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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버지 보내드리자" 엄마와 자녀는 '공범'이 됐다

[판결 대 판결 25] 뇌암 말기 아버지 사망 사건 vs. 세브란스 병원 존엄사 사건

등록|2015.05.29 10:58 수정|2015.05.29 11:48
한 사람이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뇌는 이미 제 기능을 잃었고 스스로 숨을 쉬지도, 음식물을 소화하지도 못한다. 의학적으로 말한다면 뇌사상태. 인공호흡기를 빼면 바로 숨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바로 당신이라면?

최근 품위있게 죽을 권리를 놓고 환자 가족과 의사, 법원 사이에서 서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법원은 '죽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을까. 뇌암 말기 아버지 사망 사건과 존엄사 인정 사건을 들여다보자.

[판결 1] 뇌암 말기 아버지 사망 사건

▲ 한 사람이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이 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바로 당신이라면? ⓒ freeimages


"무슨 말로 포장해도 이건 살인입니다. 그것도,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죽인 패륜 범죄입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피고인들에게 법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일깨워주시기 바랍니다."

2014년 3월 의정부지방법원 제1호 법정. 날이 선 목소리에 단호한 어조, 검사는 마치 철퇴라도 내리치는 듯했다. 그 모습이 잔뜩 위축된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피고인들과 대조적이었다. 배심원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선량하게 생긴 사람들이?

여기서 '아버지'는 박진석(가명)씨다. 박씨에겐 아내 나순자(가명)씨와 2녀 1남의 자식이 있었다. 자식들은 차례로 맏딸 현미(가명), 둘째 딸 현희(가명), 아들 현승(가명)씨였다.

이 중에서 나씨와 현미, 현승씨 세 사람이 법정에 섰다. 세 사람은 이전까지 경찰서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그런 이들이 왜 아버지와 남편을 죽이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돈 때문에? 가정폭력을 못 이겨서? 그것도 아니면 누명이라도 썼을까?

"판사님, 억울합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아버지를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현미씨의 호소였다.

"차라리 나를 감옥에 넣으세요. 얘들은 죄가 없어요."

이번엔 나순자씨의 절규가 이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3년 1월로 돌아가보자.

박씨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는 머리가 어지러워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뇌암, 그것도 말기. 의사는 길어야 8개월이라고 했다. 이제 50대 후반에 말기암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충격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맏딸 현미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리고 병수발을 도맡았다. 생활력이 강한 현미씨는 월 150만 원의 수입으로 아버지 병원비, 어머니와 동생 생활비까지 감당해야 했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반년이 지나자 현미씨와 가족들은 지쳐갔다. 박씨는 차도도 없이 고통과 신음만 늘어갔다. 진통제도 이제 약발이 잘 듣지 않았다.

박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8개월을 넘어 9개월째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입원치료를 받자니 돈이 문제였다. 아버지를 지켜만 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시킬 형편은 안 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상 가장이 된 현미씨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현미씨는 안방에서 아버지를 근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던 어머니 나씨와 동생 현승씨 앞에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할 만큼 했어. 나도 힘들고 아버지도 힘들어. 아버지, 그냥, 우리가, 이제…… 보내드렸으면 좋겠어."

나씨와 현승씨는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현승아, 이제 보내드리자."

떨리는 현미씨의 목소리 뒤로 작심한 듯 나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왕 할 거면 빨리해라. 그리고 너희 아버지 아프지 않게……."

두려웠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요. 편히 가세요.'

현승씨는 큰누나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의식이 없는 듯했던 박진석씨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이내 박씨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제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을까. 가족들은 가난과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소리 내어 울었다.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단 세 명뿐. 사람들은 투병생활을 오래했던 박씨의 죽음을 병사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둘째딸 현희씨도. 가족들은 박씨를 화장하고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던 현승씨가 영문을 모르던 현희씨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면서 가족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안락사인가, 살인인가

다시 법정. 검사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린다.

"누군가 살날이 하루 남았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그 사람 목숨을 앗아갈 권리가 있습니까. 이건 명백한 살인입니다. 피고인들, 할 말 있으면 해 보세요."

"아버지가 계속 괴롭다고,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너무 아프다면서…" 현미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변호인이 말을 받아서 이어갔다.

"맞습니다. 피고인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박씨는 거듭 현미씨에게 고통을 호소하면서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가족들로서는 더 이상 가망도 없고 치료할 길도 없는 아버지를 어떻게 해드려야 했을까요. 이들의 수입은 고작 월 150만 원입니다. 그 돈으로 다섯이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병원비까지….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건 안락사와 다름없습니다. "

법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허용될 수 있는 행위를 '정당행위'라고 하여 처벌하지 않는다. 이들의 행위도 정당행위인가, 관건은 이것이었다. 비근한 예로 치료 목적으로 환자의 몸에 칼을 댄 의사나 시합 도중 상대에게 주먹을 날리는 권투선수는 정당행위가 인정되어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버지 고통을 없애기 위해 목을 조른 행위는 어떨까? 법원(의정부지법 제12형사부 재판장 한정훈)은 현승씨의 행동이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았다. 박씨가 죽여달라고 했다는 증거도 없었고, 설사 그랬더라도 그것이 진심으로 나온 의사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감행한 행동은 안락사가 아니라 살인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법원은 더 필요한 치료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고, 설사 회복이 불가능하더라도 진통제 투여로 고통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임종을 맞게 하는 길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치료비가 더 필요했다면 가족들이 십시일반 모으거나 친인척들로부터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재판 결과 세 사람은 살인 공범이 되었다. 1심은 현승씨에게 징역 7년, 현미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회복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목을 조른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병간호를 해왔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아내 나순자씨는 자식들을 말리지 않고 남편의 죽음을 지켜본 죄(존속살인방조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실형은 면했다. 배심원들의 다수 의견도 판결과 거의 일치했다.

현미씨와 현승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로 형이 줄었다. 이들이 전과가 없었고 경제적 궁핍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한 점을 참작한 것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고통을 호소하고 임종을 앞둔 불치병 환자를 가족들이 목 졸라 죽인 것이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느냐, 즉 안락사로 인정할 수 있느냐였다. 법원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살인이라고 답했다.

말기암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사치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호스피스 제도 활성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현승씨와 가족들의 행동은 법으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법원은 안락사로서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안락사 혹은 존엄사가 허용된 경우도 있었을까.

[판결 2] 세브란스 병원 존엄사 사건

▲ 어떻게 품위 있게 죽을 것인가.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좋은 방안을 고민할 때다. ⓒ pixabay


1932년생인 김아무개 할머니는 2008년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검사 도중 과다출혈 등으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게 됐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생명을 유지해왔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서 항생제 투여, 인공영양 공급, 수액공급 등의 치료를 받아왔다. 의사들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할머니가 숨을 거두게 된다고 진단했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평소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런 사망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면서 병원 측에 치료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환자에 대한 진료를 포기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가족들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빼달라며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사람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생을 마감할 권리'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법정에서 맞선 격이다.

1, 2심을 거친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을 열고 대법관들의 치열한 논쟁을 거쳤다. 그리고 전원합의체 판결로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환자에게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을 때는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데, 할머니의 평소 가치관 등으로 볼 때 연명치료를 중단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최초로 인정해준 판결이다.

대법원은 생명권이 가장 중요한 기본권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라는 근원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며, 이미 의식이 없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연명치료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헌법 12조(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근거를 찾았다. 여기서 자기운명결정권이 나오는데,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자기의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연명치료 중단 허용 기준 제시

그렇지만 모든 경우에 환자의 권리가 존중될 수는 없다. 대법원은 "진료 중단은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환자에 대해 진료중단을 허용해야 한다.
▲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중단에 관한 의사(사전의료지시)를 밝힌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경우에는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는 전문 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최초로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과 절차를 제시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했다는 점, 병원 위원회를 분쟁해결기구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 판결 뒤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할머니는 약 200일 동안 생존을 이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세브란스 병원 사건' 판결 이후 종교·의학·법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존엄사 혹은 안락사와 관련해 논쟁이 활발히 벌어졌다. 국회에서도 입법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진전은 없다. 그만큼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는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방증일까.

사실 누군가 마음대로 재단하고 예측하여 생명을 포기한다면 그건 위험한 일이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진단은 오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를 기계에 의존하여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평소 연명장치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힌 환자라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이 열풍처럼 번졌다. 이제는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려는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을 가질 시기가 되었다. 앞서 소개한 박진석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례처럼 아름답게 인생을 마감하는 일을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미뤄서는 곤란하다. 말기암 환자가 통증과 심리적 고통을 덜고 가족들도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절실하다. 법원이 매번 답을 내리기에도 너무 어려운 사안이다.

어떻게 품위 있게 죽을 것인가.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좋은 방안을 고민할 때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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