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앞 '분노의 쫄면 시식', 무슨 일일까
[현장] 퀴어문화축제 집회신고 위해 성소수자-반성소수자 단체 '노숙중'
▲ 지난 26일 남대문 경찰서 앞 풍경. 집회 참가자들이 '분노의 쫄면 시식'을 시작하는 중이다. ⓒ 김준수
"남대문 경찰서, 쫄리지?"
26일 오후 7시 30분, 남대문 경찰서 앞에서 '분노의 쫄면 시식'이 벌어졌다. 이른바 '쫄면 벙개'에 참가한 이들은 각자 배달받은 쫄면을 한 그릇씩 들고서 함께 "쫄리지?"라고 구호를 외쳤다.
남대문 경찰서 우측에 위치한 좁은 경사로, 바닥에는 돗자리가 깔려있고 난간은 색색의 끈과 풍선으로 장식됐다. '퀴어 문화축제'라고 적힌 '포토존'도 보였다.
현장 곳곳에서 퀴어 문화축제를 지지하는 이들이 보낸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기자가 도착한 직후에도 현장을 지나가던 남성이 "힘내시라"며 포장된 음식을 건네고 갔다. 딸기우유 한 박스가 기증되기도 했다. 오후 8시 30분 경에는 외국인 세 명이 피자 일곱 판과 탄산음료를 선물하며 지지의 뜻을 드러냈다.
지난 21일부터 이곳 경사로에는 10여 명의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이들은 서울광장 주변에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숙하며 대기 중이다. 다음달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퀴어 문화축제를 놓고, 퍼레이드를 추진하려는 성소수자 단체측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측이 대기열에 섞여 있는 것.
남대문 경찰서는 '경찰서 우측에 설치되어 있는 경사로 통로에서 대기하여 주시기 바라며, 대기하고 있는 순번에 의하여 '15. 6. 28자 집회신고를 접수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고지문을 경찰서 정문 기둥에 붙여놓았다.
퀴어 문화축제 퍼레이드는 당초 6월 13일 대학로 인근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먼저 집회신고를 해서 이미 한 차례 일정이 변경된 상황이다.
"쫄면 벙개, 예민한 경찰 대응에 항의"
▲ 지난 25일 남대문 경찰서 앞 풍경. 어두워진 밤, 풍선등이 경사로를 밝히고 있다. ⓒ 우야님 제공
▲ 25일 밤 참가자들이 '풍선등'으로 어두운 경사로를 밝히자, 남대문 경찰서 측에서 방패를 든 경찰병력을 정문에 배치하는 등 예민하게 대응했다 ⓒ 우야님 제공
성소수자 인권 재단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이날 쫄면 벙개가 간밤에 있었던 일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벌인 이벤트라고 밝혔다.
지난 25일 밤 참가자들이 '풍선등'으로 어두운 경사로를 밝히자, 남대문 경찰서 측에서 방패를 든 경찰병력을 정문에 배치하는 등 예민하게 대응했다는 것. 야간 풍선등에 경찰서 입구를 봉쇄하는 것을 두고 참가자들은 경찰이 "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분노의 쫄면 시식'이 나온 배경이다.
앞서 참가자들은 "남대문 경찰서, 짜쳐('쪼들리다'의 방언)?"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짜장면을 먹었다고 한다. 차후에는 "남대문 경찰서, 버겁지?"를 외치는 '햄버거 벙개'도 계획 중이다.
남대문 경찰서 입구에서 비온뒤무지개재단 배분팀장 윤다림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SNS에서 보니까 방패 든 경찰 사진이 보이던데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별 다른 일은 없었고요. 저희가 위험해 보였나 봐요. 딱히 위험한 건 없었고 그냥 줄 서 있었을 뿐인데. (경찰 쪽에서)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아요."
- 현재 대기 중인 집회 신청은 퀴어 문화축제 퍼레이드를 하기 위한 건가요?
"네, 맞아요. 다음달(6월) 9일에 축제 개막식을 하고, 28일에 퍼레이드를 하(기로 계획 중이)죠."
- 집회 신고 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들었는데요.
"원래는 미리 이렇게 줄을 세우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한 달 전 신고가 원칙이라고 알고 있어요."(경찰에서는 마찰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대기줄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편집자 말)
- 그러면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오는 29일 자정이 집회 신고일이에요. 그 때까지는(있어야죠)."
윤 팀장은 갑자기 집회 신고 규정이 변경된 상황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었다. 참가자들은 집회 신고를 위한 노숙이 이어진 상황에도 지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 신나는 음악이 어디선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서로 독려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대화 중에 지난해 퀴어 문화축제 당시 종교단체가 퍼레이드를 방해했던 일도 언급됐다. 윤 팀장은 "(퀴어 문화축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반대하는 세력도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이 바뀔 것 같으니 방해하려는 거죠. (변화를) 인정하면 될 텐데."
시청광장에서 무지갯빛 바람개비 돌아갈까
▲ 지난 26일 남대문 경찰서 앞 풍경. 무지개 색의 바람개비가 경사로 난간에 매달려 있다. ⓒ 우야님 제공
경사로 난간에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갯빛 바람개비가 불어오는 바람에 돌고 있었다. 과연 이 바람개비를 6월 퍼레이드에서도 볼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태다.
성소수자 단체의 대기열에는 외국인의 모습도 보였다. 돗자리에 앉아있던 크렉(Craig)이라는 남성은 자신을 캐나다에서 온 목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쫄면 벙개' 진행 당시 "예수 믿으라", "저주 받는다"는 한국인 목사가 나타나자 "나도 목사다"라고 맞서기도 했다. 기자가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비현실적이다(unreal)"라고 대답했다.
집회 신고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은 며칠째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계속되는 남대문 경찰서 앞의 풍경을 지켜보고 있자면, 결국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런 방법이 최선이었느냐고 말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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