만,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폭침당했다는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5.24조치는 지금도 남북의 경제협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통일은 대박"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에 일말의 여운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낙제점입니다. "통일은 대박"은커녕, 6.15 15주년 민족공동행사마저 표류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6.15 민족공동행사가 표류하게 된 책임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8.15 서울 개최를 고집한 통일부

통일부가 6.15 민족공동행사 준비에 개입하면서 6.15 행사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5월 5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남북해외 실무회담은 일정이 연기되면서도 논의를 계속하였지만 끝내 행사장소를 명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난항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남, 북, 해외의 민간이 주도하는 6.15 민족공동행사, 광복 70돌 준비위원회는 6.15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논의하면서 8.15 행사는 평양 개최를 전제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남측 광복 70돌 준비위원회도 올해 초 6.15 민족공동행사의 서울 개최를 논의하면서, 남북을 번갈아가며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한 관례상 8.15 행사는 평양에서 할 것이라는 구두 논의를 진행해왔다고 합니다.

선양 실무회담에 참여한 관계자는 지난 3월 11일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광복 70주년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입체적으로 진행되면서도 "6.15공동선언 15주년 공동행사가 서울에서 개최되게 된다면 광복 70주년 행사는 북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부가 개입하면서 문제는 완전히 꼬이고 말았습니다. <통일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월 5일의 선양 남북 민간접촉을 앞두고 남측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통해 광복 70돌 8.15 행사의 서울 개최를 북측과 합의해 오면 6.15 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는 것을 승인해줄 수 있다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6.15 행사 보장"을 미끼로 "8.15 서울 개최"를 먹어보자는 심산입니다.

그래놓고도 정부는 6.15 행사가 통일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나 봅니다. 6.15 행사를 정치성이 배제된 순수한 사회문화교류로 허용한다는, 반쪽짜리 허용 입장으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개 부서의 독자성이 있습니까?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박근혜 대통령 말 잘 듣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통일부의 6.15 행사 개입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해석해도 충분합니다.

남북이 사실상 '6.15 서울, 8.15 평양'으로 논의하고 있던 상황에 정부가 끼어들어 '8.15 서울'을 들이밀어 행사의 전도를 불투명하게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요? 8.15 광복 70주년 행사를 크게 벌여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정부의 정통성을 국제사회에 알려보자는 것 같습니다. 6.15 행사가 개최되건 말건 관심도 없는 처사이지요. 남북관계에서 신뢰와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것을 허물어뜨리고 있으니 남북관계가 풀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국정원 첩보 공개명령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의 첩보 수준의 정보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유포하게 지시해서 남북간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5월 13일, 국가정보원은 갑자기 국회에 북한내부동향보고서를 제출하며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지난달 30일쯤 처형됐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대해 말대꾸하고 김정은이 주재하는 행사에서 조는 모습을 보여 처형됐다"고 전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이유입니다.

언론은 국정원이 갑자기 왜 이런 보도를 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영철 인민부력부장은 국정원이 처형되었다고 한 4월 30일 이후에도 북한 언론에 계속 영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현영철이 최근에 식별된 것은 4월 28일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 참석을 했고, 5월 5일에 김정은 인민군대사업 현지지도 기록영화에서 영상으로 식별된 적이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국정원의 의문스러운 발표는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노컷뉴스>는 5월 20일 자 보도를 통해 "첩보 수준인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숙청 사실을 갑작스럽게 공개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습니다.

<노컷뉴스>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정통한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국정원이 현영철 숙청설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건 빨리 알려서 북한 실상을 국민들이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고 지시를 하면서 긴급하게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고 언론에도 공개한 것으로 안다"고 전한 것입니다. 아울러 <노컷뉴스>는 그 관계자가 "청와대와 정보기관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국정원은 대통령 보고에서 첩보 수준의 정보를 보고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언론에 공개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목적도 밝혀주었습니다. 바로 "북한의 실상을 국민들이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남북은 6.15 15주년과 8.15 광복 70돌을 앞두고 민족공동행사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 시점에서 확인되지도 않은 첩보를 "북한의 실상"이라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대통령의 언급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안중에 6.15 공동선언은 없는 것입니다.

135원에 휘청거린 개성공단

박근혜 정부의 대북 입장은 최근 불거졌던 개성공단 임금문제만 보아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2014년 11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통해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들의 임금규정을 바꾸고, 올해 3월부터 이 규정을 적용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을 현재의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5.18% 올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개성공단 임금은 매년 8월 1일 남북간 합의로 결정하며, 그 상한선은 5%로 한다"는 합의를 북측이 일방적으로 깼다며 반발해 월급 지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2004년에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 남북은 법령의 시효를 10년으로 하고 시효 만료 전에 개정 내용을 합의하기로 정했습니다. 지금이 2015년이니, 기존 법령의 시효가 끝났고, 남북이 새로운 협상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사실 북한이 요구한 5.18%와 우리 정부 5%의 간극은 0.18%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1인당 월급 135원입니다. 월급 135원을 올려줄 수 없어 남북간 갈등을 빚고 개성공단이 위기에 빠진다는 것은 해외토픽 감입니다.

사태는 북측이 기존 임금을 받고 인상분은 추후 논의한다고 물러서며 무마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을 길들였다고 좋아할 것인가요? 월급 135원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북측 노동자들과 남측의 개성공단 입주업체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전형적인 소탐대실 행정입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 놓고 화해협력이 가능할까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과 화해협력이 중심이 아니라 북한을 자극하고 흔들어 결국에는 북한을 이러저리 끌고 다니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돈 135원이 문제가 아니라 월급 올리라는 북한의 꼿꼿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해협력"의 자세가 아니라 갑의 횡포일 뿐입니다. 이 사안이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모르는 일일까요? 월급 135원 때문에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놀부'라고 비난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6.15에 웬 미국행?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5일 당일에 6.15 김빼기에서 가장 확실한 행보를 보여줄 것으로 관측됩니다. 6.15 공동선언 15주년 기념일에 한미정상회담을 예정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5월에 "박 대통령이 6월 15~18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일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모색하기 위해 이달 중순 우리나라를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양국은 박 대통령의 6월 방미를 위해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 날짜가 바로 6월 15일이란 것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6.15 공동선언 15주년인 6월 15일에 미국을 방문해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3각 공조를 논의한다는 것은 6.15 공동선언에 대한 국제적이고 공개적인 모독입니다. 6월 15일의 저녁뉴스를 자신의 한미정상회담과 한미동맹으로 포장하고 6.15 선언 15주년에 대한 공간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미국과 일정이 조율된다는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까지 함께 비난받을 점입니다. 이는 거의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1월 9일에 독일 총리를 워싱턴에 불러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상대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미국도 6.15 공동선언을 싫어한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한미동맹 보다 남북공조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15 유린하는 박근혜 대통령

올해 남북관계는 여전히 꼬여 있습니다. 6.15 15주년 민족공동행사가 불투명해지고 개성공단 임금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첩보수준의 현영철 부장 숙청설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유포해 국민들이 북한에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6.15 15주년 당일에는 미국을 가서 한-미동맹 강화를 발표하려 합니다.

아무리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더라도 국가를 책임진 정권이라면, 최소한의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 박정희 정권도 북한에 밀사를 보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6.15 15주년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순탄하게 발전할 수 있을까요? 6.15 행사를 앞두고 남북관계가 꼬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원고는 <우리사회연구소>에 함께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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