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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을 빨래터에서 논다

[시골살이 일기] 새 여름에 즐거운 물놀이터

등록|2015.05.29 14:01 수정|2015.05.29 14:01

▲ 빨래터에서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13.7.2.) ⓒ 최종규


▲ 빨래터놀이를 마치고 논둑을 따라 집으로 돌아갑니다. ⓒ 최종규


마을 빨래터를 쓰는 분이 없으나, 마을 할매는 그동안 이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으레 치우셨습니다. 마을 할매는 집안일이랑 들일을 모두 건사하면서 빨래터까지 치워야 했으니 여러모로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이 마을에 들어오기 앞서까지 마을 할매는 한겨울에도 마을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걷으셔야 했어요.

빨래터 물이끼는 한겨울에도 낍니다. 겨울에는 여름보다 천천히 끼지만, 겨울에도 물은 흐르고, 맑은 물에는 온갖 목숨붙이가 깃들기에, 물이끼도 조금씩 낍니다. 빨래터가 아닌 여느 냇물이라면 물이끼가 끼지 않았으리라 느껴요. 여느 냇물에서는 물고기와 다슬기가 바지런히 물이끼를 훑어서 먹었을 테니까요.

빨래터를 치우다 보면 미꾸라지나 민물새우를 봅니다. 다슬기는 미리 주워서 그릇에 옮깁니다. 미꾸라지나 민물새우도 그릇에 옮긴 다음, 빨래터를 다 치우고 아이들하고 다 논 다음 물에 도로 풀어놓습니다.

▲ 빨래터에서 늘 만나는 미꾸라지 ⓒ 최종규


▲ 물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 미꾸라지를 다시 빨래터에 풀어놓습니다. (2015.3.2.) ⓒ 최종규


한겨울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빨래터를 치웁니다. 겨울이 저물어 봄이 되면 보름에 한 번씩 빨래터를 치웁니다.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 들면 열흘마다 빨래터를 치우고, 틈틈이 빨래터에 가서 물놀이를 누립니다. 자전거를 몰거나 걸어서 골짜기로도 마실을 가지만, 마을 어귀로 걸어가기만 하면 멋진 물놀이터가 있어요.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 몸이 작고 아귀힘이 여리니, 물이끼 걷는 일을 크게 거들지 못합니다. 그래도 옆에서 막대솔질을 지켜보니까, 한 해 두 해 몸이 자라는 동안 어깨너머로 솔질을 익힐 테고, 머잖아 아버지하고 함께 씩씩하게 물이끼를 걷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버지가 빨래터를 다 치우고, "자 이제 놀아라!" 하고 외치니, 작은아이가 "나도 치울래!" 하면서 청소놀이를 합니다. ⓒ 최종규


빨래터에 갈 적에는 '갈아입을 옷'하고 '마른천'을 챙깁니다. 어른인 나는 옷을 따로 챙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옷을 입은 채 놀고, 나는 웃옷을 벗고 빨래터 바닥에서 뒹굽니다. 물이끼를 모두 걷어낸 빨래터 바닥에 드러누워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빨래터 바닥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싱그러운 노랫소리로 스며들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하고 나뭇잎이 살랑이는 소리에다가 들새랑 멧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골고루 어우러져서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우리한테는 어느 곳이든 놀이터입니다. 들판이나 밭둑도 놀이터요, 숲이나 골짜기도 놀이터입니다. 마당이나 뒤꼍도 놀이터이고, 빨래터와 샘터도 놀이터예요. 즐겁게 웃고 뛰놀 수 있기에 놀이터입니다.

마을 빨래터는 겨울에는 물이 따스하게 흐르고 여름에는 물이 시원하게 흘러서 더없이 멋진 놀이터입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물이끼를 다 걷고 참방참방 물놀이를 하면, 어느새 이 소리를 듣고 마을 할매가 빨래터 둘레로 모여서 "고마워서 으쩐다." "치운데(추운데) 옷 적시지 말아." "예가 아들(아이들)한테 놀기 좋지." "오매 저 이쁜 것 좀 봐." 같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줍니다.

▲ 빨래터에 물이 다시 찰랑찰랑 고일 무렵, 두 아이는 그릇에 물을 듬뿍 담아서 하늘로 던지면서 놉니다. 2015.4.15.) ⓒ 최종규


▲ 함께 놀다가, 밖으로 나와서 구경합니다. 이렇게 신나게 노는 모습만 보아도 즐겁습니다. ⓒ 최종규


▲ 빨래터를 함께 치운 아이들한테 물놀이는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 최종규


마을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마을 이웃은 이제 없기에, 마을 빨래터를 아이들과 치우면서 물놀이를 합니다. 집집마다 따로 물꼭지를 내고, 집집마다 빨래기계 들였으니, 마을 빨래터는 겉모습만 덩그러니 남은 셈입니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고, 할매들은 손빨래를 하기에 벅차겠지요. 주말이나 명절에 젊은 사람이 찾아오더라도 손으로 빨래를 거들 이는 없으리라 느껴요. 마을 빨래터는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매나 할배가 손발을 씻고 연장을 닦는 곳일 뿐입니다.

지난날 마을사람들이 복닥복닥 모여 손으로 옷가지를 비비고 헹굴 적에는 마을 빨래터에 물이끼가 낄 날이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전기가 없어도 물이 흐르고, 기계가 없어도 몸으로 움직이며, 아이들하고 함께 일하면서 쉬던 빨래터는 시나브로 휑뎅그렁하게 바뀝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도 빨래터는 휑뎅그렁합니다. 빨래를 하지 않는 빨래터는 차츰 빛을 잃습니다. 빨래를 할 사람이 사라지고, 물놀이를 할 아이들이 없는 빨래터는 쓸쓸합니다.

▲ 빨래터로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먼저 앞서 갑니다. 작은아이는 어서 가서 놀 생각에 바빠 먼저 달려갑니다. (2015.5.24.) ⓒ 최종규


▲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부쩍 자란 작은아이는 혼자서 막대솔을 쥔 채 장난감까지 더 품에 안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집안에 빨래기계를 들여놓고 단추 한 번 척 누르면 되는 오늘날입니다. 문화가 발돋움했는지, 문명이 뻗어 나가는지, 빨래를 맡아서 해 주는 기계는 집안일을 크게 덜어 준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런데, 빨래기계가 나타나 전기와 물을 듬뿍 쓸 뿐 아니라 화학세제가 널리 퍼지면서 땅도 물도 더러워집니다. 빨래기계가 나타나 마을에서 빨래터에 모일 일이 사라지면서, 마을에 이야기와 노래가 사그라듭니다. 아이들이 더는 빨래터에서 놀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따로 수영장을 찾아갈 테지만, 마을에 아이들이 아예 없습니다.

나는 두 아이하고 마을 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어냅니다. 아이들이랑 막대솔로 빨래터 바닥을 박박 문지릅니다. 한참 쓸고 문지르니 맑은 물이 졸졸 흐릅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빨래터를 너른 놀이터로 삼아 온몸을 흠뻑 적시며 놉니다.

배가 고프도록 놀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시늉을 합니다. 아이들이 조물딱조물딱 비비고 헹구는 시늉을 하고서 "빨래 다 했어" 하고 말하면 이 옷가지를 받아서 내가 다시 비비고 헹군 다음 물을 죽죽 짭니다. 빨래를 다 마친 옷가지를 작은 통에 담습니다. 청소 연장을 잔뜩 짊어지니, 큰아이가 빨래바구니를 들어 줍니다. 아버지는 빨래돌이가 되고, 큰아이는 빨래순이가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 빨랫줄에 척척 넙니다.

▲ 우리가 걷어야 할 물이끼. ⓒ 최종규


▲ "와, 이제 다 치웠네!" ⓒ 최종규


▲ 맨발로 콩콩 뛰면서 참방거리는 즐거움. ⓒ 최종규


▲ 뛰놀다가 지칠 무렵, 빨래터 바닥에 엎드려서 개구리가 됩니다. ⓒ 최종규


▲ 한참 엎드려서 물소리를 듣습니다. ⓒ 최종규


▲ 너희 참 멋져. ⓒ 최종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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