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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시도 60대 여성, 그 사연 들어보니...

중앙대 안성캠퍼스 분신 소동 19일 후... 갈 곳 없어 막막한 세 모녀

등록|2015.05.28 15:41 수정|2015.05.28 15:42

세 모녀이 집엔 이씨와 딸 오씨 그리고 돌 지난 손녀딸 등 3명이 살고 있었다. 이씨는 "자신이 죽으면 딸과 손녀딸이라도 여기서 살게 해주지 않겠느냐"는 절박한 심정으로 분신을 시도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 송상호


"(2015년 5월) 8일 오전 10시 50분쯤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본관 1층 시설관리팀 사무실 앞에서 이모(60·여)씨가 휘발유를 몸에 뿌린 뒤 학교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다가 경찰과 소방당국에 제지당했다. 대학교 부지 안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던 이 여성은 땅을 비워달라는 학교측 요구에 반발,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방 관계자들이 상황종료 후 인화성물질을 치우고 있다."

언론 보도와 댓글에 두 번 상처 입은 당사자들

위의 내용은 경기재난안전본부에서 해당 사건 발생 직후 각 언론사에 배포된 보도자료다. 이에 앞 다퉈 각 언론사는 위의 내용과 대동소이하게 기사를 썼다. 덧붙여진 내용이 있다면, 학교 측이 "이씨에게 3년간 기다려줄 테니 나갈 준비하라"고 했고, 이씨는 "기초수급자라 3년 뒤에도 나갈 곳이 없다"라고 답변한 내용 정도였다.

한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에는 145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90% 이상이 "중앙대가 그냥 나가라는 것도 아니고 3년간 배려해 줬으면 나갈 일이지, 남의 땅에 산 사람이 분신을 시도하며 어깃장을 놓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식이었다.

이어 <경기매일>에선 지난 11일 <중앙대 강제철거 분신시도 관련 거짓해명 의혹(진용복기자)>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앙대에서 강제철거를 하라고 한 적이 없다(한 언론보도에서 밝힌)'는 학교 측 해명이 거짓"이라고 증거자료(중앙대가 2015년 1월 21일자로 보낸 철거 권고문 우체국 내용증명)와 함께 밝혔다.

▲ 중앙대가 작년 10월 이 집으로 전한 타인소유 토지사용확인서엔 학교 허락없이 해당 토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확인과 함께 해당 토지를 원상복구하거나 유상매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송상호


내용증명올해 1월에 중앙대 측에서 보내온 자진철거 권고문 내용증명서다. 이걸 받아든 모녀는 아기를 업고 사방팔방으로 사람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시원한 해결점이 없었다. ⓒ 송상호


이런 내용들을 보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씨와 그의 딸 오씨였다. 이러한 사실을 김보라 경기도의원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지난 27일 이씨가 사는 문제의 터전을 찾았다. 사건이 나고 19일이 지난 후였다.

28년 전부터 고물 팔아 살면서 남의 아이들도 거둬 키워

중앙대(안성시 대덕면 내리) 근처 판잣집에서 이씨와 그녀의 딸 오씨, 그리고 오씨의 등에 업힌 손녀딸을 만났다. 그랬다. 이 집은 모녀 3대가 사는 곳이었다. 그들이 지금 땅 문제가 걸려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28년 전, 얘들 데리고 남편과 함께 지금 이 자리에 자리 잡았어유. 여기가 중앙대 쓰레기 처리하는 곳이어서 여기다 집을 짓고 거기서 나온 고물을 팔아 생활을 연명했죠."

부부는 슬하의 자녀를 키우기도 벅찼을 텐데,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최대 8명까지 거둬 키우기도 했다. 주변에선 "자신들도 먹고 살기 힘들 텐데, 대단하다"며 칭찬했지만, 그녀는 "오갈 데 없는 그 아이들을 뿌리칠 수 없어 한 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15년 전, 학교 친구들이 딸에게 "쓰레기 집 아이"라고 놀리자, 부부는 자녀를 위해서 쓰레기 재활용 사업을 그만두고 농사로 돌아섰다. 주변 민가의 농지를 임대 받아 시작했다.

흔들리는 보금자리30여년 살아온 이씨의 터전은 소위 판잣집이다. 여기서 15년 전까지는 중앙대에서 나온 쓰레기를 정리하고 고물을 팔아 연명했고, 그 후 주변 민가 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지으며 온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여기에 생업(농업)을 이어갈 임대 농지들이 있어 여기서 살기를 희망하고 있다. ⓒ 송상호


남편의 뺑소니 사망과 자진철거 권고문

하지만, 13년 전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졌다. 남편 오씨의 뺑소니 사고였다. 그 사고로 남편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이씨는 여성 혼자의 몸으로 자기 자녀뿐만 아니라 거둔 아이들을 건사하다 힘이 부쳤고, 아이들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되어 각자의 길을 떠나간 상태다.

이씨와 딸 오씨는 인근 민가에서 임대 얻은 농지를 통해 각종 작물(고구마, 옥수수, 고추, 오이, 토마토, 콩, 가지, 배추 등)을 농사 지어 안성 로컬푸드 새벽시장에 팔아 생활을 이어갔다. 요즘도 작물이 크면 그걸 모아 새벽시장에 나가곤 한다.

남편 사망 후 억척같이 살아왔던 모녀가 겨우 안정을 찾을 무렵인 지난해 10월, 한 통의 서류가 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바로 중앙대에서 보내온 '타인소유 토지사용확인서'였다. "현재 점거하고 있는 땅을 학교 동의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과 함께 그 땅을 원상복구하거나 정상적으로 매입하라"는 내용이었다.

▲ 중앙대 측에서 올 1월에 친 철망 때문에 새벽시장 차량이 못 드나들고 있다. 이씨 가정에선 자신의 집을 드나드는 길목을 막고 있으니 일단 그것부터 철거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송상호


30년 가까이를 잘 살아왔던 그녀에게 남편의 죽음 이후 또 하나의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이 통보 이후 그들은 극도의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급기야 올해 1월 21일 중앙대로부터 '자진철거 권고문' 내용증명이 이 집에 배달됐다. 이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지난 8일 있었던 분신 시도는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났다. 이씨는 "'내가 죽으면 내 딸과 손녀딸에게는 나가라고 못하겠지'라는 심정으로 중앙대를 찾아 분신을 시도했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나서야 할 때

이 가정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 중인 김보라 의원은 "중앙대에서도 이 일을 원만히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앙대가 이 모녀에게 현재의 터전을 장기간 무상임대 계약하도록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 지금은 "이씨가 잘못했네", "중앙대가 너무 했네"라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양자가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우리 사회가 나설 때라 생각된다. 생활고로 동반자살 하는 가정을 다룬 뉴스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요즘이지 않은가.

김보라 경기도의원"중앙대 측에서 이 가정에게 해당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한다는계약서를 써주기를 바란다"고 전해왔다. 김 의원은 "중앙대도 원만하게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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